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한의원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어요.
한의원의 특성상, 또 제가 일했던 곳이 한 동네에서 10년 가까이 자리를 지켜온 한의원이었기에, 70대 이상 어르신들이 자주 찾으시곤 했습니다.
그중에 일주일에 두세 번은 빠짐없이 오시던 노부부가 계셨어요.
할아버지는 항상 말씀이 없으셨고, 할머니는 조금 까칠한 말투를 쓰셨는데 사실은 말투만 그랬지 마음은 참 따뜻한 분이셨어요.
직접 캔 감자를 쪄서 가져오시기도 하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을 나눠주시며 “항상 수고 많다”고 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았어요. (제가 먹을거리에 약한 편이라, 더 기억에 남았는지도 모르겠네요.)
치료실에 들어오시면, 늘 본인보다도 할아버지의 건강을 더 걱정하셨어요.
“오늘은 영감이 허리가 더 아프대, 핫팩 좀 오래 해줘”, “물리치료 조금 더 신경써줘” 하시며 정성스럽게 챙기셨죠.
무뚝뚝해 보이던 할아버지도 알고 보면 슬쩍슬쩍 할머니를 챙기시더라고요.
그때 제가 20대 초반이었는데, 두 분의 모습이 어찌나 다정하고 보기 좋던지, ‘나도 나중에 저렇게 나이 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감기에 심하게 걸리신 모습으로 약을 지으러 오셨어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이셨고, 치료실로 들어가신 뒤 저는 잠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눴는데요,
갑자기 할머니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어이구, 갈 사람은 얼른 가야지. 우리 영감이 나보다 먼저 가야 돼~”
놀란 저는 “어머, 어르신~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하고 되물었죠.
그러자 할머니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어요.
“내가 먼저 가면 자식들 눈치 보면서 밥 한 그릇도 맘 편히 못 먹을 거야.
제대로 챙겨 먹지도 못할 텐데…
내가 끝까지 밥 차려 먹이고, 딱 죽기 직전까지 얼굴 닦아 깨끗하게 보내고, 3일 있다가 나도 가야지.”
그 말씀을 들은 저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순간 할머니의 목소리에는 묘한 결연함이 느껴졌어요.
오늘 우연히 길을 걷다가, 나란히 걷는 노부부를 보았어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오래전 그분들이 떠올랐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고 계실지, 혹은 이미 하늘의 별이 되셨을지도 모르겠지만—
부디 두 분의 마지막이 너무 쓸쓸하거나 슬프지 않았기를,
서로의 곁에서 따뜻한 마음으로 눈을 감으셨기를..
그리고 언젠가,
나의 모습도, 우리의 모습도 그렇게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