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같은 이월의 기억
사월의 봄날이 말 그대로 훌쩍 왔다.
매캐한 미세먼지 때문인지, 봄날의 설렘은 예전만 하지 못한 것 같다. 얼마나 기다려온 봄인데.
오히려, 서점여행을 다녀온 이때가 좀 더 봄 같았다. 적어도 미세먼지는 없었고, 나름 따뜻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서점 여행을 다녀왔다. 가보고 싶었던 곳 위주로 콕 집어 나름의 코스를 정했다. '신촌 - 선유도 공원 - 영등포'
신촌 경의선 역, 두 개의 서점
첫 번째 목적지는 미스터리 유니온
4평 남짓한 조그마한 공간이다. 나무 소재로 구성된 파사드와 불을 밝히는 전구가 이 곳을 한 층 매력적으로 만든다. 이름 그대로 미스터리 한 책으로 가득한 곳인데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분명 미묘한 분위기가 존재한다. 기차역 골목에 숨어있는 이 곳에 비가 오는 흐린 날에 온다면 더욱 안성맞춤이겠다.
일상이 무료할 때, 지루함을 탈피하고 싶다면 이 작은 공간에 놀러와보길.
두 번째 목적지는 위트 앤 시니컬
시인이 하는 서점은 무엇이 다를지 궁금했다. '위트'와 '시니컬' 이 두 단어가 만나 이름이 된 걸 보면, 주인이 꽤나 센스 있는 '젊은 시인'이지 않을까 짐작을 해본다. 아쉽게도 서점 주인은 만나 뵙지 못했지만 시인의 서점답게 섬세한 구성이 감각적으로 돋보인 곳이다.
시인의 책상
한 번쯤은, 시인이 되어보는 것을 상상해보지 않았을까. 시인의 책방에는 시인의 책상이 있다.
책상 위에는 시집 한 권과 노트, 그리고 색색의 펜이 있다. 그 날의 시집은 '토마토는 붉다. 아니 달콤하다'였다. 아마도 달마다 시집이 바뀌지 않을까 싶은데, 이번 달의 시집이 궁금해진다.
함께 쓰는 필사 노트는 시 하나를 음미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경험을 주더라. 다 쓰이면, 이 노트는 시인에게 전달된다. 불 특정 다수의 방문객과 한 명의 시인이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반짝이 고도 섬세한 기획은 누가 한 건지 참 부럽다. (아마 시인이 하셨겠지?)
노트를 열어보니, 작은 카드가 사이에 끼워져 있다.
무엇이든지 잘 운영되게 만들기란 어려운데, 이 시인의 책상이 잘 운영될 수 있는 건 이 작은 카드 덕분이다. 이 안내서를 보고, 모두들 정성스럽게 순서대로 차곡차곡 채워간다. 함께 쌓아가는 느낌이 이렇게 뿌듯할 수가. 무언가의 동질감은 덤이다. 덕분에 나도 시를 정성스레 옮겨 적어본다.
빈 책꽂이에 책 한 권이 생겼다.
책 한 권을 사니, 책 모양의 스탬프를 한 개 찍어주셨다. 나만의 책꽂이 한 권이 꽂혔다.
스탬프 카드를 이런 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구나. 저마다의 책꽂이는 찍히는 순간의 위치와 색깔에 따라 달라질 테다. 일반적인 스탬프 카드가 아닌, 서점의 특색에 맞게 자신의 책꽂이를 채워갈 수 있도록 독특하게 구성한 점이 새삼 놀랍다.
햇살이 가장 예쁜 시간, 오후 다섯 시의 모습. 나도 이런 넓은 창과 책상을, 이런 아지트를 갖고 싶다.
여유가 필요할 때, 시인의 서점에 놀러 오시기를.
벌써 낮의 시간이 지나 밤의 시간이 온다. 해가 지는 이 순간을 놓칠 순 없지. 신촌에서 버스를 타고 선유도 공원에 내리니 코 끝과 손 끝이 약간 시릴정도로 싸늘해졌다. 누군가는 포켓몬스터를 잡느라 이 놀라운 하늘을 보지 않더라. 이런 환상적인 시간을 당신은 놓치지 않기를 바란다.
마지막 목적지. 향을 파는 책방 #Prescent14
책을 읽고 떠오르는 향기를 직접 만든다니. 과연 우리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 향이 맞을까? 어린왕자와 그리스인 조르바 향을 고민하다가, 조르바를 샀다. 뚜껑을 열자 신기하게도 조르바 향이 난다. 혹시 상상이 가는지? 시원하고 자유로운 파란향이다.
책의 향이 궁금하다면, 책을 후각으로 느끼고 싶다면 이 곳에서 마음껏 맡아보시길..
일요일의 밤이 되었다. 하루의 마지막을 상그리아로 마무리하며, 다음 여행을 기약해본다.
스물아홉, 우리의 일상을 응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