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글의 끝을 어떻게 내면 좋을지 모를 때가 많다. 내가 쓰는 글은 대부분이 에세이거나 취재기사이거나 인터뷰 글이다. 인터뷰는 상대방의 답이 끝날 때 글을 끝내면 된다. 취재 기사는 처음 정리했던 기획대로, 그리고 취재 내용에 맞게 글을 정리하면 된다. 그런데 에세이는? 적어도 거기에 희망을 주고 글을 맺음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된다.
예를 들어 청년 문제에 대한 에세이를 썼다고 할 때, 현황과 내 생각을 정리한 후 종결에는 어떤 희망이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희망도 없고 대안도 모르겠다. 아니, 대통령도 못 찾는 청년 문제의 대안을 내가 어떻게 제시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희망은? 결국 그것도 없으니 끝맺음에는 ‘희망은 니 안에 있다, 상황이 나빠도 너 자신을 믿고 열심히 살자’라는 말 말고는 할 말이 없다.
사실 다수의 에세이 작가들, 혹은 멘토들은 이렇게 글을 마무리한다. 다른 주장을 하기 어려우니 그럴 수밖에. 자신이 과거에 어땠는지 현재는 어떻게 나아졌는지를 정리하고 청춘을 위로한다. “자신이 별로인 것 같죠? 그렇지 않아요,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소중하고 훌륭하고 빛나는 존재에요. 자긍심을 가져요. 힘을 내요. 앞으로 좋아질 거예요.” 물론 이런 위로의 말들은 아름답다. 그리고 그로 인해 힘든 상황에서 위로를 받고 마음에 치유를 받는 사람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이게 벌써 몇 년째인가. 대안은 없고, 상황은 매년 나빠지고 있으며 나아질 기미도 없고 희망도 안 보인다. 그렇다고 글에서 “다 같이 멸망해버리자~ 어차피 이번 생은 망했어! 지진도 나고 태풍도 오고 이게 바로 헬조선이다! 잘됐네 잘됐어~ 풍악을 울려라~” 할 수는 없으니 희망을 개인의 내부로 돌리는 것이다. “희망은 당신 안에 있어요. 당신은 그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입니다.자신의 가치를 믿고 열심히 하면 좋아질 거예요.” 이 얼마나 아름답고 손쉬운 위로인가. 제도나 거시적인 제도를 바꾸지 않고 미시적으로 한 사람의 마음의 평온을 주는 위로의 글을 쓰는 것은 얼마나 쉬운가. 그리고 그런 위로의 글을 써대며, 너희도 앞으로 좋아질거니 자신감을 가지라고 멋진 선배답게 어깨를 툭 치며 파이팅을 외치는 사람들은 현재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어 있지 않다. 자기들은 지금 제도권 안의 안전망 안으로 쏘옥 들어갔으면서 너도 힘을 내라며 그 밖에서 위기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위로를 하면 뭐하나. 누구 놀리는 건가?
내가 10대 때부터 가슴팍에 품고 다니는 책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에 이런 구절이 있다. “너는 가족도, 친구도, 타인의 생각도, 나라도 바꿀 수 없다. 니가 손쉽게 바꿀 수 있는 것은 너 자신이다” 너무나 맞는 말이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기란 얼마나 어려우며, 우리 동네를, 이 나라를,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또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가.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다. 결국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은 내 자신을 바꾸는 일 뿐이다. 노력하면 그건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노력했는데, 왜 내 자신은 바뀌지 않는 걸까. 우리가 노력을 안 해서 이 모양인가. 다들 열심히 살았고 다들 열심히 뛰고 있다. 마음은 이미 바꿔먹었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 숀 코비님(《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이게 어찌된 일인가요. 근데 그 책 나온 게 90년대다. 지금은 2017년이다. 90년대에는 개인이 마음을 바꿔 먹은 것만으로 상황이 나아지고, 가족을, 주변을, 동네를, 나라를 바꿀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마음 바꿔 먹고 운동화 끈 동여매고 열심히 뛰어도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 불운하고 불길하고 암담하지만 그게 현실이다. 아, 결국 이 에세이도 나는 끝맺지를 못하겠다. 자꾸 이렇게 희망 없는 글을 써대니 독자한테 항의 메일이나 받지. 그러니까 당신 안에 희망이 있어요, 당신은 아름다운 존재이고 충분히 빛나는 존재니까 스스로를 사랑하고 자부심을 가지세요 라고 그냥 나도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