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스퀘어, 안드레 애치먼 소설
나와 정반대라 동경하지만, 또 그래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 나도 저 애처럼 감정에 솔직할 수 있었으면, 능숙한 언변으로 좌중의 주목을 받을 수 있다면, 모두에게 사랑받으면서도 모두를 비판할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있으면 정면에 대고 불평을 말할 수 있었으면…. 나는 그가 부러우면서도 한편 부끄럽기도 하다. 그는 경박하게 주변 여성들의 외모를 평가하고, 몇명과는 사귀었다가 차였으며 자신의 심술궂은 천박함을 과시적으로 드러낸다. 튀니지인이자 무슬림이면서 이방인이라는 자아를 당당히 드러내고, 끝없이 미국에 대한 증오를 떠들어대는 이 친구의 이름은 칼라지다.
칼라지와 깊은 관계를 맺던 시절, 나는 하버드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미래가 불안한 학생이었다. 시험에 두번이나 떨어졌고 박사 학위를 딸 수 있을지도 불확실했다. 이집트 출신의 유대인이라는 처지와 빈곤, 이곳에서 누구와 어떤 관계를 맺어도 결국은 이방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감각은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하버드 스퀘어>는 <그해, 여름 손님>(<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원작)의 안드레 애치먼의 신작 소설이다. <하버드 스퀘어> 역시 두명의 남자가 함께 보내는 늦은 여름의 열기를 그렸다. 하버드학생과 택시 기사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남자는 이방인이라는 공감대 덕분에 금방 친해진다. 이들은 카페 알제에서 매일 만나 작당 모의를 한다. 나는 그를 부러워하면서도 속으로는 하버드 학생이라는 내 영역을 침범할까봐 두렵다. 그런 속내를 스스로 혐오하면서도 칼라지가 자신을 간파하고 있단 것을 안다. <그해, 여름 손님>에서처럼 이 소설에도 복숭아가 등장한다. 여기서 천도복숭아는 복숭아나무 위에 자두나무를 접붙인 이방인의 존재를 은유한다. 1977년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서로에게 감응했던 두 남자는 한 시절을 같이 보낸다. 시간이 흘러 ‘나’가 칼라지를 추억할 때 그것은 어떤 상흔으로도 남지 않는다. 그저 가장 비열하고 계산적이었으며 더불어 좋았던 추억으로 남을 뿐이다. 누구에게나 나만의 칼라지가 있다. 내가 너고 네가 나처럼 느껴졌지만, 떼어내고도 싶었던 어느 친구.
책속에서
칼라지는 다른 재능도 갖고 있었다. 그는 얼굴을 잘 기억할 뿐만 아니라 마음을 읽을 수도 있었다. 자네 친구 A 있잖아, 못 믿을 인간이야. 또 다른 친구 B는 말이야. 자네를 되게 싫어해. 그런 이야기가 끝도 없었다. (중략) 영화 보면서 질질 짜는 사람들도 안 믿고. 그건 그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니까.(68~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