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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Dec 20. 2021

책이 나왔습니다

책이 나오긴 나왔는데....엄마한테도 못 보여주고 이것 참....


그동안 여기 저기에 썼던 에세이와, 새로 쓴 글을 모아 에세이집이 나왔습니다.

물론 브런치에 올렸던 글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어요.

한겨레에는 본명 김송희가 아닌 늘그니라는 필명으로 글을  덕분에 지나치게 솔직하게 글을 썼는데요. 본명이라면 자체 검열을 했을 텐데 말이죠...

가정사가 드러나는 글이라던지,

성장 과정에서 있었던 일이나 부모님과의 관계 등등...

진솔하게  만큼 공감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내심 '아무도 이게 내 글인 줄 몰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가명으로 글을 쓸때에는 책으로 묶을 계획이 전혀 없었기 떄문에

내 멋대로 썼는데 글을 모아놓고 보니 '아뿔싸' 싶더라고요.

이 책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요.

자식이 엄마와의 연락을 끊고 평화가 찾아왔다는 글을 쓰고,

부모를 사랑하지만 부모와 내가 잘 맞지 않는 톱니바퀴 같아서 성장 내내 괴로웠다고 쓰고,

엄마를 사랑하지만 존경할 수 없고, 엄마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고 쓴 책을 읽으면

어느 부모가 상처받지 않겠어요.


게다가 이것은 나의 가정사이기도 하지만 내 동생들의 가정사이기도 한 것을,

책이 나오기 전에는 미처 생각치 못했습니다.

책이 나왔을 때, 동생들에게 "전 세계에서 이 책을 가장 재미있게 읽을 두 명의 독자가 너희야"라고 했지만

첫째 동생은 나중에 고백했습니다. 책을 중간까지 읽다가 덮어버리고 말았다고요. 언니 책이 이런 내용인 줄 알았으면 자기 친구들에게도 사달라고 하지 않았을 거라고요.

저는 제 못난 부분을 글감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이지만 동생은 남들에게 쉽게 약한 면을

내보이지 않는 성격이라 친구들에게도 한 번도 부모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던 거죠.

반면 막내 동생은 부모 챕터 외에 일이나 우울, 불안에 대해 쓴 글에 대해 이렇게 말해 주었어요.

"내가 만약 책을 냈다면 이렇게 글을 썼을 것 같아. 내 마음을 누가 대신 글로 옮겨놓은 것 같아"라고요.

책이 온라인 서점에 등록된지 10일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의외로 많은 여성 독자들이

내 이야기 같았다고 공감 해주어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게을러서 브런치에도 이제야 책 출간 소식을 전하네요.

책 이름은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입니다.

<싸이보그지만 괜찮아>의 대사이기도 한 이 문장은 10년 동안 제 카톡 프로필이었는데요.

몇 개의 제목을 앞에두고 고민하던 편집자가 '이걸로 하는 게 어떻느냐'고 할때

첫 책 제목을 제 프로필 문장으로 하는 게 왠지 그럴싸 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당 문장 사용을 위해 대사를 쓰신 정서경 작가님께 편집자가 메일을 보냈을 때 작가님께서 하신 말도 기억에 남아요.

"저와 박찬욱 감독님도 좋아하는 대사인데, 작가님(김송희)께서 좋아하신다니 기쁘네요. 대사를 쓸 때 반절은 제가 반절은 감독님이 쓰셨던 것 같은데 누가 어느 부분을 작성했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네요."

제가 사랑하는 영화 속 대사로 첫 책의 제목을 짓고, 그 대사를 만든 작가님께서 공감까지 해주셔서

저는 성공한 덕후입니다. 어쩌면 희망이 없는 게 아닐지도 몰라!!


책의 제목은 절망적인 것 같고, 초반은 좀 우울할 수 있지만 저는 사실 웃긴 글을 지향하는 사람이라

뒤로 갈수록 희극적인 내용이 많다고 자부합니다. 사실 저는 별명이 에피소드 머신이거든요.

왜 주변에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아 본인은 괴로운데 주변 사람들은 신기해하는 그런 캐릭터요.

책을 내고 친구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고, 한 두명씩 돌아가면서 만나 축하를 받았습니다. 그때마다 이상하게 눈물이 주룩주룩 흐르는 거에요. 친구들의 추천사를 읽고도 밤 중에 소리내어 울었습니다. 나자신, 언제부터 이렇게 눈물이 많았냐!! 난 정말 가진 게 없고, 매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다들 나를 왜 이렇게 사랑해주는거야? 나 그렇게 멋지고 좋은 사람 아니야! 날 사랑하지마! 마치 하하버스 세계관의 주인공처럼 저를 사랑해주고 축하해주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머리를 쥐뜯었습니다. 어쨌든, 냉소적인척 하지만 실은 깊이 삶을 사랑하고 싶고 더 많이 연결되고 싶은 사람의 반어법적인 에세이를 많이 읽어주세요!


책 속에서 제가 좋아하는 문단을 몇개 뿌려놓을게요.



9쪽

사람마다 애정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겠지만, 내 경우에는 너무 사랑하면 일부러 덜 좋아하는 척을 한다. (중략) 더 사랑할수록 그것을 놓쳤을 때 더 상처받고 실망하게 마련이므로, 나는 그것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던 척 하는 게 습관처럼 몸에 배어버렸다.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라는 건 그런 의미다. 너무 희망을 가지고 너무 벅차 올라 있으면, 희망을 놓쳐 버렸을 때 더 크게 실망하과 좌절하게 된다. 그러니까 희망 따위 없는 척, 그냥 하루 하루 주어진 걸 해내며 살 뿐이다. 하지만 생이란 건 기본값이 ‘매우 고됨’으로 세팅되어 있으므로 매우 힘은 내야 한다. 그냥 그런 것이다.


37쪽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을까. 얼마나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월급은 몇 년간 그대로인데 월세는 매해 높아지고, 생계를 이대로 유지할 수 있을까. 친구들이 다 결혼하고 나만 혼자 남으면 어쩌지. 나이가 들어도 나를 찾아주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뿌리를 내려 불안으로 번지지 않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한다. 세끼 식사를 예쁜 접시에 담아 잘 챙겨 먹고, 설거지도 바로바로 하고 부지런히 청소하고 약속을 만들어 밖에 나가 친구를 만나고 자꾸 일상에 소소한 이벤트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내가 세상과 연결되어 있음을, 삶의 결정권을 나 혼자 쥐고 있는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확인한다. ‘나’라는 가족원에게 계속 즐거운 사건을 만들어줘야만 불안으로부터 영혼을 지킬 수 있다.


103쪽

특별히 일이 못 견디게 좋았다거나, 이 분야에서 꼭 무엇이 되겠노라 주먹 꼭 쥐고 다짐한 바도 없건만 왜 그렇게 되었나 돌이켜 보면 늘 일이 잘 안 풀렸기 때문이다. 나에게 현 직장이란 항상 벗어나고 싶은 곳이거나 내가 일하고 싶은 방향과는 조금씩 핀트가 어긋나는 곳이었기에 회사에 있을 때에도 당연히 일 걱정, 퇴근 후에도 ‘내가 원하는 건 여기가 아니’라는 고민을 하느라(주로 술과 함께) 어영부영 시간이 10년이나 훌쩍 지나가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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