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과 최은영에게 듣다
“내가 이걸 계속 해도 되는 건가. 능력이 없는데 좋아한다는 이유로 계속 붙들고 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때 상을 받았어요. 남에게 인정을 받은 거잖아요. 당분간은 계속 연기를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기뻤던 것 같아요.”
“그만두려고 할 때였어요. 계속 글을 써도 되는 건가. 넣는 데마다 계속 떨어지니까 이번을 마지막으로 해보고 그만두자, 했을 때 상을 받고 등단을 한 거예요. 그때 들었던 생각은 당분간은 계속 써도 되겠구나, 했어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나의 만족이 가장 중요하고,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구린지, 혹은 얼마나 멋진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게 나다.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객관성의 눈을 자기 안에 가지고 있어서, 그걸로 시시때때로 자신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글을 쓰건 음악을 하건 그림을 그리고 연기를 하건 결국은 대부분의 창작물은(일기 빼고) 남에게 보여지기 위해 만들어진다. 남에게 보여 지지 않는 창작물은 돈이 안 된다. ‘남의 평가가 무슨 상관이야, 내가 좋으면 됐지.’ 말로는 이렇게 정신승리하지만 타인의 평가라는 것이 그 일을 계속하게 하는 힘이 되고, 때려치우게 하는 벼랑이 되기도 한다.
이 일을 계속 해도 괜찮은 걸까. 실은 내 능력은 그렇게 대단치도 않은데, 남들은 봐주지도 않는데 그냥 나 혼자 미련하게 계속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다. 그리고 ‘에라이 그만두자’ 마음 먹었을 때 마치 마른 입술에 물 한방울을 떨어트려주듯 하늘이 ‘옛다’하고 결과물을 줄 때가 있다. 배우 박정민은 ‘나는 잘생기지도 않았고, 연기를 잘하는 것도 아닌데 계속 해도 괜찮을까’ 싶었을 때 백상예술대상에서 상을 줬다고 했다. 그는 신인도 아닌데 <동주>로 신인 남자배우상을 탔다. 데뷔한지 5년이 훌쩍 지났는데. 물론 그 상이 아니었어도 계속 연기를 했겠지만, 그래도 그 상 덕분에 ‘내가 연기를 계속 해도 되는 사람’이라고 인증을 받은 셈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주어지는 시상식이라는 게 대부분은 끼리끼리 나눠먹기 식이거나, 능력보다는 시청률, 흥행 기준일 때가 많아서 별 의미 없이 느껴지지만 그때 그것이 필요했던 배우에게는 ‘계속 해도 된다’는 허락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2016년, 나에게 가장 의미있었던 책은 최은영 작가의 <쇼코의 미소>였다. 작가를 너무 만나고 싶어서 인터뷰 요청을 넣었고 고맙게도 만나게 되었다. 최은영 작가는 자신의 소설만큼, 아니 그보다 더 곱고 예쁜 사람이었다. 서른에 등단을 한 작가는 마지막으로, 이번이 마지막이다 라는 마음으로 넣은 문예상에서 수상하며 등단을 했다. 주변에 소설가 지망생은 너무 많고, 글을 너무 잘 쓰는 사람도 많고 합평 때마다 이리떼에게 뜯어 먹혀서 ‘아, 나는 글 쓰면 안 되는 사람인데 나 혼자 미련하게 붙들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간을 또 쓰고, 쓰고, 신춘문예에 넣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러고 서른이 되던 해에, ‘이제 그만해야지’ 했을 때 덜컥 수상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 상 덕분에 등단을 하게 되었고, 소설을 계속 쓸수 있게 되었는데 그보다는 드디어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았다는 생각에 더 좋았다고 한다.
백상에서 연기상을 받지 않아도 연기는 계속할 수 있다. 문예지에서 신인상을 주지 않아도 글을 계속 쓸 수 있다. 누군가 인정해주지 않아도 내가 좋아서 계속 그 일을 할 수도 있다. 세상에는 좋아서 계속하는 사람들이 더더더 많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타인의 인정이 배고프게 필요할 때가 있다. ‘너 잘하고 있어, 니 글 좋아, 니 연기 좋아, 니 그림 좋아, 니 노래 좋아.’ 당신의 팬입니다. 라는 말이. 필요할 때가 있다. 필요할 때, 필요한 말을 들을 수 있는 사람. 필요할 때 필요한 상을 받을 수 있어서 계속 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하는 사람. 두 사람에게 저 말들을 들었다. 그때 나도 저 말이 필요했다. 필요한 순간 나도 필요한 말을 들었다. 같은 시기에 두 사람의, 내가 존경하고 좋아하는 배우와 작가의 에피소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