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일곱. 나는 어릴 적부터 그 숫자가 참 예쁘다 생각했어. 스물이 돼서 연애도 하고 저 멀리 여행도 가고 싶다는 친구들이랑은 다르게, 진짜 어른이 되는 건 조금 무서웠거든. 지금 생각해보면 스물도 스물다섯도 아직 어린 건 다를 바 없더라.
열일곱의 너는 시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어. 선생님이 시키는 걸 안 하면 큰일 나는 줄 아는 조용한 범생이 여고생이었지만 잠에 들기 전 한 문장 끄적, 학원 끝나고 지하철에서 한 문장 끄적, 잘 쓰지 못해도 글자 써 내려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용감한 아이였어.
오후 4시의 텅 빈 운동장 벤치에 앉아 선선한 바람이 머리칼을 스칠 때, 지하철역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는 길 가로등을 달빛으로 착각했을 때, 갓난쟁이 사촌동생의 말간 눈빛을 마주할 때, 일상 속 그 경이로운 순간을 아름답다 말할 줄 알던 너.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할 줄 알던 너. 너를 내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상상할 수 없을 거야. 사회에 발을 내딛은지 얼마 지나고, 다시 글이 쓰고 싶어 펜을 들었지만 지금의 나는 뭐가 그렇게 두려운지 첫 글자를 내려놓지 못해 한참을 망설이고는 해.
돌아갈 수 없는 열일곱의 나야. 지금 와 생각해보면 가장 아름다운 건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너의 눈이었어. 그 눈을 잃지 말아줘.
그리고 평생을 들어왔던 칭찬, 성실함과 책임감을 가벼이 여기지 말되 너를 잃지 말아줘.
마지막으로, 이십하고 몇 살을 더 먹은 나에게. 저 모든 이야기는 오늘의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일지도 몰라. 나는 네가 소중하고 한없이 행복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