책이 나오긴 나왔는데....엄마한테도 못 보여주고 이것 참....
그동안 여기 저기에 썼던 에세이와, 새로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이 나왔습니다.
물론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한겨레에는 본명 김송희가 아닌 늘그니라는 필명으로 글을 쓴 덕분에 지나치게 솔직하게 글을 썼는데요. 본명이라면 자체 검열을 했을 텐데 말이죠...
가정사가 드러나는 글이라던지,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나 부모님과의 관계 등등...
진솔하게 쓴 만큼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내심 '아무도 이게 내 글인 줄 몰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가명으로 글을 쓸때에는 책으로 묶을 계획이 전혀 없었기 떄문에
내 멋대로 썼는데 글을 모아놓고 보니 '아뿔싸' 싶더라고요.
이 책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자식이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글을 쓰고,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와 내가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아서 성장 내내 괴로웠다고 쓰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존경할 수 없고, 엄마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쓴 책을 읽으면
어느 부모가 상처받지 않겠어요.
게다가 이것은 나의 가정사이기도 하지만 내 동생들의 가정사이기도 한 것을,
책이 나오기 전에는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책이 나왔을 때, 동생들에게 "전 세계에서 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을 두 명의 독자가 너희야"라고 했지만
첫째 동생은 나중에 고백했습니다. 책을 중간까지 읽다가 덮어버리고 말았다고요. 언니 책이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자기 친구들에게도 사달라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저는 제 못난 부분을 글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지만 동생은 남들에게 쉽게 약한 면을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라 친구들에게도 한 번도 부모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거죠.
반면 막내 동생은 부모 챕터 외에 일이나 우울, 불안에 대해 쓴 글에 대해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내가 만약 책을 냈다면 이렇게 글을 썼을 것 같아. 내 마음을 누가 대신 글로 옮겨놓은 것 같아"라고요.
책이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지 10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많은 여성 독자들이
내 이야기 같았다고 공감 해주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게을러서 브런치에도 이제야 책 출간 소식을 전하네요.
책 이름은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입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대사이기도 한 이 문장은 10년 동안 제 카톡 프로필이었는데요.
몇 개의 제목을 앞에두고 고민하던 편집자가 '이걸로 하는 게 어떻느냐'고 할때
첫 책 제목을 제 프로필 문장으로 하는 게 왠지 그럴싸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당 문장 사용을 위해 대사를 쓰신 정서경 작가님께 편집자가 메일을 보냈을 때 작가님께서 하신 말도 기억에 남아요.
"저와 박찬욱 감독님도 좋아하는 대사인데, 작가님(김송희)께서 좋아하신다니 기쁘네요. 대사를 쓸 때 반절은 제가 반절은 감독님이 쓰셨던 것 같은데 누가 어느 부분을 작성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제가 사랑하는 영화 속 대사로 첫 책의 제목을 짓고, 그 대사를 만든 작가님께서 공감까지 해주셔서
저는 성공한 덕후입니다. 어쩌면 희망이 없는 게 아닐지도 몰라!!
책의 제목은 절망적인 것 같고, 초반은 좀 우울할 수 있지만 저는 사실 웃긴 글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뒤로 갈수록 희극적인 내용이 많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저는 별명이 에피소드 머신이거든요.
왜 주변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본인은 괴로운데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하는 그런 캐릭터요.
책을 내고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 두명씩 돌아가면서 만나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거에요. 친구들의 추천사를 읽고도 밤 중에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나자신,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았냐!! 난 정말 가진 게 없고,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나를 왜 이렇게 사랑해주는거야? 나 그렇게 멋지고 좋은 사람 아니야! 날 사랑하지마! 마치 하하버스 세계관의 주인공처럼 저를 사랑해주고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머리를 쥐뜯었습니다. 어쨌든, 냉소적인척 하지만 실은 깊이 삶을 사랑하고 싶고 더 많이 연결되고 싶은 사람의 반어법적인 에세이를 많이 읽어주세요!
책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단을 몇개 뿌려놓을게요.
9쪽
사람마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너무 사랑하면 일부러 덜 좋아하는 척을 한다. (중략) 더 사랑할수록 그것을 놓쳤을 때 더 상처받고 실망하게 마련이므로, 나는 그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척 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렸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건 그런 의미다. 너무 희망을 가지고 너무 벅차 올라 있으면, 희망을 놓쳐 버렸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과 좌절하게 된다. 그러니까 희망 따위 없는 척, 그냥 하루 하루 주어진 걸 해내며 살 뿐이다. 하지만 생이란 건 기본값이 ‘매우 고됨’으로 세팅되어 있으므로 매우 힘은 내야 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37쪽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월급은 몇 년간 그대로인데 월세는 매해 높아지고, 생계를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나만 혼자 남으면 어쩌지. 나이가 들어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뿌리를 내려 불안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끼 식사를 예쁜 접시에 담아 잘 챙겨 먹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고 부지런히 청소하고 약속을 만들어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자꾸 일상에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삶의 결정권을 나 혼자 쥐고 있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확인한다. ‘나’라는 가족원에게 계속 즐거운 사건을 만들어줘야만 불안으로부터 영혼을 지킬 수 있다.
103쪽
특별히 일이 못 견디게 좋았다거나, 이 분야에서 꼭 무엇이 되겠노라 주먹 꼭 쥐고 다짐한 바도 없건만 왜 그렇게 되었나 돌이켜 보면 늘 일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다. 나에게 현 직장이란 항상 벗어나고 싶은 곳이거나 내가 일하고 싶은 방향과는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는 곳이었기에 회사에 있을 때에도 당연히 일 걱정, 퇴근 후에도 ‘내가 원하는 건 여기가 아니’라는 고민을 하느라(주로 술과 함께) 어영부영 시간이 10년이나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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