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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작은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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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Mar 03. 2024

퇴사일이 찾아와 버렸다

 2024년 3월 1일이 드디어 찾아왔다. 의원면직을 결심하고 꼬박 일 년을 기다린 오늘. 이제는 자유의 몸이라 해야 할지 백수가 되었다고 해야 할지. 여하튼 기다렸던 면직일이 오기는 온다. 3월 1일을 맞는 자정에는 소소하게 케이크도 불며 교직의 끝과 새로운 시작을 자축했다. 축하할 일이 맞을는지.


 예전에는 '예순두 살이 될 때까지 학교 급식을 먹겠구나' 생각했더랬다. 그만둔 와중에 하루 한 끼는 균형 잡힌 식사를 하겠다며 우스갯소리로 말하던 그 시절 대뜸 떠오른다. 단순한 삶을 사랑하던 나는 정말 완전히 사라져 버렸을까. 나는 내가 기대한 만큼 도전하는 삶에서 살아있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렇길 바랄 밖에. 시작해 보기 전에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다.




 긴 겨울 지나니 어느새 봄이다. 봄의 초입 치곤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봄은 봄이다. 무직이 됨을 기념하고자, 또 봄이 옴을 기념하고자 단양으로 1박의 짧은 여행을 계획했다. 충청북도 단양. 지금 지내는 곳인 대구에서는 다소 먼 곳이지만 7년 간 근무했던 영주시에서는 차량으로 40분가량, 가까운 거리다. 비슷한 거리인 안동으로는 많이도 놀러를 다닌 반면 단양으로는 여태 발길이 쉬 향하지 않았다. 그랬던 까닭에는 나의 터전인 경상북도를 벗어난 지역이기 때문임도 있었을까. 익숙한 곳을 벗어나는 일에는 크든 작든 용기가 필요하다.


 단양으로 향하는 길에 그간 근무했던 학교가 빼꼼 보인다. 학교라는 공간과 교사라는 신분에 정이 많이도 들었건만, 그 마음과는 별개인지 마지막이랍시고 학교를 또 가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냥 쌩 하고 학교를 지나친다. 스스로도 마음을 잘 모르겠다. 후련한 건지 아쉬운 건지.


 관광도시로 놀러 간 덕에 멋진 자연경관도 보고 시장 음식도 먹는다. 펼쳐진 절경과는 다르게 소도시의 상점들은 무언가 애매하다. 도시의 것들을 따라 하려 애쓰지만 2퍼센트가 다르달까. 어쩔 수 없는 시골스러움이 그 2퍼센트 속에 담겨 어딘지 엉성하고도 정겨운 느낌을 준다. 보통 둘 중 하나다. 기초 인테리어 자체가 촌스럽던지 아니면 기초 인테리어는 세련되게 했는데 꾸며놓은 소품이 소도시스럽던지. 7년간 많이도 봐온 모습에 피식하게 된다. 이리저리 구경하랴 먹으랴 열심히도 다닌다. 어둑해질 무렵 숙소로 향한다. 소도시들의 밤은 일찍 시작된다. 아홉 시만 되어도 대도시의 새벽과 같이 고요하다.


 

 자정이 지난다. 면직일을 맞으며 자정을 카운트다운하려 했는데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 3분이다. 머쓱, 웃고 만다. 여하튼 봄이 옴과 동시에 교사가 아니게 되었다. 실감은 잘 나지 않았다. 지난 일 년 간 극적인 순간들을 이미 여러 차례 맛보았기 때문일까.

 3월에는 의원면직을 결심했다. 4월에는 부모님께 계획을 알렸다. 9월에는 교장선생님께 면직 의사를 전달했다. 11월에는 의원면직계를 제출했다. 12월에는 의원면직계가 수리되었다. 마지막 수업과 졸업식, 마지막 출근일 같은 이벤트들로 겨울을 지냈다. 그리고 면직 당일인 3월 1일이 되었다. 어쩌면 오늘 맞은 의원면직 당일이 그중 가장 마음의 동요가 적은 듯도 싶다. 그간 고민하는 연습을 잘 해왔구나. 마음에 굳은살 생기고 있음을 어렴풋이 느낀다.


 곧바로 잠자리에 들기는 아쉬운 마음이 들어 아닌 밤중에 산책을 나선다. 낮에는 절경이던 단양의 자연경관이 밤 되자 암흑에 잠겨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다 하여 그 모습들 사라진 것이 아닐 테다. 아마 해가 뜨면 다시금 자태를 뽐낼 테지. 나 또한 스스로를 가꾸다 보면 언젠가 빛이 비추일 때 멋진 모습으로 세상에 나를 소개할 수 있을 거다. 오늘까지만 감상에 잠기고 내일부터는 다시 힘찬 삶으로 돌아가리라 생각한다.




 교사의 신분으로 여가시간을 보내는 것은 쉬웠다. 무엇을 하든 안 하든 아무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즐거운 일이 생기면 그것에 정진하고, 무료할 때면 어찌 시간을 보내다 보니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다. 단순한 시간들이었다.


 3월 1일, 이제 나는 아무 데도 갈 필요가 없어졌다. 7년 간 몸담던 학교도 더 이상 내가 갈 곳이 아니게 되었다. 학교 울타리 밖에서도 나는 과연 스스로의 쓸모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을까.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하여 나에게 주어진 망망대해 같은 시간들에 자신 있는 모습으로 도전하리라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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