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 Jan 05. 2018

우리들의 연말정산

연말을 보내는 우리의 자세

마지막 이십대라는 아쉬움이 물씬했던 연말이었다. 퇴근 후 우연히 들린 책방에서 사고 싶었던 책이 입고되었길래 눈을 반짝이며 냉큼 샀다. 바로 한 해를 마무리 짓는 100가지 질문이 담긴 <연말정산>이란 책이다. 두 권은 친구에게, 한 권은 동갑내기 남자 친구에게 선물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왠지, 이것만큼은 2017년에 완성해야겠다는 도전의식이 생겼기에, 야심 차게 첫 장을 폈다.


어떠한 제한도 없이 자유롭게 작성하라는 문장은 우리를 안심시키다가도, 옆 장의 월별 키워드 작성란을 보면 무엇을 적어야 할지 무척 망설여졌다. 결국 사진첩의 도움으로 과거 여행을 한 덕분에, 그 달에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기록할 수 있었다.



그 이후의 질문부터는 순서대로 쓰기보다, 같이 쓰는 <연말정산> 활용법을 응용해서 아래처럼 진행했다.

1. 서로 돌아가면서 고른 번호의 질문 먼저 쓰기

2. 쓴 다음 서로 보여주기


랜덤으로 한 질문 씩 마주치니 더 흥미진진하게 작성할 수 있었다. 속도가 안 난다 싶을 땐 그 한 페이지를 쓱 다 적기도 하면서 채워나갔고, 이틀 만에 맨 뒷장에 숨겨져 있던 101번째 질문까지 모두 채웠다.

마지막 질문은 2018년의 위시리스트로-!


막상 이대로 끝내자니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

어떤 질문이 왜 좋았는지 서로 나눠보기로 했는데, 무엇보다 이 시간이 가장 좋았다.

가장 인상 깊다고 생각했던 이유와 그 질문에 얽힌 에피소드나 생각을 깊게 나눈 덕분에 혼자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의 포인트나,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고른 질문 중 하나는 44번 질문이었다.

"___________을 보며 울었다"


이런 감정을 묻는 질문이 여러 개 나왔는데, 나는 감정표현이 다양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언제 무엇 때문에 울고, 웃고, 화내고, 속상하고, 당황스러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 당시엔 진하게 느꼈을 감정이 시간이 지나니 희미해졌고, 어떤 기억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날의 솔직한 감정을 놓치지 않고 기록해둬야겠다. 그런 기록이 하나하나 쌓이다 보면, 나는 어떤 일에 기뻐하고, 무엇을 하기 싫어하는 사람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스스로 더 알게 될 것이다. 생각보다 나는 나를 잘 모르기에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스물아홉, 우리의 시간을 정산해서 다행이다.

질문은 힘이 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하고, 잊고 있던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내기도 한다. 

잘 대답하지 못한 질문에는 스스로를 반성하게 하고, 다음엔 풍성하게 다시 대답할 수 있기를 다짐하게 한다.


2018년의 나의 키워드는 '일상의 낭만'이다. 작년의 나는 나답지 못한 순간이 많았던 것 같다.

서른에는 좀 더 나다워지길 바라며, 언제나 낭만을 잃지 않는 어른이 되고 싶다.


2018년 1월 1일 해는 아름답게 졌고, 달은 그 어떤 날보다 아름답게 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