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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Apr 17. 2016

방콕 서점 여행

책을 품은 공간으로 떠나다 #1. 첫 번째 도시, 방콕

초록빛으로 가득한 나라. 방콕으로 떠났다.

제대로 된 나만의 여행 테마를 갖고 떠난 것은 처음이었다.


'방콕 서점 여행'

나의 버킷 리스트인 세계 서점 여행의 첫 번째 도시는 방콕이 되었다.

대형 서점보단, 소소한 독립 서점부터 책과 관련된 Bar까지 담아왔다. 하단에는 직접 만든 방콕 지도가 있으니, 방콕에 갈 예정이 있다면 한 번 참고해보셔도 좋겠다.


첫 번째 공간,

여행자를 위한 Passport Bookshop

방콕 여행자들의 거리, 카오산로드를 지나 소소한 예쁜 거리를 한창 걷다 보면 나타나는 책방.

외관이 작아 한참을 지나쳤다가 다시 돌아온 곳이다. 다양한 독립출판물과 책으로 가득하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꽤나 멋졌으며, 이층은 좀 더 한적한 카페였다. 따스함이 묻어나는 곳. 호스텔에서 만난 청년들도 다녀왔다는데 이름처럼 여행자들이 많이 들리는 공간인 것 같다. 몇몇의 책 겉표지에는 어떤 이가 책에 대한 소감을 남긴 그림이나 손글씨가 붙어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이 곳에서 눈을 사로잡은 책은 'A Long Diary of A Short Hair Mother'.

엄마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의 기록을 하나씩 소중하게 모아 놓은 책이다. 책을 열자, 눈이 동그란 어린아이의 사진이 먼저 보였고, 손으로 그린 아이의 모습과 일기가 아날로그식으로 담겨있었다.


언젠가 나도 아이가 생기면, 단 하나뿐인 소소한 기록물을 내 아이에게 선물해주고 싶다. 그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 이 책을 샀다. 비록 태국어라 읽을 순 없어도 그 따스함에 살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책이다.



두 번째 공간,

디자이너가 아니더라도 좋을, TCDC (Thailand Creative & Design Center)

TCDC 안에서는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 이 사진 출처는 여기 > http://denizennavigator.com

와. 홈페이지에서 보자마자 '여긴 꼭 가야겠다' 찜해둔 곳. 태국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디자인, 건축, 광고, 브랜드, 애니메이션, 미술 역사 등 다양한 분야의 서적들이 방대하게 존재하는 공간. 그야말로 영감으로 가득 찬 곳이다. 현지 사람들도 오랜 시간 머무면서 노트북으로 자신의 작업과 독서를 하더라.


소파뿐 아니라, 편안하게 누워서 볼 수 있는 침대까지 있다는 게 놀라웠다. 좀 더 프라이빗 한 공간도 있었는데, 그 공간은 정말로 꿈꾸던 공간이었다. 클래식한 소파와 커피포트,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우드 테이블. 그리고 넓고 높은 창 뒤로 가득 비치는 초록색 열대 나무에 반했다. 너무나 기억하고 싶은 공간이었기에, 앉은자리에서 그 장면을 깊게 남겼다.

TIP

- 방콕 엠포리움 백화점 6층에 있으며 월요일은 휴관일이다.

- 여권을 보여주면 하루 동안 무료로 이용이 가능하며, 밖에 왔다 갔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도 있다.

- 짐은 미리 맡기고 들어가야 하며, 사진은 찍으면 안 된다. (짐이 많을 경우, 투명 백을 빌려준다.)

http://www.tcdc.or.th/?lang=en



세 번째 공간,

방콕에서 만난 헌 책방 Dasa Books Cafe

2004년에 오픈한 이 곳은, 방콕에서 영어로 된 책을 만날 수 있는 가장 큰 중고서점이다. 서점 안의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헌책들로 빽빽하게 차 있었고, 세 층으로 되어 있으며 보물 찾기 하는 느낌으로 책을 구경할 수 있다. 가격도 매우 저렴해서 보물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겠다. 주인이 서양 사람이라 그런지,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도 서양사람이 많았다.

TIP

- TCDC와 Dasa는 걸어서 5분 거리!

- 근처에 쌀국수로 유명한 '룽르엉'이 있다. 태국 국왕도 올 만큼 맛있다. (양이 적으니 배고프면 곱빼기로!)

- 반 사바이 마사지 샵도 한국인 사이에 유명한데, 고급스럽고 친절하다. 걸어서 15분-20분 거리.

- 주소: 714/4 Sukhumvit Rd. (between Soi 26-28) BTS Phrom Phong , 02-661-2993.

- Open daily from 10am-8pm. www.dasabookcafe.com



네 번째 공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세상, The Bookshop Bar

우연히 유튜브에서 발견한 이 곳. 실제로 찾기 위해 역에서 꽤나 걸었다. (4월은 태국의 여름 중에서도 여름)

호텔 ASHTON의 1층에 있었는데, 그야말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연상시키는 곳이다. 들어오자마자 천장이 눈을 사로잡았다. 생각보다 조금 작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신기한 공간이었다.

천장 위에 고정된 책장에 달려있는 책들은 움직이는 것이 가능한데, 위치를 매번 조정 하나보다.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는데, 위아래로 움직이는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다른 공간과 달리 책을 소재로 독특하게 구성한 인테리어 덕분에 눈이 즐거웠던 공간.

TIP

- BTS 통로역 숨겨진 아지트인 만큼 역에서 걷기엔 조금 멀다. 택시나 오토바이를 타는 걸 추천한다.

- Bar에선 부가세가 추가적으로 붙는 거 알쥬?

- 주소: Phra Khanong, Khlong Toei, Bangkok, Thailand (스쿰빗 38 골목)

- Open 9:30 am-10:30 pm



다섯 번째 공간,

거대한 나무가 매력적인 Candide Books & Cafe


이곳이었다. 태국에 가면 꼭 가야겠다고 다짐한 첫 서점.

태국 로컬 느낌이 가득한 곳. 거대한 나무 뒤에 위치한 신비한 공간. 여긴 The Jam Factory라는 복합 문화 공간에 함께 있는 서점이다. 실제로 잼 공장을 새로 개조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북카페 외에 갤러리, 레스토랑, 가구 샵, 유명한 건축사무소까지 함께 있어 눈과 입이 즐거운 곳이다.

서점 겸 카페이다 보니, 현지인들이 식사 후에 자연스럽게 이 곳에 와서 책을 볼 수 있다. 카페에는 다양한 메뉴가 있었는데, 먹어보고 싶었던 나무를 닮은 특별한 디저트 그린 와플이 타깃이었다. 희한하게 생긴 비주얼은 과연 어떤 맛을 낼지 궁금했다. 드디어 한 입 베어 물자 나오는 탄성. 와! 매우 쫀-득하니 부드러웠다.

푸르고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며, 아메리카노 한 잔과 그린 와플, 눈을 사로잡는 다채로운 책들. 아... 이 곳은 정말인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서점에는 북커버가 참 예쁜 책들이 많았다. (소장욕구 폭발!) 그중 나의 취향을 저격한 일러스트 작가, TUNA Dunn의 책을 본 순간 나는 그녀의 책을 모두 사버렸다. 세 책 모두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설레는 사랑 이야기부터 쓸쓸한 이별의 순간까지. 그녀의 그림체 안에 섬세한 감정들이 녹아있었다.

TIP

- 밀레니엄 힐튼 근처. 'The Jam Factory에는 서점&카페, 갤러리, 가구 샵, 레스토랑, 건축 사무소가 있다.

- 주말에는 프리 마켓도 열린다.

- Never Ending Story 레스토랑에 혼자 갔다면 크런치 게살 오믈렛 추천.

- 식사 후, 카페에선 그린 와플을 먹어보며 쫀득하니 부드러운 그 맛을 느껴보시길!

- 주소: The Jam Factory, 41/1 Charoen Nakhon Road Khlong San, 02-861-0967.

- Open Mon-Sun 11am-8pm. www.candidebooks.com

소소한 문구와 엽서도 함께 판다.


나의 첫 번째 책방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가고 싶었지만 멀어서 가보지 못한 곳도, 태국의 축제이자 연휴인 '송크란'기간이 겹쳐 문을 닫은 곳도 있었다. 이번 여행에서 크게 느꼈던 건 두 가지다. '관계'와, '여행 테마'의 가치. 좀 더 길게 얘기하자면,


1. 여행의 묘미는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것.

말을 걸기 전엔 그저 스쳐가는 많은 외국인 중 한 명이었지만, 말을 걸면서부턴 내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 어린 왕자에서 등장한 여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넌 아직은 나에겐 수많은 다른 소년들과 다를 바 없는 한 소년에 지나지 않아. 그래서 난 너를 필요로 하지 않고. 너 역시 마찬가지 일거야.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겐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거야."

내가 용기를 내어 말을 건 덕분에, Candide 서점에선 외교관이 꿈인 대학생 Boss를 만나 소소한 태국 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내가 묵었던 호스텔에선 각 나라의 코워킹 플레이스를 여행 중인 프리랜서 개발자인 John과 늦은 새벽까지 신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내가 영어를 잘 하는 건 결코 아니다. 외국인과 어색하게 몇 마디 주고받는 대화가 아니라 친구와 수다 떨듯이 대화할 수 있었던 건, 서로를 알아가려는 진실함과 오픈 마인드 덕분이었다. 정말로. 여행의 묘미는 '사람'이다.


2. 나만의 여행 테마를 갖고 떠나는 특별함.

작년이었다. 전 세계의 서점을 여행하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된 건. 아래의 브런치 글을 우연히 발견하고 생긴 꿈이 방콕의 서점 여행으로까지 이어졌다. '우연'처럼 만난 이글이 '인연'처럼 느껴진 글.


아, 두 번째 테마도 있었는데, 바로 '초록빛 공간 여행'이었다. 나는 야자수와 열대 식물의 건강하고 세련된 색감을 좋아한다. 언젠가 나의 공간을 만들 때, 초록빛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기에 방콕의 로컬 분위기와 어우러진 초록빛 공간을 많이 찾아다녔다.


방콕의 건물 앞에는 거대한 나무가 서있는 모습이 일상적이다. 왜, 태국의 나무들은 이렇게나 크고 아름다울까? 란 질문을 Candide 서점에서 만났던 Boss에게 물어보았다. "태국 사람들은 나무를 굉장히 좋아하고 아껴. 만약 건물을 지을 때 그 앞에 나무가 있을 경우, 나무만 피해서 지을 정도야"라는 말을 듣고, '와... 나무를 사랑하는 그들의 마음이 방콕만의 독특한 로컬 분위기를 만들었구나'란 생각에 괜히 부러워졌다.


나의 관심사와 취향이 녹아든 여행 테마는 늘 무언가를 발견하게 하고 여행의 순간을 특별하게 만든다. 물론 무엇을 봐야 한다는 압박은 뒤로 하자. 우리에게 유동적인 여유는 언제나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건 '여유'라는 점. 여행의 좋은 점 중 하나는 주어진 하루의 시간이 좀 더 길다는 거니까.


아래는 나의 방콕 여행 지도다. 급하게 준비하느라 정리가 완벽하진 않지만, 방콕에 가실 분이 있다면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공유한다. 위치와 간단한 팁, 관련 블로그 링크 정도를 담았으니 가볍게 참고하길.


빨간색 - 서점, 책이 있는 공간 / 초록색 - 그린 그린 한 공간.

연한 파란색 - 마사지샵 / 회색 핀- 음식점 / 연보라색 - 가볼만한 곳 / 남색 핀 - 루프탑/재즈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새 방콕의 순수함이 그리워진다. 사실 방콕에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사람들의 순수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었다. 내가 먼저 사와디 캅-인사를 하면 굉장히 좋아해주었다. 여행객에게 더 많은 돈을 얻어내려고 흥정하려는 현지인들이 때론 야속하기도 했지만, 사실 그들 또한 순수한 사람들이었단 걸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느낀 건, 사람들의 얼굴에 표정이 없다는 것이었다. 마치 회색빛처럼 느껴졌다.

낯선 이와 눈을 마주치면 웃어주는 사람보단, 피하는 사람이 많다. 아마 거리에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마주친 경험이 있기에, 무언가에 피해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심리인 것 같다. 그래도 우리가 낯선 이에게도 살짝 웃어주는 여유를 품고 살아가면 어떨까란 생각이 든다.


이건 번외로 느낀 건데,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가던 중에 어떤 연인을 보았다. 세계여행 중인지 둘 다 자기만 한 배낭을 메고 있었다. 마치 인어공주처럼 사랑스러운 표정을 지닌 여자와, 묵묵하게 그런 그녀를 바라보면서 자상하게 물을 챙겨주던 남자. 그 커플의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일 수 없었다. 와. 나도 이런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함께, 그리고 각자의 시간을 풍요롭게 보낼 수 있는 사람 말이다.


자, 그나저나 다음은 어디로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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