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종이 비행기 Aug 28. 2023

My Beer Friend

치앙마이에서 생맥주 한 잔

작년 여름에는 방콕에 있었고, 올해는 치앙마이에 있다. 여행자의 신분이 아닌 근로자의 본분으로, 여름휴가가 아닌 여름 출장으로 체류하고 있다는 게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다.


태국은 지금 우기다. 애플 워치의 날씨 어플은 호우 경보를 나타냈지만, 5분 정도 살짝 비가 흩뿌린 것 말고는 쾌청한 날씨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태국의 날씨를 너무 얕잡아 봤다는 것이다. 비 구름만 걱정을 하고, 태양의 열기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오늘 하루 종일 6시간 정도, 거의 4만보 가까이 걸었다. 해는 이미 본인의 소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상태다. 땅거미가 내린다.


“생맥주 딱 한잔만 하고 들어갈까?" 

이 정도 리워드는 해줘야 다음에도 몸이 말을 들을 것 만 같았다. 30대 때 하루 종일 앙코르 와트 사원을 걷고, 땀을 한가득 흘린 후 마시던 맥주의 맛을 몸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우나 안에서 땀을 쫙 빼고, 살얼음이 떠 있는 식혜가 목구멍을 넘어가는 그런 느낌을 기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My Beer Friend

어찌어찌 검색을 하고, 리뷰를 읽고, 가게를 하나 골랐다. 입구에는 VISA 카드를 환영한다는 문구가 쓰여있다. 나는 핸드폰 어플을 켜고, 충전식 카드에 맥주 두 잔 가격의 바트를 환전해 넣었다. 혹시나 몰라 수중에 현금이 얼마나 있는지도 확인한다.


My Beer Friend 가게 앞


가게는 생맥주와 병맥주, 캔맥주를 팔았는데 당연히 맥주는 ‘생’으로 마셔야 하는 것 아닌가? 2번과 3번이 태국의 Craft Beer라고 해서 3번을 골랐다.

맥주 고르기


가게 안은 분위기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건너편에서는 한국에서 온 두 여행객이 무언가 열심히 하소연과 맞장구의 콤비를 보여주고 있다. 다른 나라 말이었으면 음악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모국어다 보니 그들의 목소리는 쇼미더머니 우승자의 딕션 같이 너무나 또렷하게, 가게 안에서 울려 퍼지는 적지 않은 소리의 비트를 뚫고 내 귀에 꽂힌다. 


드디어 맥주가 한잔 나왔다. 나는 회를 초장맛으로 먹듯, 맥주도 그렇게 미감이 예민하게 발동되어 마시는 그런 부류의 사람은 아니다. 맥주 애호가라기보다는 어쩌면 이렇게 사진 한 장 남긴 후, 그것을 빌미로 글 한편 쓰는 것을 즐기는 활자 애호가에 가깝다. 그래도 이렇게 하루종일 땀 흘리고 난 뒤 마시는 맥주의 청량함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시원한 맥주 한잔


260바트.

딱 한잔을 비웠다. 카운터로 다가가 비자 카드를 내밀었더니, 카드는 30%의 수수료가 붙는다고 한다. 그래서 지갑에서 100바트짜리 지폐 세장을 꺼낸다. 잠시만! 20바트 지폐가 너무 많아 60바트는 작은 돈으로 계산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계산대의 기계에 내가 먼저 건넨 300바트를 입력해서 다시 조정하기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게 뭐 대수일까. 비용을 치른 후,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가게를 빠져나온다. 


가게를 빠져나와 호텔로 향하는 길에 예쁜 스타벅스가 있다. 저기에서도 커피를 한번 마셔 볼 걸 그랬나. 사실 나는 커피 애호가라기보다는 어쩌면 이렇게 사진 한 장 남긴 후, 그것을 빌미로 글 한편 쓰는 것을 즐기는 문자 애호가에 가까우니깐.

치앙마이의 스타벅스


“띵~”

비행기 랜딩 사인이다. 시간 여행을 다녀온 듯 눈을 한번 깜빡하고 났더니, 나는 어느새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 앉아 있다. 창 밖을 보니 어제 마셨던 시원한 맥주의 거품 같은 구름이 반기고 있다. 


내일도 또 출장이다.


2023년 7월의 기록



                     

매거진의 이전글 1.1 Midnight in Pari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