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야기의 온도
처음 만났던 날에 대해 너는 매일매일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가 어떤 용기를 내어 서로 손을 잡았는지 손을 꼭 잡고 혹한의 공원에 앉아 밤을 지샜는지. 나는 다소곳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 우리가 우리가 우리를 우리를 되뇌고 되뇌며 그때의 표정이 되어서. 나는 언제고 듣고 또 들었다. 곰을 무서워하면서도 곰인형을 안고 좋아했듯이. 그 얘기가 좋았다. 그 얘기를 하는 그 표정이 좋았다. 그 얘기가 조금씩 달라지는 게 좋았다. 그날의 이야기에 그날이 감금되는 게 좋았다.
- 김소연 시 <다른 이야기> 중
비는 그치질 않고 버스는 오지 않는다. 어깨부터 옷이 다 젖었다. 으슬으슬 춥다. 이럴 때는 옆 사람이랑 아무 이야기라도 나누면 좀 낫다. 지난 주에 먹었던 사과가 맛있길래 똑같은 가게에서 똑같은 걸 다시 사왔는데, 이번에는 야물지도 않고 달지도 않더라. 아마 이번 주에 계속 비가 내려서 전국의 사과들이 물을 먹은 것 같다. 어줍잖은 추측을 더한다. 주말에 있었던 결혼식 이야기, 남편될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도 보탠다. 지난 주에 그 사과를 예비 신부에게 먹이려고 사다놓았는데 깜빡 냉장고에 두고 대접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과와 결혼식과 냉장고까지 이야기를 엮으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천천히 몸 안에 온기가 도는 듯 하다.
정보의 파편을 모아 그럴듯한 하나의 서사를 만들면 그래도 내가 그/그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아슬아슬하게나마 나는 어딘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으며 세상에 닿아 있다는 안도감. 어쩌면 이야기라는 장르(?)는 세상이 조각 조각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어떤 식으로든 얽혀 있다는 믿음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리라. 나도 당신도 같은 세상을 배경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소속감과 공감대도 이야기가 주는 효능이다. 아마도 이런 감정들을 땔감으로 이야기는 우리의 몸을 덥혀주는 것이겠지. 굴뚝도 난로도 없지만 이야기가 어떻게 저마다의 온도를 전하는지를 설명하자면.
게다가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하다. 이야기는 말하는 사람의 유명세나 인지도에 좌우되는 법도 없고, 문장의 화려함이나 지식의 두께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야기는 더없이 위대한 사람의 생애도 두세 마디로 요약할 수 있고, 세상 흔하고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도 조선왕조실록처럼 길고 세세하게 묘사할 수 있다. 그래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백지를 눈 앞에 두고 있는 사람은 누구나 피의자처럼 고분고분해지는 법이다. 전문가 행세를 하는 나도 뾰족한 수는 없다. 이야기가 어딘가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닿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무작정 따라간다. 그나마 약간의 노하우가 있다면 이 문장이 가닿을 누군가를 아주 열심히 상상한다는 것 정도.
제안서나 기획안에는 '스토리텔링'이며 '타겟팅'이라고 적지만, 사실 나는 아주아주 구체적인 누군가를 상상하면서 기사를 쓴다. 기획안에는 'SNS 활용도가 높은 20~30대 타겟 소비자'이라고 적지만, 나는 요 앞 편의점 카운터에서 밤을 보내느 아르바이트 청년을 생각하며 기사를 쓴다. '전문직 종사자 - 중간관리자급 사용자' 라고 제안서에는 적었지만, 최근 난감한 프로젝트 때문에 야근을 반복하는 누군가의 일상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든다. 내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듯이 문장을 적어나가면, 그들이 망망대해 저 멀리에 떠 있는 부표처럼 손을 흔들어 주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 사람들이 내가 만드는 이야기의 목적지라고 생각하면 무슨 대단한 정보나, 세상을 뒤바꿀 선언이나, 뛰어난 관점을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야기는 내가 말하면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말을 걸면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말을 하는 행위라기보다 말을 거는 것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야기는 그래서 저널리즘과도 다르고, 일방적인 스피치와도 거리가 멀다. 이야기의 세계에서는 상대의 안녕과 안부를 묻는 것이 무슨 훌륭하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야기는 누군가에게 가닿는, 그 순간을 상상할 때 비로소 힘이 세지는 장르라고 믿는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그것을 잘 따라가려고 노력한다. 어떤 날은 물이 너무 차갑고 바람이 거세서 눈도 뜰 수 없는 순간도 있고, 심지어 꽝꽝 얼어붙어서 깨부숴야 할 때도 있다. 물이 0도에서 얼기도 하고 녹기도 하듯이 이야기도 아주 미세한 차이와 조건에 따라 꽝꽝 얼기도 하고, 풀리기도 한다. 아주 미세한 조건에 따라 표변하는 이야기의 본성은 그래서 나를 두렵게 만든다. 이야기를 만드는 순간만큼은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