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비상구 좌석 배정에 대한 이야기
내가 다리가 좀 아픈데, 넓은 비상구 좀 주면 안되는교?
카운터에서 손님들을 안내하다 보면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꼭 있다. 그럴 때면 비상구 좌석은 비상 상황시 승무원과 함께 손님들의 비상 탈출을 도와주셔야 하기 때문에 신체에 불편함이 없어야 한다고 설명드리고 정중하게 거절한다. 요즘은 비상구 좌석도 유상으로 판매하고 있다. ㄱ비용에 대한 부분을 안내해 드리면 그냥 돌아가시기도 한다. 물론 구매를 한다고 해도 건강한 신체와 정신은 기본이다.
운이 좋게 무상으로 비상구 자리를 배정받았다고 해도 컨디션 체크는 필수다. 비상구 좌석이라도 일반석과 동일한 여유 공간(leg room)을 가진 비상구도 있으니 확인해야 한다. 비상구 좌석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런 비상구 좌석이 아닐 수도 있다.
비상탈출 시 장애물이 될 수 있는 손가방 등은 필히 머리 위 선반(Overhead Bin, OHB)에 넣어야 한다. 그리고 비상구 위치에 다라 등받이가 젖혀지지 않는 좌석도 있으니 참고하자. 통상적으로 비상구 좌석을 배정받은 손님은 유의사항에 대해 두 번 안내를 받는다. 첫 번째는 탑승수속 카운터에서, 두 번째는 기내 탑승 후 승무원으로부터 비상구 좌석에 대한 유의 사항과 비상 상황 발생 시 승무원을 돕겠다는 동의 절차를 거친다.
비상구 좌석 배정 절차는 항공사에서 자의적으로 수립하는 것이 아니다. 국토교통부 운항기술기준(고시)에 의거하여, '비상구열 좌석 배정 절차'라는 국토부 인가 매뉴얼에 따라서 해당 업무를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만 15세 이상으로 승무원과 소통하며 비상탈출 업무를 도와줄 수 있는 신체 건강한 손님이 해당 좌석에 배정이 가능하다. 많은 항공사에서 해당 좌석을 유상으로 판매도 하고 있지만, 기본적인 배정 조건이 되지 않으면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해당 좌석을 구매할 수 없다.
세상이 참 흉흉하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샤이(shy) 돌아이들의 출현에 사람들의 마음은 너무 건조해지고, 작은 스파크에도 커다란 불길이 일어난다.
지난 5월 아시아나 항공기 OZ8124편은 대구공항에 착륙을 준비한다. 착륙하기 직전 213m 상공에서 비상구좌석에 앉은 승객이 항공기의 비상구 개폐 레버를 당겨 문을 개방하는 사고가 발생한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당시 전국소년체육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많은 청소년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상황이 얼마나 무서웠을까.
해당 승객은 항공보안법 위반 및 재물손괴 혐의로 구속되었다. 참고로 한 기사에 따르면, 이번 비상구 개방 사고와 관련된 수리비만 6억 2천만 원이라고 한다. 수리로 인해 항공기 운항을 못한 것까지 감안하면 손해액은 그 이상이다. 그런데 돈이 문제일까.
비상구 문이 개방되는 방식은 '여압 방식'과 '핀 방식'이 있다. '여압 방식'은 기내와 외부의 기압 차를 이용해 출입문이 열리고, '핀 방식'은 비행 중에는 수동으로 문을 열 수 없다. 해당 기종은 '여압 방식'으로 문을 열 수 있는데, 200m 상공에서는 외부와의 기압차이가 거의 없어 해당 승객이 비상구 문을 열 수가 있었다.
지난 7월 31일, 정부와 국회는 ‘여객기 비상문 강제 개방 사건’ 등을 방지하기 위해 비상문 좌석에 소방관과 경찰관, 군인등 제복 공무원을 우선 배정하는 방안을 마련했다. 그리고 항공사에 관련 세부 업무절차 협의를 위한 문서를 발송한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도 제복 공무원들은 현장에서 공무원증을 제시하면 무상으로 비상구 배정이 가능하다. 지난 9월 6일에는 경남소방본부와 '항공기 비상구 좌석 소방관 우선 배정 협약'을 맺는다. 같은 날 티웨이 항공은 소방공무원에 대해 비상구 잔여 좌석을 무상으로 배정한다는 기사를 배포한다. 참고로 티웨이가 보유한 항공기는 '핀 방식'으로 손님이 임의로 비상구를 개방할 수는 없다.
공동체의 신뢰는 사회 구성원 간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약속이다. 지난 5월 중국의 한 국내선 항공편을 이용했을 때, 승무원 이외에도 남자 기내 보안요원이 함께 탑승을 하였다. 신뢰 사회가 구축되지 않으면 사회적 비용이 상당히 많이 발생한다. 스타벅스 안에서 노트북을 테이블에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워도 걱정은 되지 않지만, 스타벅스 밖에는 자전거의 자물쇠를 채우지 않으면 불안한 우리나라는 신뢰 사회의 어느 단계를 지나고 있는 걸까.
* 참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