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이의 고사장은 어디인가?

by 밑줄긋는여자

최근의 일이다.

국가기술자격시험의 시험감독관으로 하루 일하게 되었다. 집에서 차로 십오분 거리의 고등학교에 가게되었는데 강당에 시험본부가 차려져있었다.


하루 감독관으로 활약할 사람들이 다 모이고 산업인력공단에서 나온 직원들이 여러 안내사항을 말해주고 있었다.


"○○시 인구가 몇 명인지 아세요?"


쌩뚱맞은 질문에 강당 안의 사람들은 의아하게 직원을 바라보았다.


"여기 시의 인구가 103만명이에요. 엄청나죠?

근데 시험장이 두 개밖에 없어요. 왜 그럴까요?"


직원의 요지는 이랬다.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는 학교에 협조를 구해 시험장을 빌려 써야하는데 학교에서 빌려주기를 무척 꺼려한다는 거다. 그 이유는 학부모들의 민원이 빗발친다는 것.


처음엔 학생들이 안나오는 주말에 교실을 빌려주는게 뭐 그리 싫은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직원의 말에 따르면 시험장소로 빌려주려면 학생들에게 좌석배치를 시켜야하고 책상의 물건들도 정리를 해줘야하는데 우리 아이가 왜 그런 수고를 해야하냐며 학부모들이 반대한다고 했다.


내가 갔던 그 고등학교도 학부모님들의 민원으로 인해 책상배치조차 학생들에게 협조를 구하지 못하고 시험주관처의 직원들이 새벽까지 수십개의 고사장 교실의 배치를 마쳤단다. 그러니 감독관들이 시험종료 후 책상을 두개씩 붙여만 달라는 간곡한 부탁의 말이 이어졌다.


처음 알게 된 일이었다.

나도 예전에 토익시험이나 국가자격시험을 보기 위해 여러 고등학교를 방문했지만 이런 속사정이 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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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얼마에 내놨어요? 4억 이하는 안되는데...."


영화 '목격자'에 나오는 대사다. 아파트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때문에 집값이 떨어질까봐 아무도 협조하지 않는다. (부녀회장이 경찰에 협조하지 말자는 서명을 받으러 다닌다) 심지어 아파트 입주민이 실종되고 남편이 아내를 찾기 위해 전단을 붙이는 것조차 아파트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불허한다.


감독업무를 위해 계단을 오르는 데 계단이 시작되는 곳에 비닐봉지로 된 휴지통이 설치되어 있었다.

"교실 안 쓰레기통은 절대 이용하지 말아주세요"라고 휴지통 위에 크게 문구가 붙어있었다.


우리 아이가 조금도 피해를 보는 게 싫다는 건 그래,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면 그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자격시험을 보게 되면 지금의 수험자들과 같은 입장이 된다. 그 때 시험장을 빌려주는 학교가 없어 집에서 한 시간이 넘는 곳으로 시험을 보러 가게 된다면 어떨까. 그때엔 우리 아이의 시험고사장을 왜 빌려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할까?


결국 돌고 도는 것이다.

내 아이가 소중하면 다른 아이들도 소중하고 내 가족이 소중하면 타인의 가족도 소중하다.


경험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겪어보지 않아도 공감할 수는 있다. 인간의 가장 위대한 능력 중 하나가 공감능력이 아니던가.


드라마의 주인공을 보며 들뜬 핑크빛 로맨스에 공감하고

영화의 상황에 몰입해 긴장과 서스펜스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나은 미래와 취업을 위해 적게는 몇 달에서 몇 년씩 여가시간을 쪼개고 잠을 반납한 이들의 인내의 시간을 공감해주는 건 어떨까.

어쩌면 미래의 내 아이의 모습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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