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설레게 하는 건 반칙이잖아요!
제 멋대로 널뛰는 가슴을 눌러 앉히며 이 글을 쓴다.
이 지경이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 하루를 버렸다.
이 시간에는 뭘 해도 나쁘다.
새벽 두시에는 뭘 해도 나쁘다.
이 시간에 술을 먹는다? 나쁘다. (몸에 나쁘다)
이 시간에 깨어있다? 나쁘다. (피부에 나쁘다)
이 시간에 라면을 먹는다? 나쁘다. (내일의 정신 건강에 최고로 나쁘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시간에 글을 쓰는가.
나는 지금 이 새벽이 마치 끝나지 않는 유니버스인 것처럼, 또 하나의 평행우주가 있는 것처럼
내일의 태양은 절대로 뜨지 않을 것처럼 나의 1시간을 내일의 5시간과 맞바꾼 것처럼
누구보다 열심히, 누구보다 파괴적으로 모두의 경이로운 6월의 첫날을 허비하고 있었다.
날씨가 잘못했다.
오늘이 대본을 써야하는 날인 것 자체가 잘못됐다.
창밖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걸음걸이도 재밌었다. 사람들이 더워하는 것도 재밌었다.
시간은 우사인볼트처럼 빨랐다. 그래서 나는 지금 실로 초조하다.
이 지루하고 고단한 대본을 마쳐야 한다. 3시간 20분 정도 남았다. 나의 데드라인.
이것이 바로 마감형 인간의 최후인 것이다. 정말?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90년대 호불호 안 갈리는 노래 모음이나 들을 걸.
추억을 회기한답시고, 이것저것 누르고 듣다가 10센치, 검정치마, 이소라, 아이유를 거쳐
'어땠을까'가 나왔다. 숨겨놨던 감성버튼 3이 눌려버렸다. 무려 아이유&싸이 버전이라니.
아이쿠야. 네가 지금 가동되면 어떡해.
어떡하긴, 바로 1시간 각이다. 무책임한 인간의 최후도 보게 될지 모르겠다..
몇년 전 체코 여행에서 난 이 노래가 자동으로 재생됐던 장면을 떠올렸다.
체코 광장이었다. 관광객으로 가득 찬 어느 야외 레스토랑에서 너무 짜서 무슨 맛인지도 모를
빠에야와 와인을 먹고 있을 때였다. 전방에 남녀가 보였다.
4층쯤 되는 높이의 건물 안에서 그들은 커다란 창문에 걸터 앉아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밤 산책은 포기하고, 창문으로 달맞이라도 하고 있던 걸까.
체코의 여름 밤은 참 좋은데, 각지에서 몰린 여행객들 때문에 참 별로야...여기서 구경이나 하자. 라는
대화라도 나눴을까. 어찌됐든 두 개의 실루엣이 보였다. 행복해보였다.
'온 몸에 어디든 귀를 갖다 대면은 맥박 소리가...' 라는 장면을 그려보라고 하면 딱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당신들이 싫어할지도 모를, 어쩌면 관심도 없을 동양여자가 너희들의 비지엠을 만들어 주고
있단다. 대리 설렘은 허락해주길 바란다. 와인 홀짝. 두 사람의 웃음 소리를 들으며 흐믓한 미소 한 번.
다시 또 와인 홀짝. 남몰래 여름 밤도 홀짝.
노래가 잘못했다. 사람을 왜 설레이게 하냐고.
3시간 2분 남았다. 설레는 가슴을 달래야 한다.
나는 내일도 충혈된 토끼 눈으로 해내야 하는 일들이 있다.
그러려면 지루하고 고단한 대본을 털어야 한다. 후. 3시간 남았다.
열심히 달리면 가능할 것 같다. 마감형 인간의 최후는 다음에 보도록 하자. 먼저 갈게.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