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얀 벌판에 삼켜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 중 하나가 글을 쓰는 것은 백지로 채워져 있는 공간에 검은색 글씨를 밀어 넣는 행위라고 했다.
있는 힘껏 밀어 넣어도 글자 하나를 적는 것도 벅찬 삶이다.
단어와 문장을 병렬로 이어서 글로 만든다. 백지에 검은색 글씨를 밀어 넣는 건, 이미 가득 차있는 세상에 나를 밀어 넣는 행위와 같아 보인다.
문장에 압도당한다. 몇 번을 더 읽는다. 생각을 관통당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처음이라는 것은 사실 없는 것이 아닐까? 이미 가득 차 버려서?
사실 계획 따위를 세우려고 머리를 굴리면 하얀 곳에 아무것도 없고 나만 있는 것 같은 장면에 빠지고는 한다. 어쩌면 그 한 발을 딛는다는 것은 허공을 향해 발을 던지는 것일지도 모르다는 공포감과 함께. 어떤 지도가 없으면 상상 속의 나는 하얀 벌판에 삼켜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강박적으로 지도를 만들지만 그 흰색 배경은 나에게 틀렸다고 말한다. 벌판에 멈춰 서서 흰 배경을 바라본다. 마치 팔다리가 흩어진 것 같은 자유로움이다. 왜 자유를 행복이라고 정의했을까? 무책임한 자유는 그야말로 지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