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부르주-리모주-샤를라-로카마두르
미리 예약한 부르주(Bourges) 이비스 버짓(Ibis budget) 호텔로 찾아갔다. 이비스는 저렴한 가격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어서 여행 중 자주 이용했다. 대부분 도시 외곽에 위치하고, 가구나 침구 등 내부 집기를 전부 표준화하고 대량구매해서 비용을 절감하기 때문에 가격이 싼 편이다. 일반적으로 더블 침대에 벙커 침대가 붙어있는 3인 구조가 기본인데, 아이를 동반한 부부를 메인 타겟으로 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비스 호텔 체인 안에도 급이 나뉘는데 가장 일반적인 이비스 외에 가격이 더욱 저렴한 이비스 버짓(Ibis budget), 모던하고 스타일리쉬한 이비스 스타일즈(Ibis styles) 등이 있다. 아쉬운 점이라면 이비스 체인이 프랑스나 이태리에는 많았는데 정작 물가가 비싼 스위스나 북유럽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부르주에서 하루를 잔 후 샤를라(Sarlat)를 향해 이동하던 중 ‘리모주’라는 지명이 씌여진 표지판을 봤다.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는데 몇 일 전 은령씨가 사준 고기가 리모주 산이라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들러보았는데, 조용하고 한적한 것이 왠지 오랫동안 쉬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곳이다.
리모주라는 이름을 듣다 보니 왠지 리무진이라는 단어와 연관이 있을 거 같았다. 은령씨도 리모주산 소고기가 고급이라고 얘기했으니 리모주(Limoges)의 형용사형인 리무진(Limousine)이 ‘고급스러운’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어서 고급차인 리무진으로 연결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리무진은 예전 리모주 사람들이 자동차 모양의 모자를 쓰고 다닌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과 리모주에서 만든 고급 마차로부터라는 설이 있다고 한다. 어쨋든 리모주에서 유래한 것은 맞으니 나의 가설이 반쯤은 맞은 셈이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한참을 더 운전해서 샤를라에 도착했다. 발음할 때마다 왠지 샹송의 후렴구를 부르는 듯한 경쾌한 느낌을 주는 샤를라는 푸라그라와 거위 요리로 유명한 중세 도시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푸아그라를 파는 상점들이 널려있고 중심 광장에도 거위 동상이 있을 정도이다.
샤를라는 영국과 프랑스간에 벌어진 100년 전쟁의 치열한 전쟁터이기도 하고 중요한 병참기지이기도 했는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사람들이 떠나는 바람에 폐허처럼 방치되었다고 한다. 현재의 활기찬 도시 모습은 문화장관이던 앙드레 말로가 문화재 복원 사업의 시범 도시로 지정해서 복구한 결과라고 한다.
샤를라의 중세 거리에서 특이한 점은 건물에 쓰인 돌들이 대부분 노란 빛을 띠고 있어서 거리 전체가 노란색 천지라는 것이었다.
거리를 이리 저리 걷다 보니 다양한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스프레이 래커로 그림을 즉석에서 그려서 파는 화가도 있었고 이상한 막대기 같은 걸로 저글링을 하는 청년도 있었다.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절벽에 매달린 중세도시 로카마두르를 향해 출발했다. 산길을 한참을 달려 도착했는데 절벽에 붙어있는 비좁은 곳이라 차는 아래쪽 공터에 주차하고 서울대공원에서 본 것 같은 코끼리 열차를 타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주차비는 안받았지만 코끼리 열차 요금을 받으니까 어차피 그게 그거였다.
중세 거리를 둘러 보고 절벽에 붙어있는 성당으로 가서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한국말이 들린다.
“한국 분이세요?”
뒤돌아 보니 사제 복장을 한 한국분이 서 계셨다. 반가워서 얘기를 나누어보니 한국에서 이곳으로 파견되어 와 계시는 신부님이신데 한국 사람들이 오면 가끔 설명도 해 주시기도 한단다.
알고 보니 이곳이 유명한 성모 성지라고 하는데, 로카마두르라는 이름도 바위라는 뜻의 Roc과 아마두(Amadour) 성자의 이름을 딴 것이라고 한다. 아마두 성자가 이곳 절벽에 성당을 짓고 성지에서 가져온 검은 돌로 만든 성모상을 모심으로써 성지로 여겨진다고 한다.
검은 성모상을 보려는 순례객들로 항상 붐빈다고 하는데, 그러고 보니 기념품 가게에 십자가나 성모상 같은 성물이 많았던 것이 떠올랐다. 이곳에 오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성지순례를 하는 교인들이고 일반 관광객은 많지 않다고 한다.
신부님께서 로카마두르에 관한 많은 얘기를 해 주셔서 너무 반갑고 고마웠는데, 얘기하다 보니 신부님의 고향이 나와 같은 강원도인 원주라고 하신다. 연배도 나와 비슷할 거 같고 왠지 낯이 익은 거 같기도 해서 좀더 얘기하면 서로 아는 사람이 나올 것도 같은데 미사 시간이 다되어서 아쉽게도 신부님과는 작별을 해야 했다.
로카마두르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다가 우연히 경건한 분위기로 미사가 진행되고 있는 성당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아까 만났던 신부님도 함께 참여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생각지 않게 감동을 느낀 시간이었지만 경건한 미사를 방해한 듯 해서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