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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명 Oct 15. 2019

1981년

- 아무도 주지말고

하나둘셋넷 하나둘셋 들리십니까? 잘 들려요? 아아 그러니까 1981년이었다. 사상 최초로 유인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가 발사에 성공하고, 일본에서는 아다치 미츠루의 <터치>가 발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요톱텐이 첫 방송을 시작했다. 여러 조건이 걸려 있기는 했지만 공식적으로 해외여행이 자유화된 해였다. 내무부에서는 연좌제 폐지에 관한 지침을 발표했다. 좋은 소식이었지만 이 제도가 일반 기업이나 관공서에 정착하기까지는 또 한참을 걸렸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외조부는 1960년 12월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당 소속으로 의원에 당선된 정치인이었다. 다만 이듬해인 1961년 박정희 군사 정부가 들어서면서 불과 6개월 정도밖에 정치인 생활을 누리지(?) 못하셨다. 1981년 초등학생이었던 내가 기억하는 그는 늘 멋지게 차려입고 술과 노래를 벗삼아 사는 '댄디'였지만, 이 불운한 정치인은 20년 넘게 정치적 영향력을 복구하느라 이미 인생을 탕진한 상태였다. 꼭 좌절된 야망 만큼 낭만적이고 다정했던 외할아버지는 나를 만나면 늘 얼마간 잔돈을 쥐어주거나, 간식거리를 몰래 안겨주었다. 


"저어기 멀리 가서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먹어라."


입버릇처럼 외할아버지는 꼭 그렇게 덧붙였다.  말이 나는 참 좋았다. 그 말에 묻어나는 노골적인 편애마음에 들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내가 좀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주변을 자막처럼 얼쩡거리고 있으면 오래지 않아 이모, 삼촌들이 아귀처럼 달려들어 아우성을 치는 바람에 유대감을 즐길 시간은 없었다. 


당시 나를 둘러싼 가족 환경은 매우 거칠고 경쟁적이었는데, 중학생, 고등학생이었던 이모들과 외삼촌, 두 살 터울의 동생 사이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온전한 내 몫을 챙기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을 것이나 잔돈 푼이라도 생길 것 같으면 덮어놓고 달려드는 혈육들을 보면서 일찌기 나는 가족이란 아주 몰염치한 사람들이란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나는 혼자 있기를 즐기는 어린이가 되었다. 내가 어찌나 집밖으로 나가기를 싫어 했는지 아버지가 하루는 내가 즐기는 위인전이며 공상과학 소설과 프라모델 따위를 창고에 치워버리고 자물쇠로 잠궈버리기도 했다. 

 

게다가 혹시 모를 일탈을 예방하기 위해 할머니는 이모, 삼촌이 외출할 때마다 나를 열쇠 고리처럼 매달아 보냈는데, 그녀가 정해준 나의 임무는 일정한 시간이 되면 일종의 귀가 알람 앱처럼 집에 가자고 조르는 것. 이 천방지축 이모, 삼촌을 집으로 복귀시키는 임무를 맡으면서 나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하는 어른들의 앞잡이 같은 존재로 낙인찍혔다.


아마 런 환경에 있다보니 외할아버지의 일방적인 묻지마 편애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이리라. 무조건적이고 오로지 나만을 향한, 오직 나만 좋은, 나만 누릴 수 있는. 아니 사랑은 본래 그런 것이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 자리잡기 시작했. 누구에게나 좋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배려가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얼마든지 이기적이고 편협도 되는! 특권!


"정말로 좋아한다면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차지해야 돼. 그런 각오가 없다면, 미나미는 절대 못줘!"

1981년 발표된 아다치 미츠루(安達充)의 만화 <터치>에서 미나미 아버지가 남자 주인공 타츠야에게 일갈하는 내용이다. 지금 같으면 미나미가 나타나서 '내가 머 냉장고야? 지역구야? 차지하긴 뭘 차지해?!' 따지고 발을 구르면 남자들이 달려 들어 별점 테러하고, 미나미에게 악플 달고, 엉망진창이 되었겠지만 1981년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미나미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자기 생각을 앞세우는 법 없이 눈요기용 비키니 컷도 담담하게 받아들다.


이런 저런 흠결에도 불구하고 나는 '온 세상을 적으로 돌리더라도' 사랑해야 한다는 미나미 아버지의 말  동의한다. 나이를 하나둘셋넷 먹을수록 사랑에 대한 무시무시한 집착 감정 같은 건 사라졌지만 여전히 나는 사랑이 배려 따위가 아니라, 파괴적이고 격렬한 열망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외조부가 '아무도 주지 말라'고 말했던 것처럼 독점적이고 특별한 무엇 말이다. 


하지만 뭐 사랑에 대한 열망은 날이 갈수록 희미해지고 별 것 아닌 과자 부스러기나 과일, 커피 쿠폰 따위를 건네면서 '아무도 주지 말고' 혼자 먹으라고 덧붙이는 가난한 습관만 남았다. 근처 편의점이나 가게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평범한 것이지만 상대방이 조금이라도 그것을 특별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굳이 볼품없는 사족을 붙이는 것이다. 나에게 유난히 다정했던 외할아버지가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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