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것 아니지만 위로가 되는

다 있는데 고양이, 나도 있어

by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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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 언니의 고양이 세 마리와 살며 피부병과 비염을 얻었고 나에게 동물털 알레르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룸메이트 언니와 헤어지면서 고양이들과도 헤어졌다. 심각한 비염과 알레르기 상태로 보아서는 다시는 고양이와 함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이미 나는 '고양이가 주는 기쁨'을 알아버린 몸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나는 다시 고양이와 함께 산다. 내 옆에는 지금 세상 편한 포즈로 몸을 쭉 핀 고양이 한 마리가 이불 위에서 쌔근쌔근 잠들어 있다. 원래 인간이란 이토록 학습능력이 부족하다. ‘후추’라는 이름의 코숏 고양이랑 함께 살게 된 지 6개월째다. 지난 추석, 이 아이는 우연히 우리 집으로 굴러 들어왔다. 선배의 선배가 길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주웠고(선배의 다리에 머리를 비비며 따라왔다고 한다), 막상 데려는 왔는데 키울 수가 없어 수소문 끝에 고양이와 한때 같이 살아 본 나를 집사로 간택한 것이었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 후추는 임신한 상태였다. 아직 한 살도 안 된 것 같은 작은 몸집에 배만 볼록했다. 얼결에 후추를 떠맡고 처음에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후회했다.

감당을 할 수 있을까. 나 하나도 감당 못하는 처지에 고양이를 키울 수 있을까. 매 달 사료와 모래 비용이 적어도 5만원은 들텐데 5만원 짜리 보험 하나 못 드는 형편에 이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일단 재정적인 부담이 컸고, 심한 비염과 피부병도 걱정이었다. 그렇게 갑작스런 동거가 시작됐고, 그 사이에 후추는 한 번 가출을 했고 동네를 뒤져 겨우 찾은 후 출산을 했고 6마리의 새끼를 잃었다. 새끼를 잃은 사연은 꽤나 길고 후추의 ‘묘권’에도 침해되므로 여기에 길게 쓰진 않겠다.


나는 불안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다. 2년마다 이사를 해야 하고, 넉넉지 않은 수입을 쪼개 살아야 하며 비혼이니 나 외에 나를 책임져줄 사람도 없다. 노후도 준비해야 한다. 고양이는 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15년을 산다. 내가 15년 동안 이 녀석을 책임질 수 있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려면 그 정도 고민은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 고민을 안 했다. 다만 나는 함께 살던 고양이를 사정이 나빠졌다고 하여 밖에 버리는 사람은 아니다. 그 정도의 책임감으로 나는 후추를 맡았다.


절망감이 극한에 치달을 때, 자존감이 땅을 치는 밤에 어두운 방에 누워 울 때가 있다. 세상이 망해버리면 좋겠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지, 왜 나는 이 모양이지. 그럴 때 내 발치에서 쌕쌕 숨을 쉬는 털복숭이의 배를 바라본다. 숨을 쉴 때마다 후추의 배가 작게 움직인다. 이곳이 안전하다고 믿고 내 앞에서 배를 뒤집고 잠을 자는 후추의 배를 보며 생각한다. 세상은 평화롭고, 나는 아직 쓸모 있는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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