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에 캠핑 방송이 나오는 이유
놀라지 마세요, 여러분. 2020년이 4개월 밖에 안 남았답니다. 마트와 백화점에선 벌써부터 추석선물세트 예약을 받고 있으며, 근교로 여름 휴가조차 가지 못한 채로 2020년의 여름이 저 멀리 떠나고 있다. 일상에서, 뉴스에서, 지겹도록 듣고 있을 터라 이 페이지에서는 되도록 피하려 했지만 다시금 지역 사회를 초토화시킨 이 역병에 대해 거론 안 할 수가 없다.
코로나19의 타격을 받지 않은 업계가 없겠지만, 그중 대면, 모객이 필요한 여행, 전시, 공연, 영화 업계의 타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반면, 집에서 콕 박혀서 시간을 보내야 하는 상황 덕분에 넷플릭스, 왓챠 등의 SVOD 서비스와 유튜브의 이용률은 껑충 뛰었으며, TV와 모바일로 영상을 접하는 이용자수 역시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렇다면 지상파 방송의 상황은 어떨까? 야외 활동이 줄어들었으니 당연히 작년 대비 동기간에 TV 시청률 역시 상승했다. 학교나 학원을 가지 못하고 홈스쿨링을 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서 10대 시청자들이 늘었고, 봄철 나들이 때문에 TV시청률이 하락하는 3, 4월에도 올해에는 작년 대비 TV 시청률이 10% 상승(시청률 기관 닐슨 기준)했다. 그러나 코로나와 홍수 등의 재난 상황에 뉴스 시청률은 크게 오른 반면 드라마나 예능의 시청률 상승폭은 크지 않다.
특히 2030 시청자들은 같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TV 플랫폼보다는 넷플릭스, 웨이브, 왓챠 등을 이용하며, 사회적 전망이 불투명하고 마음이 어두운 시기에 복잡하고 어두운 내용의 콘텐츠는 꺼리는 현상이 시청률에 반영되었다. 집중력을 가지고 70분간 이야기를 따라가야 하는 복잡한 드라마보다는 짧은 스낵콘텐츠나 이해가 쉬운 예능의 조회수와 시청률이 더 높았다. 미래도 충분히 어두컴컴한데 미디어에서까지 복잡하고 어두운 내용을 접하고 싶지가 않은 심리적 이유가 작용했을 것이다.
코로나 시대의 여행 방송
미디어에서도 야외 활동을 권장해선 안 되는 상황에 아예 폐지되거나 방송 내용을 바꿔야만 하는 예능 프로그램도 속출한다. 특히 여행 방송들이다. 가성비 좋은 해외 여행을 소개하던 <배틀트립>은 코로나 이후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는 것으로 내용을 바꿨지만 지난 4월 종영했고, <더 짠내투어> 역시 제주, 부산, 동해 등 지방 도시를 소개하다가 8월 종영했다. 낯선 곳을 갈 때마다 방송 하단에는 ‘사회적 거리두기 수칙을 지켜 촬영했으며 마스크는 방송 촬영 중에만 잠시 벗었다’는 자막을 넣어야만 했고,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 시국에 굳이 방송을 해야 하느냐는 지적까지 올라왔다. 더구나 출연진은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으니 시청자는 사람을 변별할 수도 없고, 현실을 떠난 일탈이라는 방송 취지도 퇴색돼버린다. 마스크를 하고 국내 여행지를 다니며 호들갑스러운 리액션을 쏟아내봤자 그게 재미있을 리가.
그렇다고 예능 소재로 자리 잡아 버린 여행을 포기할 순 없는 노릇. 그래서 제작되기 시작한 것이 ‘여행을 하긴 하되 사람과 접촉하지 않고’ 정주하는 캠핑 방송이다. 떠나서 정주하는 삶.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만 최근 만들어지는 예능들은 비대면의 정주를 지향한다. 성동일, 여진구가 출연하는 <바퀴 달린 집>은 캠핑카를 타고 하루 한곳에 머물면서 집주인의 친구들을 캠핑카로 초대한다. 있을 건 다 있는 럭셔리 카라반을 뒤에 싣고 주변에 아무것도(특히 사람) 없는 벌판이나 해안가에 짧게 정주하며 이들은 ‘힐링’을 취한다. 정유미와 최우식의 <여름방학>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린 시절 여름방학 할머니 집에 머물 듯이 바닷가 시골 마을 집 한 채를 빌려 단기간 머물며 밥을 해 먹고 개를 키우며 서핑을 한다. 이런 류의 힐링 프로그램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삼시세끼>의 변형인데, 코로나 시기에 돌아 왔던 <삼시세끼-어촌편5>는 심지어 무인도에 들어가 완전히 자급자족하는 과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첫 방송부터 이들은 이 섬은 주민이 한 명도 없고, 슈퍼조차 없다고 설명한다.
<나 혼자 산다>에서 캠핑 취미를 공개했던 배우 이장우와 <동상이몽2-너는 내 운명>에서 가족과 캠핑을 떠난 송창의 역시 방송에서 자신의 캠핑카를 자랑했다. 과거 액티비티한 라이프 스타일, 자연 속에 들어가는 고즈넉한 취미가 캠핑이었다면 요즘의 캠핑은 도심, 사람, 바이러스와의 단절까지 아우른다. 이들은 여행을 떠나서 새 친구를 사귀지 않는다. 캠핑카와 무인도, 시골집에는 오직 ‘원래 알던 친구나 내 가족’만이 초대받는다. 더이상 여행은 새로운 풍경, 낯선 사람을 사귀게 해주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비대면 시대에 떠나기 위해선 자급자족이 가능한 캠핑카가 필요하며 이들은 옆 텐트와 나를 차단시킬 수 있는 ‘비대면’ 공간으로 활용된다. 과거의 여행이 낯선 곳으로 떠나 몰랐던 나를 발견하거나 새 친구를 사귀고 추억을 만드는 과정이었다면,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처럼 인적이 없는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오직 자연만을 벗으로 삼으며 ‘대중’과 나를 차단하는 삶에 가깝다. 사람을 만나지 않아야만 그나마 안전할 수 있는, 비대면을 적극 권장하는 코로나 시대에는 여행 마저도 단절이 기본이다.
반면 유튜버들은 저렴한 방법으로 여행 콘텐츠를 대체한다. 여행을 주제로 영상을 찍어오던 유튜버들은 어쩔 수 없이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웃기거나 신기한 도전을 해야만 조회수를 유지할 수 있다. 여행 유튜버 빠니보틀은 저렴한 국내 여행지를 소개하던 끝에 허경영의 랜드 하늘궁을 국내 여행지로 소개해 조회수 75만을 기록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제 다시 코로나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고 진작에 공표했다. 영국의 면역 전문가 마크 월포트 박사는 “어떤 형태로든 영원히 코로나는 인류와 함께할 것”이라고 경고했는데, 듣자마자 왠 살벌한 고백인가 싶다. 이제 됐으니까 그만 나를 떠나줘 코로나야, 너와 더 이상 함께 하고 싶지 않아, 라고 이별을 고했음에도 이 스토커는 너무나 끈질겨 영원히 인류와 함께 하겠노라 선언한다.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떠나는 여행은 당분간 우리에게 허락되지 않을 것이다. 여행 소재의 콘텐츠마저 이제는 ‘단절’과 ‘차단’을 말한다. 여행을 떠나 마스크를 벗고 카메라 앞에서 침을 튀기는 순간 그 영상에는 악플이 달릴 것이기 때문이다. 캠핑카와 카라반을 빌릴 수 없고, 생업을 포기하고 오두막으로도 떠날 수 없는 사람에게 코로나 시대의 여행은 어떤 방법으로 지속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은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9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