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애는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다. 9급 시험에 또 낙방했고 새해가 되자 '계속 해야 할지 그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만날 때마다 보이는 패배감에서 나는 그 애가 슬슬 공부도 연애도 지겨워한다는 것을 느꼈다. "올해가 진짜 마지막인 것 같아. 마지막으로 매달리려고" 그 애가 신림동 고시텔에 들어가면서 우리는 헤어졌다. 그 애와 사귈 때 나는 친구들에게 내 남자친구를 '7급 공무원 준비생'이라고 설명했다. 9급을 준비한다고 하면 왠지 패기 없는 남자처럼 보였고 그런 남자의 공무원 시험 일정에 맞추어 연애를 하고 있는 나까지 초라해보였기 때문이다. 나는 공부 때문에 자주 만나지 못하는 남자친구를 이해하는 개념녀를 코스프레하며 그 애의 휴식시간마다 짧은 전화 통화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별로 대단치도 않은 연애였고 사귀는 내내 시시했고 헤어지고 나서 울지도 않았다. 시시한 사랑이었다. 아니, ‘난 걔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아’라고 주변에 말하고 다녔으니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라랜드>를 보고서 그 연애를 아주 오랜만에 떠올렸다. 그 때에는 우리의 마음이 그다지 뜨겁지 않아서 헤어졌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없다. 하지만 <라라랜드>의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의 이별이 '일과 사랑 사랑과 일' 사이에서의 선택이며, 가난과 연애, 취업 준비와 연애 사이에서 항상 양자 간 선택을 해야 하는 우리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페친들을 보며 잠깐 그 때가 떠올랐다. 비록 나는 배우를 꿈꾸는 LA의 미아가 아니고, 그 녀석도 진정한 재즈에 대한 열정으로 불타오르는 음악가가 아니었지만. 우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선택의 강요들을 받는다. 시간을 쓰고, 돈을 쓰고, 무엇에 몰두할 지를 선택해야한다. 서로 꿈을 응원해주었던 건전한 관계는 시간이 흘러 이별로 남았고 미아와 세바스찬은 서로의 미래 앞에서 눈빛을 교환한다. "훗, 너 잘 될 줄 알았어" "너도 꿈을 이뤘구나. 굿 좝" 그 눈빛 교환을 우리도 10년 후에 할 수 있을까. 사실, 10년이 흘렀는데 나는 여전히 시시하고 매번 틀린 선택을 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