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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학 Nov 02. 2021

'펫로스(Pet loss)'를 만난 피규어

내가 펫로스를 겪은 이들을 위로하는 방법

말주변이 없는 건 아닌데 슬픔에 빠져 있거나 심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볼 때면 그를 위로해줄 수 있는 말이 어떤 것이 있을지 원론적인 말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아 답답하고 안타까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내가 힘들 때는 위로의 말을 듣기를 원하고 또 들어왔으면서 정작 나는 남에게 베푸는 말이 보잘것없으니 나도 참 이기적인 사람이다.


처음에는 주문 제작만 했다. 신규 조형 방식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기성품 모델에 색상만 변경하기도 한다.


내가 피규어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자신의 반려동물을 피규어로 만들어줄 수 있는지를 물어오는 이들이 생겨났다. 

의뢰하는 이들의 사연은 다양하다. 

친구나 연인에게 또는 부모님에게 선물하려는 사람도 있고 내 자신이 간직하려는 이들도 있다.

동물 친구를 이미 하늘나라로 보낸 이들도 있고 

서서히 이별을 생각해야할 만큼 나이를 먹은 동물 친구를 둔 이들도 있고 

아직 살아갈 날이 훨씬 많은 동물 친구를 둔 이들도 있다.

이별을 겪은 이들의 경우 자신의 동물 친구를 추모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그중 생전 모습과 닮은 조형물을 곁에 둠으로써 빈자리를 조금이나마 달래보고자 하는 이들이 나를 찾는다.


수업에서는 '스컬피'라고 하는 오븐 점토(오븐에 구워 경화시키는 점토)를 이용하여 작업을 한다.


일반적으로 바닥면에 이름도 새겨드린다. 이름과 함께 생일 혹은 기일 등을 새기기도 한다.


채색을 시작하기 전의 강아지 피규어 모습


피규어의 주문제작 금액은 무척 비싸다. 

‘헉’ 소리 나게 비싸다. 십중팔구 이들의 예상 범위를 훌쩍 뛰어넘는다. 

보기보다 워낙 난도가 높고 많은 손길이 필요한 작업이라 어쩔 수 없지만 내가 입장 바꿔 생각해봐도 선뜻 내놓기 쉽지 않은 금액인 건 분명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그 어마어마한 금액을 지불하는 이들도 있지만 높은 금액에 부담을 느껴 자신의 소원을 접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소원을 접으려는 이들의 마음을 돌려보기 위한 대안으로 구상한 것이, 그리고 단순히 주문자의 입장을 넘어 일정 부분이나마 자신이 직접 제작에 손길을 보태 보려는 적극성을 가진 이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상품으로 탄생시킨 것이 ‘나만의 반려동물 피규어 만들기 강좌’였다. 


채색 직후의 모습.지금까지 수업을 위해 작업실을 찾아주신 수강생 분 중에서 가장 멀리서 오셨던 분의 작품이다.


일단 수강료는 주문제작 금액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물리적 거리와 시간이 문제되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대체로 이 대안을 선택한다.

사실 말이 강좌이지 내가 거의 만들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해진 순서를 따라하면 금방 결과물이 나올 수 있는 성격의 작업이 아니다 보니 실제론 고객 직접 참여형 주문제작 상품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다. 수강생은 뼈대 만들기, 털 조형 일부, 채색 작업 시 바탕색 칠하기 정도에 기여하는 편이다.

그런데 자칫 내가 놓칠 수 있는 미세한 특징들을 수강생들이 전화 통화나 활자상보다 더욱 자세히 알려줄 수 있고 사진 상으로는 빛과 각도로 인해 실제 작업물의 모습이 왜곡되어 보이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지만 대면 수업에서는 그렇지 않아 보다 정확한 조형 및 수정이 가능하다. 그렇다 보니 소위 말하는 ‘싱크로율’ 은 일반적인 주문 제작의 경우보다 높은 편이다. 

또한 일정 부분이나마 자신의 손길이 깃들어져 있으니 수강생들의 만족도도 대체로 높다.


피규어 외에 간단한 소품을 하나 정도 만들기도 한다.주로 반려동물이 생전에 좋아했던 쿠션,장난감 등을 만든다.


딱히 정해진 기간이 있는 것이 아닌,상시운영되는 강좌라 상담을 통해 수업 일정이 정해지면 수업 시작 전까지 반려동물의 사진과 동영상을 이메일로 전달받는다. 

수업 시간에 내 손은 늘 바삐 움직이지만 내 귀는 동물 친구들에 대한 수강생들의 이야기에 기울여진다. 

그들의 입을 통해 다양한 이야기가 전해지곤 한다.

처음 만났을 때 이야기, 행복했던 기억, 이별을 준비하던 당시의 일, 그 외 세상사는 일 등등. 

늘 그랬듯 말로 위로하는 일에는 능숙치 않아 조용히 들어드리고 공감해드리며 때때로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면서 내 눈은 사진과 작업물 사이를 바삐 오가고 내 손 역시 작업물 위를 바삐 오가며 이따금씩 수강생의 반응을 묻곤 한다. 


입체작업이다보니 다양한 각도에서 찍힌 사진들이 필요하다.


단순해 보이는 흙덩이에서 점차 기억 속의 모습에 가까워지는 순간 간혹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계신다. 이들의 눈물이 내 눈에 들어올 때 잠시 당황하긴 하지만 이내 평정심을 찾고 휴지를 찾아 건네 드린다. 세상에 하나뿐인, 내 반려동물 피규어를 만들어 나가는 이들의 여정이 단지 눈물로 끝나는 건 아니다. 그래도 내 작업실에 처음 들어서던 순간보다 한결 안정되고 밝아진 듯한 모습으로 감사 인사를 전하며 작업실을 나설 때 내 재주로 어느 한 사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에 나도 안도하곤 한다. 또한 멀리서 시간 내어 찾아와 준 이들에게 꾸벅 감사 인사를 드린다. 


햄스터 친구들. 세마리이다보니 각각 다른 포즈로 만들었다.



분명 거창한 의미를 두고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대가 없이 봉사하는 사람이 아니다.

들어오는 돈이 있어야 작업실 월세도 내고 재료도 사고 휴대폰 요금도 내고 차비도 낼 수 있다는 현실을 늘 직시하고 있으니 금액 때문에 머뭇거리는 고객의 마음을 어떻게 하든 열기 위해 내놓은 대안이 이 강좌였다. 

하지만 이 강좌를 통해 나온 결과물이 단순한 피규어를 넘어 한 사람의 마음을 보듬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지는 못했다.

위로의 말재주는 없어도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손재주와 그 손재주를 돕는 눈과 귀가 있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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