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이 있다. 100만큼 투자했을 때 100의 성과가 나타난다면 좋을 텐데, 100을 투자하고 1정도만 겉으로 드러난다면 누구든 열심히 하기 싫어지지 않을까. 잡지를 만들면서 그런 생각이 들던 때가 있었다. 내가 이렇게 고민해서 기획하고 취재하고, 편집하고, 디자인을 해도 독자는 어차피 모르지 않나. 누군가 어딘가에서 이 잡지를 읽기라도 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이 일을 왜 열심히 해야 하는 거지? 자기만족? 자아 성취를 위하여?
그 때 깨달음을 준 것이 두 명의 아저씨였다. 올 여름 나는 새로 이사 온 집에 방충망을 설치했다. 애당초 창문에 방충망이 왜 없는지, 이전에 살던 사람들은 방충망 없이 어떻게 살았는지 의문이었지만 어쨌든 없으니 설치해야만 했다. 방충망 설치를 해주는 분과는 서로 시간이 도저히 맞지 않아 더위가 깊어진 이후에나 만날 수 있었다.(그때까지 창문을 못 열었다는 말이다) 아저씨는 주말에는 일을 하지 않으며 저녁에도 6시 이후에는 일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자영업자이고 자신의 업무시간은 스스로 정하는 것이니 그것까지는 내가 맞출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나는 세입자라 집 주인님께서 연락처를 준 분에게 공사를 받을 수 밖에 없었다.
어쨌든 하루 회사를 쉬고 방충망 아저씨를 기다렸다. 아저씨는 약속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와서는 이른 아침 7시부터 문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잠에서 덜 깬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고 짜증부터 내셨다. 그로부터 방충망을 시공하는 2시간 동안 아저씨는 계속 짜증을 내고 불평을 했으며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지 아느냐’며 투덜거렸다. 집 주인이 공짜로 일을 맡기는 건가 싶을 정도로 이 분은 ‘일을 하기 너무 싫어’했다. 그 투덜거림을 들으며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죄송해요, 고생하시네요”라는 말을 서른 세 번쯤 했을 때 고행과 같은 시가니 끝이 났다.
더 큰 문제는 아저씨가 간 이후에 생겼다. 방충망을 시공한 창문은 미세한 틈을 두고 닫히지 않았다. 그 틈으로 모기가 침투했고 나는 그 대단한 분을 다시 한 번 모시기가 번거로워 그냥 테이프를 붙여 여름을 났다. 그렇게 일하기 싫어하며 우리 집 방문을 곤란해 하더니, 와서도 내내 투덜거리며 일하던 아저씨는 건성으로 방충망을 설치하고 간 것이다. 그 많은 불평 속에는 “내가 이 일만 30년 째야”라는 자랑도 있었는데, 30년 간 이 따위로 일해온 것인가.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다른 아저씨를 만났다. 이사 오며 테이블을 주문했는데 조립식이라 배달 해주신 분이 추가 금액을 받고 조립까지 해주시는 상품이었다. 나는 엘리베이터도 없는 낡은 빌라 4층에 살고 있었고, 테이블은 4인용 식탁이라 꽤 무게가 나가는 것이었다. 아저씨는 땀을 뻘뻘 흘리며 좁은 부엌에 조심스럽게 나무 합판과 조립을 할 다리들을 펼쳐 놓았다.
드르륵, 드르륵. 4개의 다리가 드릴 소리와 함께 틀을 맞춰 나갔고 아저씨는 내내 조심스럽게 조립을 해주더니 “잠깐만 기다려보세요”라며 1층으로 추가 장비를 가지러 갔다. “이게 하나씩 못을 더 막지 않으면 흔들리더라고요.” 매장에서 보내준 나사 외에 추가 나사를 박아주기 위해 1층까지 내려갔다 온 것이었다. 배달에 조립 업무까지 하는 이 만능 배달부는 자신이 해주지 않아도 될 것까지 추가로 더 하고는 일을 마무리했다. 친절한 데다 믿음직하기까지 한 테이블 가이! 아저씨는 가구점 직원도 아니었고 조립 후 테이블 상판이 흔들린다 하여도 불만접수의 대상이 될 담당자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오래 되면 흔들릴 수도 있다’며 안 해도 될 추가 업무까지 해주었다. 2년이 지난 지금도 테이블은 튼튼하게 서 있다.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말이다.
방충망 설치 기사님이나 테이블 배달 기사님 모두 나를 다시 볼 사람들이 아니다. 서비스업이 아니기 때문에 친절할 필요도 없다. 친절하고 열심히 해준다고 하여 방충망을 그 분께 2번 설치할 것도 아니고, 테이블도 그 분이 또 배달 올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서로 다르게 자신의 일을 처리했다. 일을 대충했다고 방충망 아저씨가 망한 것도 아니고, 일을 더 잘했다고 하여 테이블 기사님이 추가금액을 받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잘하나 못하나 자신에게 하등 영향이 없는 ‘일’을 대하는 두 분의 태도에서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일을 열심히 해야 하는지. 그건 태도의 문제이고 생각의 차이이고 삶의 영역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