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
지상(地上)을 달리는
지하철 유리창에는
화가의 캔버스에서처럼
중복된 사선(斜線)모양의
물방울들이
여러겹 그려져 있다
쌀쌀한 밤을 통과하던
빗방울들이
지하철 안쪽 세상의
달큰한 조명에 끌리는 시간
허기진 물방울들의 혀가
지하철 안쪽의
풍경을 핥고 있다
목마른 자의 혀가
물방울들의 혀에 닿기 위해
도마뱀의 그것처럼 쭈욱
뻗어 나가려는 순간
지하철 유리창은 혀와 혀 사이에 있게 될
투명한 유리의 경계를
유화(油畫)처럼 보여준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로의 존재를 유리창에 대고
가볍게 비춰 보는 일
밤의 지하철 유리창에
반쯤 투명해진 물빛의 내가
사선(斜線)의 빗방울들과
섞이고 있었다
* 斜線 - 빗금
** 사진 출처 - 네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