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한 아이가 떠오른다.
3년 내리 같은 반이었지만 친구의 친구로 허공에 날아다니는 말 몇 마디 오갈 뿐 서로 잘 모르는 사이였다. 너는 꿈이 무어니?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니? 12월이 오기 전에 끝나지 않을, 점점 더 물려오는 이 불안을 어떻게 마주하니? 깊은 이야기와 감정을 나눈 적은 없었다.
그 아이를 떠올리면 지금도 생각나는 한 가지. ‘펭귄’이다. 볼펜도, 파일도, 하다못해 핸드폰 배경화면까지 펭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집 냉장고에는 펭귄 모양 자석들이 가득하다고 했다. 10대들이 좋아할 만한 근사한 아이돌과 배우가 이렇게나 많은데, 너는 중독될 것이 없어 ‘펭귄’이냐며 짓궂은 친구들은 놀리기도 했다. 취향을 존중해주지 않는 장난에 속이 상할 법도 하건만 순한 그 애는 그저 슬쩍 한 번 웃어 보이는 게 다였다.
어느 가을 날, 우연히 그 아이와 산책을 했다. 친구들이 하나둘 일이 생겨 자리를 빠져나가며 둘이 남았다. 3년을 알고 지냈지만 나도 그 애도 낯을 가리는 터라 조금은 어색했던 것 같다. 야자 시간을 몇 십분 남기고 운동장을 빙글빙글 도는데 문득 궁금했다.
“너는 펭귄이 왜 좋아?”
툭 튀어나온 나의 물음표에 그 애는 반가운 질문을 들은 것처럼, 그리고는 답을 미리 준비한 사람처럼 조근조근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주 어릴 때, 몇 살인지 생각도 안 나는데, 동생이 태어나기 전인 걸 보면 6살도 안 됐을 거야. 부모님이랑 동물원에 갔다가 펭귄을 처음 봤어. 내가 알던 새는 날개로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인데 그 애들은 달랐어. 대신 수영도 하고 돌도 옮기고 다른 애들보다 열심히 움직이는 거야. 넘어져도 다시 뒤뚱 일어나서는 걸어가구.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첫눈에 반한 것 같아.”
조그마한 목소리로 신이 나서 이야기하는 모습에 덩달아 고개를 끄덕이자, 펭귄 이야기는 계속됐다.
“펭귄은 남극에만 산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도 많잖아? 사실은 아니야. 펭귄은 열일곱 종인데 그중에 실제로 남극에 사는 건 두 종뿐이거든. 적도 바로 아래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펭귄들도 있어.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우리 눈엔 버거워 보이는데 장거리를 걷는 것도 특징이야. 위험한 일이 있으면 날개를 이용해서 네 발로 달리는 것처럼 이동하기도 한다?“
소중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 애의 모습이 참 좋았다. 펭귄 자체는 그냥 그런 잘 모르는 관심 밖의 이야기였지만, 순수하게 그 무어를 아끼는 그 마음이 예뻤다.
어느 가을 날, 선선한 바람과 조금씩 고개를 돌리는 햇빛, 널따란 운동장에서 우리는 한참이고 펭귄 이야기를 했다. 그 애는 말했고, 나는 들었다. 얼굴도 어렴풋하게 기억날 만큼 그다지 친하지도, 깊은 사이도 아니었지만 나는 그 날을 기억한다. 그 아이의 순수함을 기억한다.
그리고 오늘, 그 애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날의 순수함이 아직 남아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오늘의 나에게 온 마음을 다해 애정하고 있는 ’펭귄’은 무얼까?
그저 하루를 내려다보며 살던 요즈음, 그 아이와 ‘펭귄’이 문득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