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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송희 Mar 23. 2022

이건 꼭 내가 쓴 것 같아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에는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주인공은 각기 다른 인물들이지만 어쩐지  사람이 1인칭 시점에서 하는 말처럼 읽히기도 한다. 몰개성하단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 내가 익히  아는 사람 같다. 때로 그것은 소설  인물이 하는 말이 아니라 언젠가 써놓은  일기장  문장 같기도 하다. 김지연 소설의 여자들은 살기 위해 모멸감을 참다가도 대뜸 상대에게 화를 내기도 하고, 연약한  같아도 강인하고, 자신이  원하는지 모르겠다지만 실은 자기 욕망을 관철하기 위해 능동적이다. 가족의 기대를 배반하며 이룬 것도 없이 고향으로 돌아오고, 계획도 비전도 없는 자신을 혐오하는  같아도 마지막 문장을 닫을 때면 그가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느껴진다.


배경 도시나 인물의 이름이 겹치지 않아도 소설들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9개의 스핀오프처럼 읽힌 이유는  세계가 현재 시점의 대한민국이라서다. 거기 사는 여자들은 매일 무신경한 말에 노출되고 누구와 싸워야만 간신히 자신을 지킬  있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 나쁜 일이  지나고 나서야 연인에게 별일 아니었다는  털어놓는다. 그래야만  일을 가볍게 생각할  있어서다.


 <마음에 없는 소리> ‘ 친구들이 ‘앞으로 어떻게  냐고 한심해하며 물을 때마다 “미래가 이미 도래한 것처럼”(167) 군다. <사랑하는 > ‘ 아버지가 자신의 동성 연인 앞에서 추태를 부리자 불같이 화를 내고 참아왔던 욕을 퍼붓는다. 그러니까 이들은, 우리는 무엇이 되고 싶은  아니다. 아무것도 되지 못해 한심한  아니라 그냥 내가 되고 싶은 거다. 죽고 싶은 이유가 수십 가지 되지만 이들은 먹고 화내고 울면서 살아간다. 현실을 애써 부정하거나 미래를 마냥 긍정하는  따위 없이, 나답게 그냥 사는 것이다. 그래서  소설은 힘이 된다. 어떤 긍정도 미화도 비관도 없이 누가 뭐라 하든, 잘난 것도 없는 ‘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거짓말  하고 싶어서

“저는요. 소문내고 싶어요. 점심으로 맛있는 우동을 먹어도 소문내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요. 길 가다 귀여운 고양이를 만나도 소문을 내는 게 인지상정이라고요. 근데 우리 은호 좀 보세요. 얼마나 귀여워요. 아버님도 거기 앉아서 계속 본인 자랑만 하셨잖아요. 뭐 별 대단한 것도 아니었잖아요. 저도 동네방네 소문내고 자랑하고 싶어요. 동네 사람들 다 모아놓고 잔치라도 열었으면 한다고요. 다들 그렇게 하면서 살잖아요. 근데 저희가 남들은 다 하는 그 잔치 열겠다는 것도 아니고요. 어디 광고하겠다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거짓말 안 하고 살겠다는 거예요.”(<사랑하는 일>, 242~24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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