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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늘파 Aug 31. 2022

해준 만큼 바라는 건 아마추어

[끼니] 불낙전골 사줬으니 스테이크로 갚아라?

 대학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오늘 점심은 제가 쏘겠습니다!”     


 나는 호기롭게 말했다.      



 “니가 뭔 돈이 있다고?”     


 팀장님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다.


 나는 연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며 불낙전골을 시켰다. 점심식사치고는 꽤 비싼 메뉴였다. 밑반찬이 나온 뒤 휴대용 가스레인지 위에 불낙전골이 올라왔다. 지글지글 끓을 무렵, 나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게 뭐예요?”     


 밑반찬을 집어먹던 관리부 여직원이 물었다. 내가 내민 건 카드 신청서였다. 자동차 회사에 취직한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며칠 전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자기네 회사에서 카드사와 제휴해 신용카드를 출시했다고 했다. 신청서 실적이 필요하다고 했다.


 마침 카드가 필요했기에 나는 흔쾌히 신청서를 써주었다. 그러자 친구가 다시 부탁을 했다. 주변 사람한테도 카드 신청서를 돌려 보란다. 별생각 없이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주변에 신청서를 돌리니 다들 거절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친구한테 양해를 구했다. 그냥 내 카드 하나만 만들면 안 될까? 친구가 안타까워했다.


 “곧 마감이니 몇 장이라도 신청서를 받아줄 순 없겠니?”     


 나는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직장동료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맨입에 부탁하기가 미안해서 불낙전골을 사주며 카드 신청서를 돌렸다. 먼저 팀장님이 사인을 해주었다. 그러자 다른 직원들도 카드신청서에 사인을 했다. 그런데 사인을 마친 한 직원이 떠름한 표정으로 물었다.


 “뭘 이렇게까지 친구를 도와줘요?”     


 날카로운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은근히 뿌듯했다. 봤지? 내 의리. 이런 마음이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체국으로 향했다. 받은 카드 신청서들을 우편함에 넣었다. 의리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저편엔 약은 계산도 깔려 있었다.     


 ‘내가 이렇게 해준 만큼 나중엔 그 친구도 나한테 이만큼 해주겠지?’     


 이런 마음이었다. 보답할 일이 생기지 않더라도 이번에 내가 보인 노력에 대해선 엄청나게 고마워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다. 한동안 친구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며칠 후 내가 연락해보았다. 친구는 별로 고마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신청서가 생각보다 적다고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마감 때문에 정신이 없는 친구와 오래 통화할 수도 없었다. 급히 전화를 끊고 나서 깨달았다. 내가 바보짓을 했다는 걸……. 


    

 따져 보면 친구 탓이 아니었다. 내가 쓸데없는 기대를 한 탓이었다. 내가 해준 만큼 상대도 해줄 것이라고 믿는 건 바보짓이다. 그런 일은 기대해서도 안 되며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런데 왜 나는 서운했을까. 범위를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친구를 도왔다면 그에게 바랄 일도 없고 서운해 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동료들에게 불낙전골까지 사줘 가며 신청서를 받았고 그것으로 생색을 내려 했으니 무리가 따른 것이다. 벅차게 도운 만큼 바라는 것도 생겼고 실망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나는 세월의 때에 찌들어가며 어리숙함을 벗었다. 나쁘게 말하면 순수함을 잃은 거겠지……. 어쨌든 많은 것이 변했다.


 카드 신청서를 흔쾌히 써 준 동료들도 많이 변했으리라. 문득 그들이 그립다. 점심 얻어먹었으니 써준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고맙다. 팀장님도 보고 싶다. 그땐 몰랐지만 지금 와 생각하면 참 좋은 분이셨다. 건강하시길 바란다.



※ 브런치 연재 '끼니' 발간  끼니 - YES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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