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노동의 숭고함
붓다의 제자 판타가가 깨달음을 얻었던 건 이런 맥락이었을까?
최근에 난 단순노동의 즐거움을 알았다. 단순노동은 생각을 비우고 행위에만 집중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것뿐인가? 시작과 끝이 명확하기 때문에 성취감도 있고, 안 그래도 생각할게 많아지는 요즘에 리셋버튼이 되어준다.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순조롭게 좋은 리듬을 만들어 가장 꺼려하던 일을 끝낼 수 있게 만들어줬다. 이쯤이면 즐거움을 넘어 어떤 숭고함마저 느끼게 만든다.
나에게 있어 단순노동은 '아무 생각 없이 행위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청소, 택배포장, 폴더정리 같은 것들이다. 의외로 지금의 나에게는 정리의 일부와 운동은 단순노동이 아니다. 정리의 경우, 이미 정해진 장소가 있다면 단순노동이 맞다. 하지만 처음부터 자리를 정해야 되는 정리의 경우엔 동선과 효율을 고려해야 될 때가 때문에 기획능력이 필요한 영역이다.
운동은 아직 내가 헬린이기 때문에 운동을 아무 생각 없이하면 자세가 틀리거나 다치기 마련이다. 습관이 되면 나중엔 단순노동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양한 근육을 정확하고 다양하게 쓴다는 것은 정말 머리가 좋아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매번 느낀다.
언젠가 친구에게 단순노동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아니 그러면 명상이 낫지 않아?'라는 말을 들었다. 훨씬 덜 소모적이고, 짧은 시간 안에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난 강경 단순노동파 이기 때문에 단호하게 굴었다.
사실 어릴 적에 수행캠프도 방학마다 갔었고, 인도에서 7개월간 절에서 머문 적도 있었다. 당최 명상이 좋아지질 않는다. 어릴 적에 벌로 명상을 억지로 했었는데, 나는 ADHD 성향이 있는지라 가만히 있지 못해서 더 많이 혼이 났다. 그 기억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명상이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남아있어서 그런지 명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언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시점이 오면 좋아하려고 노력하겠지만 일단 그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아무 생각 없이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더러웠던 방이 깨끗해져 가는 것을 보는 것만큼 피드백이 명확한 일은 세상에 많지 않다. 오늘도 청소와 일주일치의 수프를 끓이고 책을 읽고, 일기를 썼다. 다들 이 정도하고 산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휴일이면 화장실 가는 것을 제외하고는 침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인간이었다. 그런 내가 휴일에 몸을 일으켜서 스스로 청소를 한다는 것은 내 인생에서 어떤 대단한 사건이 일어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단순노동 하나가 좋아졌다고 회사 업무도 덜 싫어졌다. 소일거리, 귀찮은 일로 치부되었던 것들이 대부분 단순노동인데, 즐거워지니까 먼저 하게 됐기 때문이다.
청소를 하다가 도를 깨달은 붓다의 제자 판타카는 이런 말을 했다. “걸레와 빗자루가 이 세상의 더러움을 쓸고 닦아 깨끗이 만들듯이, 자비의 걸레와 지혜의 빗자루로 마음속에 더 이상 티끌이 쌓이지 않도록 하는 게 수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불교를 아는 사람이라면 제법 흔히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나는 판타카의 케이스로 단순노동이 어디까지 숭고해질 수 있는지 알려주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소한 게 하나 좋아져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꼭 단순노동이 아니어도 된다. 좋은 취미를 만들면 삶이 풍요로워진다고 하던데 나는 그게 단순노동인 모양이다. 이제 누군가 취미를 묻는다면 나는 자신 있게 단순노동이라고 말할 것이다. 단순노동 만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