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내게 있어 참 특별한 녀석이다.
그러니까 이 녀석을 본격적으로 사랑하게 된 때로 돌아가보자.
그 때는 심리적으로 몰려 있었다.
기세좋게 선택한 일 년간의 어학연수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않아 한국에 있던 남자친구에게 뻥~차였다.(생각할시간을 가져보자는 상투적인 변명은 지금 돌이켜봐도 화가 난다)
게다가 엄마나 아빠나 친구같은 친숙함과 떨어져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낯선 곳에 있었으니 향수병과 외로움은 극에 달했다.
학교수업이 끝나면 늘 근처의 DVD가게에 갔다. 한국남자배우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친절하게 이것 저것 추천해주셨다. 일 년동안 그 가게에서 300장이 넘는 DVD를 샀다. (하하...복제의 천국 중국이라 가능했다. 엄청 쌌으니까)
뻥을 조금 섞어서 매일 저녁 영화를 봤던 것 같다.
쉬는 날에는 하루 네 편 이상 보는 날도 있었다.
신기하게도 영화를 몰입해서 보다보면 잡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영화 속의 감정만 남았다.
그렇게 외로움도 나를 차버린 남자친구도 잊을 수 있었다. 대신 영화라는 녀석이 마음 깊숙이 차고 들어왔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다시 남은 학기를 다니며 학점과 취업과 싸우느라 영화는 저만치 잊혀져갔다. 나도 날 차버린 남자친구처럼 영화에게 거리를 두고 시간을 갖자고 했다.
그렇게 정신없이 20대의 한복판을 달렸고 뒤돌아보지 않았다. 이따금 썸남을 만나거나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가기도 했지만 녀석을 대하는 태도는 식어빠진 스프처럼 온기가 없었다. 녀석이 첫사랑의 상대처럼 희미해져갈때쯤이었다.
나와 맞지 않은 업무에는 신물이 났고 그럴수록 글에 대한 갈증으로 목이 탔다. 그러나 글을 쓰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고 난 글을 쓰기 위한 공부를 위해 다시 영화에게로 돌아갔다.
이번에도 닥치는대로 영화를 봤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리뷰를 쓰기 시작했단거다.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무슨 대사가 멋있었고 등등.
그렇게 리뷰를 쓰다 스타에디터에 발탁이 되고 영화 덕에 비공개 시사회초대를 받기도 했다.
영화라는 녀석 때문에
희미해져가던 글에 대한 열정이 살아났고
글을 쓰는 재미도 알게 됐다.
영화는 내 인생에서 고향의 맛 다시다같이 고향의 그리움을 달래주던 존재기도 하고, 잃어버린 열정을 되살아나게 하는 낡은 타자기같은 존재이기도 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랑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