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는 지인에게 슬픈 일이 생겼다. 뱃 속에 품고 있던 소중한 아기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불과 출산을 한 달 앞둔 시기였기에 모두가 남들처럼 아기를 낳았을거라고 생각했다. 오랫만에 만나게 된 자리에서 많은 이들이 출산소식을 물었고 지인은 누군가가 물어볼 때마다 자신의 유산소식을 다시 끄집어내며 곤란한 표정을 지어야했다. 그래, 거기까진 괜찮다. 하지만 그녀가 있지 않은 곳에서 그녀를 아는 사람들끼리 임신 후반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느냐니, 그게 흔한 일은 아니지 않냐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그녀는 내게 말했다. 다시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고. 그 사람들이란 그녀의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이 아니었다. 그저 그녀의 슬픔을 안줏거리로 삼는, 그냥 아는 사람들의 관심이란 이름의 냉정한 시선이었을 뿐.
실시간 검색어에 유명연예인 이름이 떠 있었다. 일하던 중이라 새로운 음반을 냈거나 활동을 시작했겠거니 하고 넘겼다. 그런데 그 검색어의 의미는 그녀의 자살소식이었다. 자살기사를 보며 그녀가 한참 전에 전남친과의 다툼으로 화제가 됐던 것이 떠올랐다. 우울증치료를 받기도 했고 아직도 재판중이었다는 소식까지 여러 채널의 뉴스를 통해 퍼져가고 있었다. 불과 그보다 한 달 전쯤 유명한 여가수의 자살소식이 전해졌던 후였기에 뭔가 현실감이 들지않았다. 그렇게 예쁘고 아름답던 청춘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됐다는 게 잘 믿겨지지 않았다. 기사에서는 온갖 악플과 비방이 그녀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고 했다.
'주먹왕랄프2' 캡쳐화면
'주먹왕랄프2:인터넷 속으로'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예전 비디오게임 시절의 캐릭터 랄프는 절친 바넬로피를 구하기위해 인터넷세상에 가게 되는데 그곳에서 자신에 대한 수많은 악플과 마주하게 된다. 악플을 읽던 랄프는 의기소침해진다.
꽃같이 피어나던 그녀들을 죽인 것은 누구일까? 난 그녀들이 그토록 많은 악플에 시달리고 있는 지도 몰랐고 악플러가 그토록 많은 지도 모르고 있었다. 공인이란 위치는 어쩔 수 없이 대중에게 이슈나 가십거리가 되고 사생활까지 들춰내진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사람이 죽을 결심을 할 정도로 나를 모르는 다수가 나를 몰아세우고 공격한다는건 소름끼치게 두려운 일이다.
사회적타살이란 말이 있다. 그녀는 의심할만한 정황이 전혀없는 자살로 결론지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죽은 것은 그녀 밖에 있는 이유인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관심과 오지랖이라는 이름으로 남에게 쉽게 조언이나 충고, 비판을 한다. 왜 취직은 안하니, 결혼도 때가 있는거란다, 그렇게 공부 안하면 나중에 뭐할래, 멍청하게 그런 남자가 뭐가 아쉬워서 만나니... 대부분은 본인들도 알고 괴로워하는 사실에 확인하듯 비수처럼 쏟아지는 관심과 충고는 당사자를 슬픔이나 우울에서 꺼내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연예인의 경우는 더 심하다. 젊은 나이에 내가 가지지 못한 부와 인기를 얻은 그들은 쉽게 공격대상이 되고 만다. 백수 100만을 넘긴 살기 팍팍한 대한민국에서 그들이 쌓은 부와 명예는 너무나 쉽게 쌓아올린 것처럼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실제로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그것들을 얻은 것처럼 트집을 잡거나 그들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걸지도. 모두가 그런것은 아닐테지만 악플 그 저변에는 지독한 열등감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죄가 없을까? 나는 다행히도 연예인이나 공인에 큰 관심도 없고 악플이란 걸 달아본 기억이 없다. 그러나 이번에 자살한 여자연예인의 이슈는 주변인들과 진실공방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물론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이름을 보고 관련기사를 가십거리로 읽으며 조금도 전혀 그녀의 괴로움이나 절망감을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그럼 나도 사회적타살의 방관자정도는 되는 게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게다가 일본까지 진출해서 유명세를 떨치던 그녀였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그녀가 홀로 외롭게 자신을 놓아버렸을 때 얼마나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웠을까.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스틸컷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라는 영화가 있다. 주인공 베로니카는 예쁘고 젊다. 그러나 무미건조한 삶을 중단하기로 한 베로니카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다. 정신병원에서 깨어난 그녀는 과도한 약복용으로 심장이 망가져 일주일밖에 살지 못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게 된다. 그녀는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죽음과 생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우울증약을 십오년 넘게 먹고 있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우울할 때 종종 전화를 걸어 한시간 어땔 때는 두시간도 넘게 신세한탄 혹은 자신의 감정을 쏟아놓는다. 그 친구는 통화가 끝날 때쯤 내게 말한다. '너랑 통화하지 않았음 자살했을 지도 몰라'라고. 하지만 나는 안다. 친구도 사실은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살고 싶다는 걸. 다만 위안이 필요하고 희망이 필요하고 자신의 감정을 알아달라고 주위에 울부짖고 있다는 걸.
강의를 하다보면 쉬는 시간 내내 주위를 맴돌며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학생들이 있다. 자기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자기가 생각한 아이디어에 대해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부모님얘기를 꺼내는 경우도 있다. 그럴때 느낀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인정해주고 따듯한 시선으로 바라봐줄 누군가가 필요하구나. 돌이 지난지 얼마 안 된 딸아이도 어떤 행동을 하고 엄마와 아빠,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번갈아 바라본다. 박수를 쳐주면 수줍어하며 따라서 박수를 친다. 누군가에게 사랑받아야하는 건 본능이다. 사람은 사랑과 희망, 애정으로 살아간다고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