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파일이 날아갔다고?

미개한 인생은 이런 맛에 살지.

by 무말랭이

감기려던 눈을 번쩍 뜬다. 나 어제 촬영해둔 거 백업해놨던가? 잠은 도망가고 미칠듯한 불안감만 남는다.

포맷을 한 기억은 있는데, 백업을 확인한 기억이 없다. 미친. 소름이 돋는다. 금요일 마감인데. 제발 감이 틀렸길 틀렸길 싹싹 빌면서 애써 눈을 감는다. 지금 알고 불안해봐야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영 신경쓰여 잠이 오질 않는다. 기억을 더듬는다. 진짜 백업 안 해뒀나?

모르겠다. 이럴 땐 수습을 생각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미 포맷된 디스크야 복구하긴 글렀을 거고 다시 촬영한다면 3일은 족히 더 걸릴 것이다. 주말출근 예약인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는다. 아, 염병.

역시 이런 맛에 내 인생 살지! 쓰읍 칼칼한 공기 한번 들이쉬고 허술한 내 일처리에 치얼스.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하지. 지금 내 옆에 상사가 없는데. 다시 한번 침착하게 눈을 감고 기억을 뒤적인다. 제발 백업했어라. 제발. 미천한 기억력에 한번 더 치얼스.

평소엔 출근 직전까지 눈이 떠지질 않는데, 역시 생존본능은 위대하다. 질세라 아침부터 내달려 2시간이나 일찍 출근을 한다. 백업용 외장하드부터 확인. 클릭 직전에 손이 파들 거린다. 있어야 한다. 제발!


역시, 그럴리 없다. 그치. 내가 그럴리 없었다. 비난은 잠시 접어두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신다. 이미 꽃된거 뭐 어쩌겠어. 배째야지. 웅얼거린다. 제시간 맞춰 온 동료는 동그랗게 눈을 뜨며 왠일이냐며 나를 바라본다. 맞아요. 아슬아슬 지각 세이프가 전데 말이죠. 왠일로 여기에 이러고 있을까요?하하.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인사하고 제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들어오자 마자 상사께서 친절히도 “아, 이번 촬영 편집한거 언제까지 가능하다고 했었지? 오늘?” 이라고 말씀해주신다. 오늘까지 올려야한다. 젠장할.


앉자마자 다급한 손길로 백업 파일과 미쳐 삭제하지 못했길 바라는 휴지통을 미친듯이 뒤적인다. 복구 프로그램을 돌려서 건진 건 100장이 넘는 파일 중 겨우 30건이다. 다 다른 사진이면 모르겠는데 거의 같은 사진이라 진짜 건질건 5장 뿐이다. 이게 어디야.


5장을 미친듯이 편집한 후, 점심시간 전에 제출하며 “조명이랑 초점 나간게 너무 많아서 나머지는 재촬영 해야 될고같습니다.” 라는 혼이 담긴 구라를 친다. “그럼 언제까지 가능하지? 오늘까지 하면 편집까지 마무리 못하잖아.” 네,그럼요. 하지만 해내라는 뜻 아닌가, 야근 각이다.


촬영을 하면서 백업은 필수다. 아무리 생각해도 백업이 있을 건데 이상하다. 동료 폴더와 클라우드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흩어진 조각모음으로 놀랍게 2개를 제외한 상품을 모두 복구했다. 편집까지 마치면 빡빡하지만 퇴근 전까지 못할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어림도 없지. 편집 업무에만 집중할 수 없는 멋진 근무 환경 덕에 오늘도 야근 각이다. 오늘도 멋진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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