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간 매일매일 많이도 수업했다. 한 시간의 수업에 긴장하기도 하고 한 시간의 수업에 웃고 화내기도. 교사와 학생들의 목소리, 손짓, 발짓, 표정들이 뒤섞여 교실이라는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경험. 다른 곳에서 쉽사리 겪지 못할 값진 경험. 수업시간은 천국이었고, 전쟁터였고, 살아있는 생명체였다.
한 해가 지나는 12월의 막바지에 마지막 수업을 치렀다. 체육 수업. 마지막 날 수업의 주인공은 너무나 예쁘지만 너무나 날 힘들게도 한 학년이었다. 학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체육시간에는 늘 자유시간을 약속한다. 원하는 놀이가 있다면, 원하는 체육 도구가 있다면 뭐든 말하렴. 마지막 날의 특권이란다.
출결 확인도, 준비 운동도, 수업 시간도 뭐 하나 특별할 것 없었다. 평소의 그대로. 그랬던 흐름 대로. 1년 간 '수업 합'을 맞춘 아이들은 나와 쉽게 교감한다. 아마 이제 눈빛만 봐도 서로의 뉘앙스를 눈치챌 만큼이 되지 않았을지. 뛰노는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축구공을 차는 아이, 배드민턴을 치는 아이, 줄넘기를 하는 아이. 개중에는 운동장에 나가서 노는 아이들도 있다. 12월의 이 엄동설한에. 아프진 말아라 얘들아.
마지막이라는 시원섭섭함 때문인지 아이들을 배웅하는 시간이 싱숭생숭하다. 교사를 그만둔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는 끝내 이야기하지 않았다. 선생님은 끝까지 선생님이어야 하니까. 선생님이 학교를 옮기게 되어 내년부터는 더 이상 볼 수가 없겠구나. 그 정도로 이야기하고 말았다.
어떤 감동들은 긴장을 놓은 그 순간에 찾아오곤 한다. 열심히 수업한 일 년을 간단히 마무리 짓는 그 시간,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이 나와 학생들 사이에서 교감된다. 작별의 아쉬움을 그다지 호소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아이들이 내게 달려든다.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이다. 선생님이 좋고 정들었더라도 넘을 수 없는 선 같은 것을 느끼기 마련이다. 거기다 감정에 호소하는 면이 적었던 내 수업 스타일이 한몫해서인지(선생님 T죠?) 나를 참 좋아해 주면서도 더 다가오지는 못했더랬다. 작년 제자들도, 그 전의 제자들도. '어른' 그리고 '선생님'이 주는 느낌은 그런가 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수업날인 오늘 별안간 내게 달려들었던 것이 아닌가. 남자아이 여자아이 할 것 없이 내 옆구리에 달려들어 끌어안고는 매달린다. 나는 그간 학생들과의 스킨십을 철저히도 조심했다. 나를 위해서. 세상은 무서웠기 때문에.
여태 버티고 버텼던 가면이 한순간 닳아버리기라도 했는지 내 마음 완전히 무장해제되어 버린다. 나는 마지막 수업날이 되어서야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안아본다. 일 년 간 고마웠노라고, 그간 다치지 않아 주어 자랑스럽노라고 이야기한다. 아이들을 안아주며 지은 웃음은 진심이었다. 수업하며 진심으로 웃어본 것이 고작 몇 번이었는지.
함께 찍은 사진은 또 얼마나 우습던지. 개구쟁이들은 끝까지 개구진 표정으로, 조용한 아이들은 묵묵한 눈빛으로, 대장들은 대장들처럼, 멋쟁이들은 한껏 멋을 부리며. 마지막까지 아이들이 발산하는 것 변하지 않는다. 일 년간 정말 정들었다 얘들아. 너희에게 해주고픈 말이 참 많았는데 전쟁통 같은 수업시간 보내며 말할 새가 없었구나. 만년 초보 교사였던 나를 용서하렴.
나를 속상하게 만들곤 하던 아이들아. 너희 정말 너무했어. 하지만 마음에 담아두지 않을게. 내게 꾸중 들으며 받은 상처가 있다면 미안해. 너희도 담아두지 않고 멋진 사람으로 거듭나길 바라.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나를 그저 좋아해 준 마음씨 고운 아이들아. 덕분에 분에 넘치는 사랑을 입었어. 너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렴. 그들도 사랑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장난꾸러기들아. 그 천진난만함을 절대 버리지 말아라. 가장 큰 재산이 될지 모르니.
수줍은 예술가들아. 너희의 작은 행동들 누군가에겐 분명 빛과 소금이 될 거야.
예쁜 말을 할 줄 아는 아이들아. 천사 같은 그 마음 언젠가 몇 배로 보답받길 기도해.
낯 뜨거움 못 참는 사나이들아. 말 안 해도 너희들의 가장 순수한 마음을 알 수 있어. 조금만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렴. 스스로에게 솔직한 모습이 어쩌면 가장 용기 있는 모습일 수 있단다.
선생님은 꿈을 찾아 떠나. 너희도 더없이 멋진 꿈을 꾸고 살아라.
그간 고마웠어 얘들아. 만일 인연이 허락해 준다면 언젠가 또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