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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utumn Dec 04. 2021

제주생활백서

제주에서 건져낸 취향 : 서핑

4년 전 제주에서 처음 서핑을 시작할 때에도 기존 로컬 서퍼들을 비롯하여 여행으로 와서 서핑을 배우고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해 한해 지날수록 서핑이 대중적인 레포츠로 자리 잡기 시작했고 서핑 인구도 많아졌다. 제주바다를 찾는 많은 서퍼들로 인해 태평양처럼 넓지 않은 한정된 공간에서 초밥(서핑 초보)인 나로서는 나뿐만 아니라 남이 다칠까 봐 서핑을 타는 것이 두려워졌다. 근래에는 바다에 나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서핑은 최소한의 도구로 자연을 즐기는 최대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파도를 타는 짜릿한 스릴, 이 경험을 글로 설명하긴 참 어렵다.

 “서핑은 마피아 같은 거예요. 일단 들어오면 그걸로 끝입니다. 출구는 없어요.” 

- 켈리 슬레이터(WSL 11회 챔피언)

“서핑은 지구 상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로 행복한 경험이에요. 천국의 맛이 있다면 그게 바로 서핑일 겁니다.” 

- 존 맥카티

“파도를 탈 수 있는 방법에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게 아닙니다.” - 제이미 오브라이언

“최고의 서퍼란 가장 즐겁게 타는 서퍼를 말합니다.” - 필 에드워드


만약 서핑에 도전하고 싶다면, 서핑 강습을 한 차례라도 꼭 배우고 안전하게 즐기는 것을 추천한다. 바다는 잔잔할 때엔 너그럽고 부드럽지만 바람에 따라 생기는 파도는 때때로 거대하고 거친 모습으로 다가오며 바다에는 파도 외에 리프나 조류 등 여러 위험한 요소들이 혼재한다. 그리고 넓은 바다지만 한정적인 파도를 타인과 함께 공유해야 하므로 안전을 우선으로 하고, 서핑에 관한 서퍼들의 룰과 바다에서의 에티켓도 꼭 찾아보고 숙지하는 것이 좋다.

제주에서 취향이 된 서핑이야기

1. 서핑 스팟을 찾는 즐거움

제주는 좋은 서핑 스팟이 많다. 사면으로 크고 작은 해변이 있고 바람이 달라서 계절마다 다른 파도와 그 성향들이 뚜렷하다.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 시기가 장소마다 다른데 주로 내가 탔던 곳은 여름엔 중문, 겨울엔 함덕•월정이었다.  

중문은 내가 탔던 롱보드를 주차장에서 해변까지 오르락내리락해야 하고 뜨거운 여름엔 모래사장을 걷는 일이 힘들지만 따뜻한 시기에 파도가 좋아 시즌엔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다. 함덕과 월정은 에메랄드 빛 바다와 풍경 자체가 너무 예쁘고 접근성이 좋으며 내가 좋아하는 파도들을 가장 많이 만났던 곳이다. 이밖에도 이호테우, 삼양, 곽지, 표선, 사계 등 크고 작은 해변이 많고 서핑 스팟이 많다. 나에게 맞는 서핑 스팟을 찾는 즐거움, 제주에 살아서 가능한 일 일지도 모르겠다.


2. 즐거운 과정 그 자체 : 기다림

바다 타임, 윈드 파인더 등의 앱을 통해 바다 상황을 예측한다. 스팟에 따라 파도가 잘 들어오는 물때가 다르므로 바다 타임에서 물때(간조, 만조)를 보고, 윈드 파인더를 통해 파도의 방향과 높이, 피리어드 그리고 바람의 세기 등을 체크 한 뒤 바다로 나갔다. 꼭 맞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예측은 가능하다. 서핑의 실력은 물밥이라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내 실력은 항상 초보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안전한 파도의 높이 0.8~1.2m, 바람의 세기 0.3~1m/s, 긴 피리어드(파도의 간격)로 대체적으로 말랑말랑하지만 적당한 패들로도 잡을 수 있는 힘이 있는 파도가 내가 갈 수 있는 시간과 장소에 들어올 때 바다를 찾았다. 좋은 파도가 오는 날을 기다렸다가 바다로 나가 바다 위에서 둥둥 보드에 앉아 항해하는 기분으로 파도를 또다시 기다리고 버티는 과정 그 자체를 나는 즐겼다.


3. 내 인생의 파도를 만나는 즐거움 : Take Off

처음에 서핑을 접한다면, 누구나 지상에서 보드 위에 누워 테이크 오프(보드에 서서 중심 잡는) 동작을 연습하게 된다. 바다 위에서 내 몸을 일으키는 과정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다. 뭐든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고 시간과 노력을 들인 만큼 실력이 늘어나는 것에 비례 적용되는 것이 서핑인 것 같다. 바다에 나가는 횟수와 경험이 쌓이면 마침내 멀리서 오는 좋은 파도를 읽는 눈을 갖게 된다. 좋은 파도가 왔을 때 패들로 파도의 속도에 타이밍을 맞추는 일, 파도 위에서 내 몸을 일으켜 중심을 잡고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딱 맞았을 때 라이딩이 이뤄진다. 그 짜릿한 찰나의 성취감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또다시 찰나를 경험하기 위해 바다로 나아가고 기다리고 모든 것을 반복한다. 수많은 파도가 오고 그 파도를 지나치기도 하고 때론 멋지게 날아오르는 그 행복한 찰나의 순간을 만나기 위해 거친 파도에 맞서 버티고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반복하는 서핑은 우리의 인생과 무척 닮았다.


4. 서핑에 빠지는 이유

서핑에 빠지는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시간과 노력을 투자한 만큼 하나 둘 늘어가는 서핑 테크닉에 대한 성취감, 파도를 기다리며 생각이 사라지는 단순함, 파도를 잡는 순간에 집중하는 몰입감, 매번 다른 파도를 잡는 타이밍 게임, 이 모든 과정의 반복 그리고 그 자체가 운동이 되어 건강한 삶으로 되돌려 주는 것만으로도 서핑에 빠지게 되는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이 취향인 이유

가끔 찾아오는 타이밍 부재로 인한 통돌이(파도 안에서 구르는 느낌)의 쓰고 짠내 나는 경험은 헤어 나오기 힘들다. 1m가 넘는 파도도 나는 여전히 두려운데 특히 멀리서 파도를 볼 때와 바다 안에서 가까이 직접 파도를 보는 것은 시각적 느낌 자체가 다르다. 그리고 바다의 공간은 한정되어 있고 처음 타는 초보자부터 고수 서퍼까지 늘어나는 서핑 인구로 눈치 게임하듯 경쟁해야 하는 파도타기와 그 속에서 겪는 마찰이 어느 순간 귀찮아졌다. 햇빛으로 손상되는 머릿결과 서퍼의 상징 그을린 건강한 구릿빛 피부가 나에게는 사라지지 않는 주근깨와 기미로 남고, 서핑의 시작과 종료 시 일련의 과정들(계절마다 다르지만 슈트 입기와 벗기, 차량에 보드 싣기와 내리기, 바다에서 묻어 나오는 모래와 염분 등의 뒤처리 등등)이 아쉽지만 나에게는 파도를 타는 짧은 찰나의 행복감과의 등가교환이 안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핑보드와 슈트를 당근 마켓에 선뜻 내놓지 못하는 나는 따뜻하고 맑은 날씨에 내가 타기 좋은 파도가 오기를 여전히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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