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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시 Dec 04. 2016

여행의 취향

내가 서점 여행을 하는 이유

왠지, 서른이 되기 전에 뉴욕이 가고 싶었다.

게다가 색다른 독립 서점으로 가득한 뉴욕은 책방 러버인 나로선, 언젠가 가야 할 곳이었다. 생각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했던가. 떨리는 마음으로 비행기 티켓을 덜컥 예매하고야 말았다.


가을이 시작되는 9월, 드디어 뉴욕을 만났다.

왜 하필 서점 여행이야? 뉴욕이 얼마나 볼게 많은데


누군가에게 '뉴욕 서점 여행'을 할 것이라고 말할 때, 테마가 있는 여행이 멋지다고 말해주는 이와, 굳이 뉴욕까지 와서 웬 책방이냐고 말하는 이가 있었다. 올해 초에 다녀온 방콕 서점 여행이 만족스러웠던만큼, 당연히 뉴욕에서도 서점 여행을 해야겠단 생각은 굳건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도 모르게 질문하고 있었나 보다. '정말 안 봐도 상관없어? 엠파이어 빌딩에서 바라보는 뉴욕의 야경, 유명한 할인 아울렛 등등. 다 안 가봐도 괜찮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봐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계획에 작은 균열이 생겨버렸고, 어느 순간부터 나의 여행을 의심하고 있었다.

나는 왜 서점 여행을 하는 걸까?

비가 온다던 일요일. 이틀 전의 테러 사건으로 인해 찜찜한 아침이었다. 우중충한 하늘에 창문 밖의 경계 가득한 사이렌 소리까지. 한 마디로 방콕하고 싶은 날이었지만, 그 날은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었기에 나는 나가야만 했다. 이 뒤숭숭한 분위기에도 말이다. 도대체 북 페스티벌이 내게 뭐길래 혼자 가기 무섭다는 브루클린에서도 이름도 낯선 동네에 왜 가려는 걸까.


유난히 조용한 지하철. 머리 속이 복잡했다. 혼자 여행을 잘못 왔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엇보다 뉴욕에 대한 설렘이 사그라진 것이 문제였다. 두려움은 설렘을 삼켰고, 겁이 많은 나는 겁이 없었던 선택을 후회하고 있었다. '나는 왜 서점 여행을 하는 걸까. 사실 다독가도 아니면서.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긴 하는 걸까?'란 생각까지 들었다.

여행에도 취향이 있다.

에라 모르겠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란 심정으로 황량한 지하철 출구를 나서자, 전혀 예상치 못한 풍경이 있었다. 순간 두려움의 프레임이 설렘으로 바뀌었다. 낯설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동네가 흥미롭고 아름다운 동네로.

도로 위에 놓인 하얀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브런치를 즐기던 사람들


세련된 회색 건물과 이름 모를 운치 있는 키 큰 나무에 둘러싸인 공원에는 다양한 책 부스와 구경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불과 몇 분 전, 내가 이 도시에서 매력을 찾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한 것이 우스울 정도로 행복에 비명을 질렀다. 내 취향의 책을 발견하면서 '아!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는구나. 책이 있는 공간에서 영감을 받는 것이 정말 맞구나.'라고 안도감을 느꼈다. 생각보다 브루클린 북페스티벌은 규모가 컸고 흥미로운 프로그램으로 가득했다.


부스 자체도 책들도 각기 다른 개성으로 다가왔다. 수많은 출판사와 서점 부스에선 책을 홍보하는 건 물론 작가와 유명인이 함께 얘기하는 프로그램도 많았다. 다양성의 나라답게 토크 주제는 굉장히 폭이 넓었다. 테러리즘을 논의하는 자리부터 작가들과의 토크쇼까지. 근처 건물 안에서, 혹은 바깥 곳곳에서 진지한 눈빛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일단, 북페어 이야기는 여기까지.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하게 소개하겠다. 무엇보다 이번 뉴욕 여행은 '나의 여행 취향'에 대해서 생각하게 했다.

나는 언제라도 볼 수 있는 것보다, 지금 이 순간에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선호하고,
화려하고 유명한 관광지보다 우연한 장면을 발견할 때의 소소한 기쁨을 좋아한다는 것.


'여기선 이것을 꼭 먹어야 해. 이건 무조건 봐야 해.'라는 타인의 기준을 맞추지 않아도 괜찮다.

그 누구도 타인의 취향에 대해 평가할 수 없다. 그리고 좀 더 내가 좋아하는 것에 당당해도 된다.

무엇보다 나 자신이 남의 시선을 의식한다면 그 순간부터 나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 또한 함부로 누구를 평가하거나 당하지 않기를 다짐했다. 그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건 당당하게 좋다고 말할 것!


오늘 나는 행복했다. 그것을 느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단순히 '서점 여행'이 아닌, '영감을 위한 서점 여행'이었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자신의 기준을 잃는 순간 목적과 수단이 바뀌게 되고 자신을 의심하게 된다는 걸 체감했다.


좋아하는, 내가 좋아하는, 남들과 상관없이
내가 사랑하는, 바로 그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
어쩌면 그것을 찾는 것만으로도
남들과는 다른 여행의 출발선에 서게 될 것이다.
- 모든 요일의 여행 <123p>


사실 이번 뉴욕 여행은 꽤 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어 보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폭을 깊이 있게 경험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나 홀로 뉴욕 여행은 그동안 고민하지 못했던 '여행의 취향'에 대해 꽤나 깊고 치열하게 생각해보았던 시간이었다.


이번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나의 여행 취향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이렇다.


1. 빡빡하게 여행 계획을 짜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러프한 동선은 필요하다.

2. 화려한 관광지보다, 골목 탐방하며 소소한 나의 취향을 발견하는 것이 좋다.

3. 지금만 할 수 있는 경험을 찾는다. (선택지가 많을 때, 어디서 무엇을 할 건지의 기준이 되더라.)

4. 게으르고 싶을 땐, 게으르게. 나의 여행엔 게으름과 부지런함이 공존한다.

5. 밥은 함께 먹는 게 역시나 좋다. 혼자 먹는 것만큼 외로운 건 없더라. (아름다운 브루클린 다리를 보며 혼자 쉑쉑을 먹는 건 생각보다 더욱 외로웠다..)

6. 모르는 이와 대화를 나눈다는 건 굉장히 흥미롭다. 특히 현지 사람과의 대화라면 더욱.

7. 순간의 기록은, 나만의 보물이 된다. 그러니 순간의 느낌과 생각을 적어볼 것.

8. 나는 MOMA의 유명 작가의 작품보다, 길거리의 이름 없는 작가의 스케치에 더욱 영감을 받는다.

9. 생각보다 필기도구, 노트, 엽서에 욕심이 많더라. (스트랜드 서점에서 가장 소비가 많았다.)

10. 시각적인 새로움은 거침없이 좋아하지만, 먹는 것에선 소극적이다. (용기 내어 새로운 음식을 도전하지 않는다.)


9월의 뉴욕 이야기를 이제야 풀어보았다.

한 스무 곳의 서점과 책이 있는 공간을 다녀왔는데 그저 스쳐 지나가게 되었던 공간과 너무나 설레었던 공간이 있었다. 다음에 좀 더 자세하게 뉴욕의 서점 이야기를 쓰겠어요.


다녀왔던, 책이 있는 공간과 독립서점

인디 문화의 총집합, NY Book Fair

전 세계인의 스케치북, 브루클린 아트라이브러리

호기심을 충족시켜준, 브루클린 북 페스티벌

왠지 모르게 로맨틱한, 뉴욕 공공 도서관

덤보의 꽃, 파워 아레나 하우스 서점

뮤지엄 거리 속, 클래식한 크로포드 도일 서점

첼시스러운 서점, 프린티드 매터

고급스러운 문화 향유 공간, 리졸리 서점

입체적인 상상의 공간, 원더 북스

지갑 털릴 준비하고 가야 하는, 무한대의 공간 스트랜드

40년의 전설, 비밀의 정원을 품은 커뮤니티 서점

에스프레소 북 머신이 인상적인 맥널리 잭슨

중세시대 느낌의 제퍼슨 도서관

타임스퀘어다운, 영화인을 위한 더 드라마 북샵

잡스러워 보이지만, 혁명적인 곳 Unoppressive Non-Imperialist

고급스러운 취향의 서재 공간, 더 모건 리 브러리 &뮤지엄

그 외에 그린라이트, Unnameable Books, Three Lives, 하우징 웍스 북스토어 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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