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라해 보일까 봐 쓰는 돈

by 김송희
그림 조예람


초등학교 때 전학 간 학교에는 급식이 없었다. 급식을 하던 학교에서 안 하던 학교로 전학 간 첫날, 나만 도시락이 없었다. 점심 무렵이 되어 엄마가 도시락을 학교로 가져다주었는데, 나는 그 도시락통이 너무 부끄러워서 밥도 안 먹고 책상에 엎드려 울어버렸다. 다정하기도 한 새 친구들이 몰려와 “송희야, 왜 울어. 도시락 안 싸 왔어? 밥 같이 먹자.”며 달래줬다. 나는 울음을 멈추고 처음 만난 친구들의 밥을 염치도 없이 나눠 먹었다. 도시락통은 누가 볼까 봐 책가방 속에 쑤셔 넣고 말이다. 친구들의 도시락 가방은 예쁜 캐릭터가 그려져 있거나, 둥근 보온도시락이었는데, 내 도시락은 짙은 감청색에 로봇이 그려져 있었고 낡아서 끝이 다 헤져있었다. 딸만 둘 있었던 우리 집에 왜 그런 도시락통이 있었는지 지금도 의문이다. 나는 집에 가자마자 도시락 가방을 방바닥에 팽개치며 소리쳤다. “나도 도시락통 사줘. 내 도시락만 이상해.”


엄마는 새 도시락통을 사주지 않았다. 내 것만 이상해. 다 있는데 나만 없어. 다른 부모에게는 백 퍼센트 먹힌다는 필살기 멘트를 날렸음에도, 엄마는 굶든지 말든지 맘대로 하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우리 집은 교복도 유별나게 구입했다. 친구들은 스마트, 엘리트, 스쿨룩스처럼 아이돌이 광고하는 매장에서 교복을 사는데 혼자만 어느 양복점에 가서 교복을 맞췄다. 재단사인 아빠 친구가 남들보다 싸게 맞춰준 중학교 교복은 알고 보니 나 홀로 디자인이 달랐다. 입학식 날 가보니 친구들은 단추 두 개가 달린 조끼를 입고 있는데, 내 조끼는 연미복처럼 단추가 하나만 달려 있었다. 왜 이상한 교복을 입었냐고 나를 불러 세웠던 학생 주임은 촌스러운 머리를 하고 쭈뼛거리는 나를 보곤 “엄마가 이상한 데 가서 맞춰줬냐.”며 혼내지도 않고 돌려보냈다. 아무도 내 교복 따위 눈여겨보지 않는데, 중학교 내내 누가 “와, 송희 교복 조끼만 이상해.”라고 할까 봐 조마조마했다. 무리 속에서 혼자만 튀고 싶지 않았다. 가난해서 시선을 끌고 싶진 않았다. 혼자만 낡고 특이한 옷을 입은 나를 사람들이 알아볼까 두려웠다. 그때부터일까. 나는 별로 갖고 싶지 않았던 물건이라도 남들이 다 갖고 있다고 하면 쉽게 돈을 썼다. 행색 때문에 남 앞에서 초라해 보이는 게 싫었다.


그런 식의 소비는 보이기 위한 과시적 소비와는 다르다. 그러니까, 사람들 사이에 잘 묻히기 위해 하는 소비인 셈이다. “쟤만 조끼 단추가 한 개야.”라는 비웃음을 당하지 않기 위해, 무리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기 위해 하는 소비다.


운동을 하려면 양말을 사야 해

얼마 전부터 필라테스를 배우기 시작했다. 비싼 운동 같아서 일단 상담만 받아보려 했는데, 상담 실장님이 “이 정도는 요새 다들 하시는 가격”이라며 “그렇게 부담은 안 되시죠?”라고 묻는데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돈 없어서 이 정도 운동도 못 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운동은 해야 하니까, 허리 디스크도 치료해야 하고.’라며 가장 저렴한 그룹 레슨을 끊고는 조심스레 물었다. “그런데, 옷은 새로 사야 하나요?” 날씬한 몸에 핑크색 필라테스 레깅스를 입은 실장님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아니에요. 갖고 계신 편한 옷 입으시면 돼요.” 물론 운동 첫날, 나 빼고 모두 요가복을 세트로 입은 모습을 본 나는 다시금 로봇 도시락통을 들고 온 아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요가 전용 레깅스가 아니라 일반 레깅스를 입고, 맨발인 사람도 나밖에 없었다. 옆자리 사람들은 전부 요상한 발가락 양말을 신고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토 삭스라는 이름의 물품으로 바닥에 미끄럼방지 스티커가 붙어 있는 양말이었다.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다가 넘어지지 않기 위해 신는 거라나? 토 삭스? 한국말로 하면 발가락 양말이란 소리잖아? 하지만 그걸 안 신은 사람은 나밖에 없어. 토 삭스 없이 맨발로 필라테스를 하면 다들 내 못생긴 발가락과 뒤꿈치 각질만 볼 것 같았다. 페디큐어도 하지 않은 뭉툭한 발톱과 허름한 티셔츠와 보풀이 일어난 레깅스. 안 그래도 수업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열등생이 옷까지도 가장 초라했다.


그러니까 나는 그냥 운동을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상담을 받다 보니 경험이 없는 초급자라 인원이 적은 그룹에 들어가야 했고, 그러다 보니 예상보다 비싸게 회원권을 끊어야 했다. 회원권만 결제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수업에 들어가니 옷도 사고 그놈의 토 삭스인가 뭔가도 새로 사야 할 것 같다. 수업 중간에 선생님은 내 몸이 너무 굳었다며 집에 있는 폼롤러로 자주 스트레칭을 해주라고 말했다. 눼? 폼롤러요? 그런 거 없는데요. 선생님은 얼마 안 하니까 하나 사두면 좋다며 마스크를 한 채 싱긋 웃었다.


폼롤러와 필라테스 전용 레깅스를 검색했다. 왠지 그 정도는 사도 될 것 같았다. 운동을 하면 건강에 좋으니까 이 정도 돈은 써도 되지 않을까. 남들은 다 있다잖아. 나만 없으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잖아. 3개에 9,900원 하는 토삭스, 한 벌에 3만 원 하는 요가복도 못 사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진 않았다.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그게 없다는 이유로 초라해 보일까봐, 나는 별로 갖고 싶지도 않았던 발가락양말을 구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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