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안 자전거길(경북) 종주기 - With 친애하는 형님 두 분
8월 하면 무엇이 생각나시나요? 저는 뜨거운 태양과 시원한 바다가 먼저 생각나네요. 8월 13일, 자전거를 사랑하는 세 명은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하러 동해안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물론, 자전거를 사랑하는 사람들 답게 바다를 보며 자전거를 탈 생각을 했죠. 너무 자덕스럽나요? 이번에 함께 떠나볼 곳은 동해안 국토종주길 중 경상북도 구간입니다. 준비 되셨나요?
자덕들, 포항으로 떠나다.
"바다 보면서 자전거 타자."
6월부터 이런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인천부터 부산까지 장장 633km에 달하는 국토종주를 하기엔 너무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북한강길 같이 평이한 코스는 아무 때나 갈 수 있고... 여름 휴가를 맞아 자전거 탈 계획을 세우던 저희는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단순히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 여행'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우리나라 국토종주 길에 동해안을 따라서 달릴 수 있는 국토종주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동해안 국토종주길은 총 두 구간(강원도 구간, 경상북도 구간)으로 나뉘어 있어요. 저희는 국토종주 길을 달리는 내내 동해안을 볼 수 있는 것에 굉장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중간 중간 인증센터가 있어서 국토종주 수첩에 인증도장을 찍는 맛도 있구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여름 휴가 기간 자전거 여행은 동해안으로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총 330km로 이루어져 있는 동해안 국토종주길을 전부 달리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경상북도 구간만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8월 13일 7시 40분, 출발지인 영덕으로 향하는 버스를 예매하고 아침을 먹은 후 버스를 타기 위해 이동한 저희는 여행을 떠나기도 전에 커다란 난관에 봉착합니다. 영덕으로 향하는 자덕들이 너무 많아 자전거를 실을 자리가 없었던 것이죠. '설마 평일 새벽에 누가 영덕을 가겠어?'라고 안일하게 생각한 저희의 잘못이었습니다. 결국 저희는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고 눈앞에서 영덕으로 가는 버스를 떠나보내게 되지요. 긴급 대책회의 후 내린 결정은 영덕과 가장 가까우면서 해안도로 진입이 쉬운 도시, 포항으로 향하기로 합니다. 다행히도 포항에 가는 버스가 여덟시에 바로 있었지요. 그렇게 뜻밖의 포항행 버스에 몸과 자전거를 싣게 됩니다.
포항까지 가는 길은 굉장히 멀었습니다. 버스에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고, 이름 모를 휴게소에 들르기도 하며 장장 4시간을 달린 끝에 포항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동해안 해안도로로 진입, 본격적인 라이딩을 시작하게 됩니다! 역시 분식은 어느 지역에서 먹어도 맛있는 음식이군요.
포항~영덕 해맞이공원 인증센터
이 구간은 동해안 자전거도로 표시는 되어 있는데 중간에 인증센터는 없었습니다. 아직 완공되지 않았고, 언제 완공될지 불투명하다고 하네요. 이 날 포항의 온도는 최고 34도. 작열하는 태양에 감탄하며, 생각보다 힘든 여정이 될 거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습니다.
해안도로와 7번 국도를 따라 달리기 시작한 저희는 곧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여기 왜 이렇게 언덕이 많지요? 큰 산의 고갯길을 넘는 것은 아니지만, 자잘한 언덕들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등에 짐을 매고 언덕을 오르기란 정말로 쉽지 않군요. 언덕을 오를 때는 정말 힘들지만, 내려갈 땐 그 동안의 고생을 전부 보상받는 느낌이지요. 내려가면서 오른편으로 보이는 바다는 찌는 듯한 더위와 수 많은 언덕에 지친 저희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바다에 들어가진 않았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시원하게 해 주는 여름 바다의 매력을 또 한번 느꼈네요.
첫 목적지인 영덕까지 14km정도 남았을 무렵,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기게 됩니다. 자전거 뒷바퀴에 펑크가 발생했습니다. 멈춰서 상태를 자세히 살펴보니, 옆쪽 타이어가 찢어져 펑크 패치로만은 수리가 불가능한 상황. 잠시 고민을 하던 저희는 임시로 타이어를 수리한 후 영덕 시내에 있는 자전거 샵에 가서 타이어를 교체하기로 했습니다. 다행히도 형님께서 항상 펑크 패치를 가지고 다니신 덕분에 금방 응급처치를 완료할 수 있었지요. 장거리 라이딩을 갈 땐 꼭 수리 키트를 가지고 다녀야겠다고 느꼈네요!
임시조치를 한 후 다시 해안도로를 달려 영덕 시내로 향했습니다. 시간이 벌써 오후 6시를 넘어가고 있었지요. 시내에 들어온 김에 저녁도 함께 해결하기로 했습니다. 일단, 자전거 가게에 들러 찢어진 타이어와 튜브를 교체했습니다. 사장님께서 타이어를 교체하시는 동안 저희는 근처에 무슨 음식이 있는지 검색했지요.
하지만 마땅한 음식점이 나오지 않아서, 자전거 가게 사장님께 영덕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여쭤보았습니다. 대게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물회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아무래도 대게는 여행 특성상 제대로 먹기가 어려웠기에... 가까이 있는 물회집으로 향했습니다. 영덕의 물회는 먹는 방식이 조금 특이했습니다. 원래 물회는 물이 담겨져 나오는게 보통인데, 영덕의 물회는 회와 야채만 그릇에 담겨 나왔습니다. 그리고 초고추장과 물을 자신의 기호에 맞게 넣어서 먹을 수 있더라구요. 혹시 경상북도 해안가 여행을 가신다면 꼭 물회를 한 번 드셔 보세요.
저녁을 든든히 먹고, 영덕 해맞이공원 인증센터로 출발했습니다. 해가 점점 지면서 생겨나는 노을이 아주 멋지더군요. 해가 넘어가며 하늘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니 서울에 두고 온 여러 걱정거리들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저희는 눈 앞에 펼쳐진 끝없는 오르막길을 보고 좌절했는데요. 길이도 길고 경사도가 상당히 높아서 올라가는 내내 가쁜 숨소리만 들렸다고 하네요.
언덕 정상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며 편의점을 찾았지만 전부 문이 닫혀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떠나려는 순간 한쪽에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자판기를 발견했습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기분이 이런 걸까요? 단숨에 음료수캔을 비우고 난 후 신나게 언덕을 달려 내려오고 나니 길 한가운데에 서 있는 빨간 인증센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였다면 제일 먼저 왔어야 할 인증센터인데, 버스에 탑승하지 못하는 바람에 해가 지고 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네요. 덕분에 푸른 바다를 더 많이 볼 수 있었다는 점은 아주 좋았지만 말이죠! 공원 이름이 왜 해맞이 공원인지 정확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높은 언덕 위에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의심을 한 번 해봤습니다 ^^..
영덕 해맞이공원 인증센터 ~ 영덕 고래불 해수욕장
인증 센터에서 도장을 하나 찍고 나니 갑자기 자신감이 상승했습니다. 이미 해는 다 져버렸지만, 저희는 전조등을 환하게 밝히고 야간 라이딩을 강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낮에 보는 바다와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밤바다가 저희를 반겨주었지요. 낮의 바다는 활기가 넘치고 생동감이 있었다면 밤의 바다는 적막함과 고요함을 안고 보는 사람을 생각에 잠기게 했습니다. 시간은 저녁 9시. 불야성의 서울이었다면 저녁 9시는 한창 떠들썩한 시간이었겠지만 동해안의 9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해안을 따라 펼쳐져 있는 도로에는 적막만이 감돌았고, 간간히 나오는 해변 마을도 모두가 잠든 듯 조용했습니다. 가끔씩 들려오는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만이 이 고요함을 깰 뿐이었지요. 모든 걸 태워버릴 듯한 기세의 태양이 지고 나니, 바다의 서늘하고 시원한 기운이 올라와서 달리기는 훨씬 좋았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달렸을까요? 표지판에 다음 인증센터인 '고래불 해수욕장'이 보이기 시작했고, 서서히 주변 풍경도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고요함이 감돌던 주위 풍경은 점점 활기를 띈 불야성으로 바뀌었지요. 도로에는 해수욕을 마치고 야식을 먹으러 나온 인파들이 가득했고, 그런 해수욕 인파들을 손님으로 맞이하기 위해 다양한 음식점과 카페들이 찬란한 불빛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습니다. 구경을 하며 천천히 가던 도중 반가운 빨간색 전화박스가 보이네요. 고래불 해수욕장 인증센터에 도착했습니다.
사진을 찍고 국토종주 수첩에 도장을 찍고 나서 잠시 고민했습니다. 여기에 숙소를 잡고 자기에는 아직 체력이 많이 남아서 아깝고. 그렇다고 다음 인증센터인 월송정 인증센터 주변에는 숙소가 없고. 지도를 찾아보던 중 월송정 인증센터와 가까운 곳에 후포 해수욕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해수욕장 근처에는 분명 숙소가 많을 터, 거기에서 하루를 보내고 여행을 이어가자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영덕 고래불 해수욕장 ~ 울진 후포리 해수욕장
원래 자전거 대회에 참가할 땐 마지막 10km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고래불 해수욕장을 벗어나 다시 긴 적막 위를 달릴 때 잠시 후회했습니다. '그냥 고래불 해수욕장에서 숙소를 잡을 걸 그랬나?' 하구요. 특히 간간히 있는 언덕을 만날 때면 더 그랬습니다. 해안도로라서 그냥 평지일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꽤 난이도 높은 업힐들이 곳곳에서 나타나니 체력적으로 부담이 많이 되는 상황이었지요. 사실 야트막한 언덕도 굉장히 부담이 되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올 때면 '이대로 월송정까지 가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덕을 만날 때 마다 마음을 강제로 고쳐먹게 되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울진군입니다.'라는 표지판을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요. 포항, 영덕을 거쳐 드디어 울진군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세 명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환호성을 질렀네요. 목적지인 후포리 해수욕장은 고래불 해수욕장만큼 화려하고 번화하진 않았지만, 세 명의 지친 몸을 받아주기에는 아주 충분했습니다. 오늘의 여정도 끝났겠다, 신난 저희는 여러 숙박 시설을 알아보며 저희끼리 마구 떠들었습니다. 숙박 시설 얘기였는데요, 남자 세 명이서 얼마 정도에 숙박 시설을 구할 수 있는지 한창 토론 중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형님께서 '내가 사장이라면 남는 방은 빈 방으로 안 둔다. 5만원 정도면 합의 볼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지나가던 아주머님이 피식 웃으시더니 '이 근처에서는 그 돈으로는 안 될텐데...'라는 말씀을 남기고 빠른 걸음으로 저희를 지나가셨습니다.
본능적으로 저희는 그 분이 숙박업소 사장님임을 깨닫고, 달려가서 가격 흥정을 시작했습니다. 결과는 대 성공. 남자 셋이 자전거 세 대를 가지고 5만원에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이불을 깔고 바닥에 등을 대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정말 긴 하루였네요. 아름다운 바다 풍경과 멋진 것들도 많이 보았지만 더위에 너무 많이 지친 하루였습니다.
울진 월송정 인증센터 ~ 울진 망양휴게소 인증센터
뜨거운 태양이 저희를 다 태워버리기 전에 여정을 끝마치고 싶었던 저희는 오전 6시에 출발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만, 늦게 일어나는 바람에 7시 30분에 출발하게 되었네요. 나가면서 간단하게 연양갱과 이온음료 등으로 아침을 먹은 후 후포 해수욕장을 벗어나 월송정 인증센터로 향했습니다. 거리상 4km정도밖에 되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지요. 가는 도중 오른편을 보면 항상 바다가 보였는데 어찌나 예쁘던지요. 파란 하늘과 바다가 어우러져 금방이라도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루 푹 자면서 체력을 회복했다고는 하나, 전날 지친 체력이 100% 돌아오지는 않은 상태였습니다. 역시나 동해안 자전거길은 저희를 그렇게 쉽게 보내줄 생각은 없었지요. 계속해서 크고 작은 언덕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냥 올라가기도 힘든데, 등 뒤에 짐을 매고 언덕을 올라가려니 체감상 두 배는 힘든 느낌이었네요. 그래도 언덕을 다 오른 뒤의 뿌듯함과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느끼는 시원함은 언덕을 오를 때의 고통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물론, 다는 아니지만요. ^^
산 넘고, 물 건너, 바다보며 달리다 보니 어느덧 망양휴게소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망양휴게소는 7번국도에 있는 휴게소로, 차들이 정차하며 쉬어가는 휴게소입니다. 저 멀리 해안가에 큰 건물이 보였을 때 부터 '저게 바로 망양휴게소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휴게소 입구에 반가운 빨간 전화박스가 서 있더군요. 경북 동해안 자전거길 다섯 개의 인증센터 중 총 4개의 인증센터 도장을 획득했습니다. 저희의 여정이 얼마 남지 않았군요. 휴게소의 전망은 정말 환상적이었습니다. 바다 쪽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탁 트인 바다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섬에서 아침을 먹는 기분이었지요.
든든하게 아침을 챙겨먹고는, 다음 목적지로 떠날 준비를 했습니다. 슬슬 바깥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거든요. 마지막 목적지까지는 약 15km정도. 150km의 여정의 대단원이 슬슬 보이고 있었습니다.
울진 망양휴게소 인증센터 ~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
마지막 10km가 힘들다는 얘기를 언젠가 한 번 한 것 같군요... 바깥 온도는 벌써 30도를 넘어서고 있었습니다. 습기도 높아서 숨을 쉴 때 마다 폐에 뜨거운 공기가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었지요. 지금까지 만났던 큰 언덕들은 없었지만 아주 작은 언덕도 버거울 정도로 꽤나 체력이 빠진 상태였습니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자전거도로는 작은 하천과 이어졌습니다. '남대천'이라는 하천인데, 바다와는 또 다른 풍경이 저희를 맞이해 줬습니다. 서울의 안양천이나 중랑천보다는 약간 더 한적한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강 저 편으로는 푸른 나무들이 서 있었고 한쪽으로는 울진 시내의 잠깐씩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잠시 달리다 보니 특이하게 생긴 다리가 하나 보였습니다.
저희 여행의 종착지인 울진 은어다리였습니다. 지친 몸을 이끌고 마구 페달을 밟아서 이틀, 총 150km의 마지막 관문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울진 은어다리 인증센터의 도장을 획득했습니다. 이상하게 도장에서 빛이 나는 것 같네요!
에필로그
은어다리와 울진 터미널간의 거리는 약 2km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동해안은 가는 곳 마다 사람이 별로 없고 한적했는데 서울로 올라오니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북적이는 도심을 피하고 싶다면 동해안으로 떠나보세요. 낮에는 파란 하늘과 그보다 더 파란 바다가 활력을 불어넣어 줄 거에요. 밤에는 고요하고 적막한 밤바다와 이따끔 들리는 파도 소리가 당신을 사색에 잠기게 해 줄 거에요. 자전거를 타고 여행했기에 더 뜻깊었던 여행이었습니다. 힘들고 덥고 지쳤지만 지나고 나니 아름다운 사진과 추억만 남았네요.
자전거로 떠나는 동해안 국토종주, 꼭 한번 가 보시길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