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제일 좋아, 특이한 걸로...

트렌드 좇기의 최전방이 된 식품유행

by 김송희

400번만 저으면 된다더니, 커피와 설탕을 섞은 검은 물은 도무지 꾸덕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손목과 팔뚝이 저리지만, 지금에서야 포기할 수도 없다. 처음엔 맛이 궁금해서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는 나와 커피의 전쟁, 오기로라도 끝까지 해야만 한다. 400번이 아니라 4000번을 휘저었지만 액체 커피는 도무지 고체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 이제 포기포기. 결국 나는 대망의 거품기를 꺼내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지침으로 평일에는 재택근무, 주말에도 외출이 어려워지면서 집에서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한 각종 놀이가 온라인에서 유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달고나 커피’다. 베트남 길거리 커피에서 비롯한 달고나 커피는 인스턴트 커피 가루와 설탕을 1대1 비율로 섞고 소량의 물을 부은 후 이것을 미친 듯이 숟가락으로 휘저어 달고나 형태의 크림으로 만들어 우유 위에 부어 먹는 커피인데 단지 따뜻한 물에 커피와 설탕만 섞고 휘저었을 뿐인데 단단한 형태가 되는 과정이 신기해서라도 한번은 따라 해보고 싶어지게 되는 레시피다.


bbc에 소개된 달고나 커피


‘달고나 커피 만들기’는 그야말로 시간과 노력의 집약체라(거품기를 쓰더라도 3분 이상은 휘저어야 한다) 가성비를 따져본다면 썩 훌륭한 먹거리는 아니다. 힘든 것에 비해 맛도 그저그런 이 유행은 글로벌로까지 나아가 BBC에 Dalgona coffee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했는데, 비록 레시피는 베트남에서 유래했어도 해당 커피는 The Korean coffee drink로 소개됐다. 쿠킹 유튜버들 역시 모두 달고나 커피 영상을 제작했는데, 박막례 할머니는 분노의 숟가락질을 돌리시며 이런 명언을 남겼다. “집에 있응게 별 걸 다 해먹네. 한국인들은 일은 안 하믄 못 사는 스타일인가바. 왜 자꾸 일을 만들어. 야 니들은 하지 말어라. 커피 사먹는 게 최고야.”


할무니..............ㅜㅜ할무니 말씀 따를걸


SNS에서 유행한 식품은 달고나 커피 뿐만이 아니다. 달고나 커피가 커피 물을 400번 이상 휘저어 만드는 거라면 1000번 이상 휘저어서 만드는 계란말이(거품이 많이 날수록 계란이 포실해진다), 제티(분말 초코우유)를 1400번 저어서 만드는 제티떡, 감차를 채 쳐서 만드는 감자전 등등… 팔이 빠지도록 노동을 해야만 뿌듯한 완성작을 만날 수 있는 쿠킹 놀이가 유행한다. 한국인들은 왜 이렇게 노동 집약적 음식을 자꾸만 해 먹는 것일까. 어떤 요리가 얼마나 더 고생스러운지 경쟁이라도 하듯이 유튜브와 SNS에 너도 나도 인증하는 ‘쿠킹놀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수랏간 상궁조차 서바이벌 오디션으로 뽑는 <대장금>의 후예라 뭐든지 피땀 흘려야만 만족하는 민족인가.


왠지 색깔도 예쁜 외국까까


맛있다는 돈까스 집에 텐트까지 동원해 줄을 서고, 드디어 그 돈까스를 영접했다며 영상과 사진을 찍어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공유하고 ‘좋아요’와 ‘하트’를 받는 일. 식품의 영역에서 유독 구매와 공유가 활발한 이유는 먹거리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이 유별나서이기도 하지만 식품은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대가 낮아 접근하기 쉽기 때문이다. 사람 몸에 들어가는 음식이야말로 믿을 수 있어야 한다며 무조건 대기업의 식료품만 맹종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중들은 처음 보는 사이트에 접속해서 리뷰를 읽어보고 낯선 식료품을 구매하는 데에 심리적 허들이 낮다. 대기업도 아닌 마켓컬리와 같은 식료품 구매 사이트가 몇 년 만에 급성장한 것은 편리한 배송 시스템 덕분이기도 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만날 수 없는 신기한 해외 식료품과 지방의 작은 식품 제조업까지 입점 시킨 발 빠른 머천다이징 시스템이 한 몫했다. 서산 감태 캐러멜과 해초젤리, 네덜란드 마요네즈와 버터커피, 표고버섯 쌀과자와 타로카드 초콜렛 등...맛이 상상도 안 되는 특이한 식료품들을 이곳에서는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샀다가 실패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그래봤자 각 상품의 가격은 5천원에서 1만원 내외다. 재미 삼아 먹어보고 실패해도 크게 손해보지 않는 가격이다.


캔디맛바 사먹어봄

편의점마다 마라맛, 흑당맛 등 유행하는 소스로 때마다 신메뉴를 내놓고, 제과업계에서 괴상한 신제품들을 내놓는 것 역시 식품 판매에 있어서 ‘재미’와 온라인 마케팅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서다. 롯데제과에서 발매된 아이스바 죠크박(죠스바, 스크류바, 수박바)을 보자. 겉봉지만 봐도 누가 만우절 농담으로 합성한 것만 같다. 모양은 스크류바인데 색깔은 죠스바이고 안에는 수박바가 들어있다. 이 아이스바는 아무리 먹어도 스크류바의 청량함과 죠스바의 상큼함, 수박바의 단맛을 느낄 수 없다. 게다가 특정 편의점에서만 일정 수량 판매하기 때문에 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은 희소성이 높고 재미있을수록 발품까지 팔며 구매한 후 SNS에 인증샷과 해시태그를 남긴다. 물론 인증 글에는 이렇게 써 있다. “한번 사먹어 봤으니 됐어. 다음엔 그냥 수박바 사먹어야지” 이러한 기획상품은 젊은 세대에게 식품 구매가 경험과 공유의 영역에 있다는 것을 내다보고 만든 마케팅 상품이다. 맛이 없어도 괜찮다. 어차피 하나에 천원밖에 안 하는 이런 상품들은 맛이 없어도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음식에 관해서 한국인들은 매우 기준이 까다로운 사람들이다. 한때의 유행으로 지나갈 거라 여겨졌던 먹방, 쿡방이 방송 장르로 자리 잡고, 음식 프랜차이즈의 대표였던 백종원이 특유의 간편 레시피와 말솜씨로 지상파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여러 개 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식문화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상적으로 매일 음식을 먹되, 마라맛, 흑당맛 등 유행하는 식료품이 있으면 그것을 직접 맛보고 개인 SNS에 인증해야만 직성이 풀린다. 우리에게 이제 먹기란 일상이면서 일탈이기도 하다.


** 문화+서울 4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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