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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erimi Sep 10. 2021

파마머리도 참 예쁘다


여덟 살 딸아이가 생애 첫 파마를 했다.


엄마와 아빠 모두 반곱슬 머리카락인데 비해 딸은 곱슬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반듯하게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졌다. 머리숱까지 굉장해서 아침에 묶어줄 때마다 여간 힘든 게 아니라 기회가 되면 파마를 한 번 시켜봐야겠다고 어렴풋이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마침 얼마 전 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먼저 파마를 하고 나타났다. 꽤 부러운 듯한 눈빛을 하길래, '너도 파마할래?' 물으니, 기다렸다는 듯이, '응!' 하고 대답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딸은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심지어 깨우지도 않았는데 혼자 벌떡 일어나 엄마를 찾았다. 동생은 할머니 댁에 가 있고, 엄마와 둘이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하기로 한 날이라 어지간히 신이 난 듯했다.


향기롭지 않은 파마약 냄새와 가볍지만은 않은 롯드를 머리에 얹은 채 1시간 40분가량을 앉아만 있으면서 힘들 법한데도 아이는 마냥 웃었다.



내가 생애 첫 파마를 했던 때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던 우리 엄마는 어깨에 닿지 않는 단발머리의 끄트머리만 안쪽으로 도르르 말린 파마머리를 했다. 한두 달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파마를 했는데, 그때마다 나는 뒤에 있는 소파에 앉아 엄마의 머리가 완성되는 걸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었다. 돌돌 말리는 머리카락이 신기하고 예뻤다.


학교에도 동네에도 파마를 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 오래 그 아이들을 부러워했고, 미용실에서 돌돌 말려가는 엄마의 머리를 보면서 나도 한 번쯤은 해주면 안 되려나, 하는 생각을 했다.


결국 엄마에게 파마를 시켜달라고 조른 것은 그때의 나로서는 정말이지 몇 날 며칠의 간절한 고민 끝에 겨우 냈던 커다란 용기였다.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서 친구가 다니는 피아노 학원에 보내달라고 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고 있을 만큼, 나는 엄마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며 얼마나 힘들게 우리 남매를 키우고 있는지를 잘 아는 아이였다. 그런데도 파마만큼은 포기가 안되었던 거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을 즈음, 곧 6학년이 되고 또 곧 중학생이 될 테니까, 그러니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테니까, 딱 한 번만 파마를 시켜달라고 조르는 내게 엄마는 한참이나 화를 내다가 결국 파마를 해주었다.


마침내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양갈래로 나눠 묶고서 학교에 가던 그날의 설렘. 조용하고 부끄럼이 많아 친구도 많지 않던 내게 같은 반 여자아이들이 다가와서, '예쁘다!', '인형 같아!' 라며 건네는 그 칭찬들에는 어찌나 기분이 좋던지.


하지만 그날 저녁, '애들이 나한테 인형 같대!' 라며 들뜬 내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참나, 니가 인형처럼 예쁘기나 하나?' 그 핀잔에 나는 더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희미하지만 지워지지는 않는 옛 기억에 쓸데없이 기분이 잠겨갈 즈음 딸아이는 롯드를 풀고 중화제를 바르고 있었다. 파마가 아주 잘 나왔다는 미용사의 말에 너무 심하게 뽀글거리면 어쩌나 하는 소심한 걱정이 살짝 따라왔다.


먼저 파마를 했던 딸아이의 친구 ㅇㅇ이 엄마의 말에 의하면, ㅇㅇ이가 학원에서 제일 친하게 노는 친구 ㅁㅁ이가 ㅇㅇ이의 파마머리를 보자마자 했던 말이, '아줌마 같다.' 여서 ㅇㅇ이가 속상해했기 때문이다. 내 딸아이에게도 분명히 그렇게 말하는 아이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마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신나서 걷는 딸에게 예쁘다는 폭풍 칭찬을 건네면서, '너도 마음에 드는 거지?'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그래, 네 머리니까 네 마음에만 들면 돼.'라고 굳이 덧붙여주었다. 오후에 학원에서 만날 친구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으니 혹시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아이는 학원에 갔고, 나는 혼자 남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쓰면서도 여러 장 찍어둔 딸아이 파마머리 사진을 몇 번이나 들여다본다. 너 참 예쁘다.





빠듯한 살림에 파마를 시켜달라 조르던 딸이 그리도 미웠을까. 생애 처음 파마를 했던 열두 살의 내게 끝끝내 예쁘다고 말해주지는 않던 내 엄마에 대한 원망은 이미 예전에 할 만큼 다 했다. 이제는 그때 그 외롭고 고단했던 엄마의 삶을 끌어안아 함께 토닥여주어야 한다는 것도 알 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고.


그리고 어른이 되어 부모가 된 나는 부모가 아이에게 모든 순간에 반드시 객관적이기만 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너 참 예쁘다. 너는 뭘 해도 예뻐. 괜찮아, 누가 뭐래도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네가 하는 거니까 네 마음에 들면 되지. 다른 사람 시선이 뭐가 중요하니.' 그런 말들을 나도 조금은 듣고 자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도 종종 든다.


하지만 그것도 별 수 없다. 이미 다 지난 일이다. 그때 못 들었으니까 지금이라도 듣는 수 밖에는 없다. 내 아이에게 말하면서, 내 안의 아직 어린 나 자신도 함께 들을 수 있게 가만히 속삭여본다.


"너 참 예쁘다.

 너는 뭘 해도 예뻐.

 괜찮아, 누가 뭐래도 네가 하고 싶으면 해.

 네가 하는 거니까 네 마음에 들면 되지.

 다른 사람 시선이 뭐가 중요하니.


 언제라도 어느 순간에라도

 너를 사랑하고 응원한단다."


2021.8.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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