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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율 Nov 14. 2023

적당한 글을 쓰려합니다

용기와 능력 둘 다 없다면



  작가는 오랜 꿈이었다. 활달하고 발랄하며 상당히 시끄러웠던 나는, 의외로 문학소녀였다(보통 다들 잘 안 믿는 눈치였지만)


   나는 추운 겨울을 싫어했고, 운이 좋게도 엄마도 추운 걸 싫어해 우리 집은 겨울이면 대체로 과하게 따뜻했다.(대신 여름엔 과하게 더운 걸 견뎌야 했다.) 그리하여 겨울방학은 따뜻한 침대에 드러누워, 침대 옆 협탁 위에는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거리며 하염없이 책을 읽던 시간이었다. 책을 꽤나 많이 좋아했던 나는, 할 일 없던 그 시절 겨울 방학 두어 달을 빌어 백여 권씩 읽어대곤 했었다. 수능시험이 끝나고 바로 간 곳도 서점이었으니 말 다 했다. 그런 나를 보고 친한 선생님은 혀를 내두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글쓰기의 재능은 없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봤던 내게 엄마는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는데 넌 왜 글쓰기에 재능이 없니? ”라는 질문을 종종 하셨다.

  상처를 주려는 의도였다기 보다는, 진심으로 궁금하셨던 거 같다. 당시 유치원 때부터 친했던 친구는 책 한 권 읽지 않으면서도 글짓기 대회란 대회는 싹 쓸었으니 엄마는 도저히 독서와 글짓기의 상관관계를 찾지 못하셨을 것이다. 어이없게도 나는 글짓기 대회보다 그림대회에서 상을 더 많이 탔다. 아니 더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릴 적 글짓기 대회에서 상탄 적은 전무하다 싶을 만큼 없었다.


  이런 내게 글 쓰는 재능이 없다는 건 익히 추측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멋진 글을 보면 반하면서도, 나도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걸 멈출 순 없었다.


  끼리끼리는 과학인건지 주변에 글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학교 시절 자신의 단편을 읽어보라고 준 선배도 있었고, 영국 시절에는 영국인친구가 영어로 된 판타지 시놉시스를 준 적도 있었다(영어가 어려워 끝까지 읽지 못했다. 미안하다 친구야.) 친구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종종 시놉시스를 메일로 보내오곤 했다. 멋진 공감과 감상을 원했을 텐데, 그러한 피드백이 돌아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체로 직장을 가지고 안정된 삶을 가지는 나이에 접어들고서는 진짜로 작가로 데뷔한 친구들도 생겨났다. 변호사인 직업 덕에 10시 출근 3시 퇴근으로 일한다는 친구는 그 외의 시간을 소설 쓰기에 썼다고 한다. 역사소설 부문 베스트셀러까지 올랐다 하니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초판을 선물해 줬으나, 역시 영어라 읽을 수 없었다.


  친구에게 구체적으로 소설 쓰는 작법과 자료조사 등을 배웠으나 여전히 막막했다. 사실 정식 소설가로 데뷔한 게 아니었던 친구의 설명은 간단했다. 대충 머릿속으로 이야기를 만들고 자료조사를 해서 써나가는 것. 책은 아무나 쓰는 게 아니란 생각만 더 강해졌을 뿐이다.  ’아니 머릿속에서 어떻게 대충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거지?‘


  내게는 능력도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이십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어느 날 문득 내게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더 적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날들, 그저 ’청춘‘처럼 꿈만 꾸며 지내기에는 날들이 많이 남지 않았을지도. 그래서 적기로 했다. 거창한 글 말고 그저 그런 보통의 글이라도.  


  그래서 적당한 글을 쓰기로 했다.

  내 능력보다 과하게 잘 쓰는 글 말고

  적당히 읽히고 적당히 읽을 만한 글

  그 정도 글이라면 욕심낼 수도, 쓸 수도 있을 거 같으니. 그래서 능력은 없어도 욕심만은 가져보기로 한다.





< 사진 출처 : pixaba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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