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엄마는 왜 말을 그렇게 해?!
어렸을 때부터 우리 딸은 여럿이 어울리는 것보다는 단짝 친구와 조용히 노는 걸 더 좋아했다. 세 명이 모이면 한 명은 어김없이 소외되고, 네 명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둘둘 나뉘게 된다며, 둘이서 노는 게 가장 편하다고 말하곤 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사실 나 역시 네 명 이상이 모이는 자리는 어딘가 불편하다. 이런저런 대화가 뒤섞이기보다는, 소수의 사람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훨씬 좋다.
4년 이상 절친인 줄 알았던 친구의 배신(?)으로 상처를 받은 적이 있던 딸아이는 한동안 친구관계로 어려움을 겪었다. 한동안 말수가 줄었고, 방학 때도 집에만 있었다.
그러다 5학년 때, 마음의 결이 잘 맞는 친구를 만나 오랜만에 마음을 활짝 열 수 있었다. 그런데 6학년이 되며 반 배정에서 그 친구와 떨어지게 된 것이다. 딸아이의 얼굴엔 실망감이 역력했다.
속상해하는 딸아이를 위로해 주고 싶었지만, 정작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이랬다.
“친구가 전부는 아니야. 그리고 평생 진. 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엄마는 왜 말을 그렇게 해?!?!"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아이 마음에 닿기보다는 오히려 더 외롭게 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나는 F 성향의 엄마이지만, 아이 앞에서는 뭐라도 해결해 주고 싶은 T 엄마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감정에 공감하기보다, 상황을 정리해 주려 했던 그 순간. 내 방식의 ‘위로’는 결국 아이가 바랐던 방식과는 조금 달랐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나는 느꼈다. 친구라는 타인의 영향보다 더 중요한 건 ‘나’라는 존재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아끼며 살아가는 힘이라는걸. 사람과의 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삶의 중심은 ‘나’여야 한다는 걸 조금은 늦게 알게 되었다.
그런 깨달음을 딸에게도 전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아이의 마음이 다치고 있는 그 순간엔, ‘깨달음’보단 ‘공감’이 더 절실했다는 걸 나는 그제야 깨닫는다.
스스럼없이 고민을 털어놓고,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도 편하게 나눌 수 있는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그런데 한편으론, ‘말해도 소용없는 엄마’가 될까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