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애나 만들기'
“요즘 사람들은 모든 사생활을 온라인에서 살아.” 독일의 상속녀 흉내를 내며 뉴욕 사교계에서 사기 행각을 벌이다 체포된 애나 소로킨의 실화를 극화한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의 대사다. 아버지가 독일 재벌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미국의 유명인사들과 어울렸던 애나 소로킨이 실제 가진 자산은 거의 없었다. 그런 그녀가 어떻게 호텔에 머물며 명품만을 착용하고 수백억의 자산가 흉내를 낼 수 있었을까. 그녀에게 깜빡 넘어간 주변인들이 바보라서? 그녀의 연기가 훌륭해서? 그렇다기엔 그녀에게 미국 은행권과 부동산, 대형 로펌까지 속아 넘어갔다.
애나 소로킨이 기소된 이유는 상속녀 행세를 했기 때문에 아니라 은행에 가짜 서류를 제출해 거액의 대출을 신청하고, 고급 호텔에 숙박비를 체납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금융인까지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이 말 그대로 신용사회이기에 가능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면, 사교계와 금융계가 이너서클 안에 있는 명사들의 소개, 인맥으로 구성된 ‘신용’이 중요한 사회였기에 가능했던 사기 행각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사람이었고, 이름만 말하면 누구나 알법한 뉴욕 사교계 인사들의 친구이자 그들의 인스타그램에서 자주 얼굴을 보이는 셀러브리티였다.
가짜보다 더 가짜 같은 기상천외한 실화를 영상 업계에서 그냥 놔둘 리 없다. 넷플릭스가 애나 소로킨에게 32만달러를 주고 극화를 허락받아 만든 드라마가 바로 <애나 만들기>이다. 구치소에 수감된 애나를 기자가 취재하는 드라마 플롯에서 취재기자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 “인스타그램에 나와 있어”이다. 애나의 모든 발자취는 그녀와 친구들 인스타그램에 남아있었다.
애나는 아는 이름을 팔아 돈을 지불하지 않고 전용기를 빌렸으며 호텔에 장기 투숙하며 요트 여행을 즐기고 고급 레스토랑에 출입했다. 애나는 범죄자이면서도 스스로가 컨텐츠가 되었고 소재를 팔았다(범죄자가 범죄 사실로부터 이익을 취하지 못하도록 하는 뉴욕주법에 의해 소로킨은 넷플릭스로부터 받은 돈으로 벌금을 정산했다).애나의 친구였던 레이첼 윌리엄스 역시 자신의 피해 사례를 <내 친구 애나:가짜 상속녀의 진짜 이야기>라는 책으로 출판했고 이 책 역시 HBO와 드라마 제작 계약까지 맺었다.
SNS에서 거짓말을 해서 사기를 벌이는 것이 애나만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오픈채팅방 등에서 크고 작은 범죄 행각이 벌어진다. 여행 한번 가지 않은 사람도 남이 찍은 사진으로 인스타그램 가계정을 만들 수 있고, 투자 전문가도 아니면서 부자인 것처럼 화려한 라이프 스타일을 유튜브에 올려 투자자를 모을 수도 있다.
<애나 만들기>에서 애나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거짓말을 이어붙이는 장면은 거의 예술의 경지로 그려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애나가 천재적인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애나의 친구들은 물론이고 전문 금융인들까지 왜 그녀에게 속았을까. 우리는 언제든 소셜 미디어에게 속을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는 유튜브만으로도 영상 속 유튜버에게 친밀감을 느끼고 그의 말을 쉽게 믿는다. 유튜버와 구독자가 그들만의 약속으로 만든 언어는 관계에 끈끈한 결속력을 만들어 준다. 인플루언서마다 구독자들을 부르는 애칭이 있고, 그들끼리 쌓은 서사가 있다.
얼마 전 한 플레이리스트 채널 운영자가 ‘라이브 방송’ 예고를 한 시간에 맞춰 채팅방에 들어가 봤다. 카메라는 음악이 흐르는 모니터를 비췄고, 앞에는 와인과 책 한 권이 놓여있다. 유튜브 라이브 채팅방에서 수다를 떨던 친구들은 별별 고민과 상념들을 털어놓았다. 누군가, “나 와인 다 마셨어, 가지러 다녀올게.”라고 글을 쓰면 또 다른 사람이 “음악 정말 좋다. 역시 내 취향을 아는건 OOO밖에 없어”라고 글을 썼다. 그곳에 외로움은 없었다.
하지만 인플루언서에게 깊이 감정 이입을 하기 때문에 배신감도 크게 느낀다. 유튜버가 실망스러운 행동을 취하거나 거짓말을 한 것이 밝혀지면 세찬 매질을 하며 ‘구독취소’로 응징 한다. 구독자를 실망시킨 유튜버는 석고대죄하며 손글씨를 쓰거나 파리한 얼굴로 사죄 영상을 빠르게 찍어 올려야 한다. 구독과 재생시간을 투자했기 때문에 유튜버는 구독자를 실망시켜선 안 된다. 우리는 유튜버의 영상으로 위로를 받고, 인스타그램에서 구매대행을 하는 각종 식품과 기구들을 ‘믿고’ 구매한다. 그곳에 가면 시간이 후딱 사라지고 외롭지도 않다. 누구보다 긴 시간을 할애해 감정을 쌓은 친밀한 친구가 그곳에 있다. 우정과 취향과 사랑이 넘쳐나는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감히 가상 공간이라 할 수 있을까. 거기 가면 친구가 있고 내 취향의 음악이 있으며,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있다. NFT가 대체 불가능한 토큰, 디지털 자산을 칭하는 언어라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야말로 대체 불가능한 친구가 있는 세계다. 그들이 파는 것은 감정의 경제다.
서울문화재단 매거진 <문화+서울>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