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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27. 2018

아비뇽의 뜨거운 에너지

2.9. 아비뇽

세계 3대 공연예술 축제의 하나라는 아비뇽 페스티벌은 매년 7월부터 3주간 펼쳐지는데 조그마한 시골마을 같은 아비뇽이 축제기간 동안에는 인구의 몇 배나 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서 아비뇽뿐만 아니라 주변의 님이나 아를도 숙소를 구하기 힘들 정도라고 한다. 


공연 프로그램은 공식 작품들을 공연하는 ‘In festival’과 프로와 아마추어 구분 없이 아무데서나 공연하는 길거리 공연인 ‘Off festival’로 구분되는데 오늘날 아비뇽 페스티벌을 세계적 규모로 확장시킨 것은 바로 이 길거리공연이라고 한다. 


지금도 아비뇽을 둘러싸서 지키고 있는 견고한 성곽


아비뇽에 도착하자 역시나 주차할 곳을 찾기 힘들다. 아비뇽은 성곽이 둘러싸고 있는 도시인데 성 안쪽뿐 아니라 바깥도 차들로 가득 차 있어서 주차할 곳을 찾아 한참을 돌아다녀야 했다. 그러다 한 노천 주차장을 지나는데 차 한대가 빠지더니 차에 탄 사람이 그 쪽에 주차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거기가 주차가 쉽지 않은 위치라 잠시 망설이고 있으니 누군가 차에서 나와 수신호를 하면서 주차를 도와줄 태세다. 문제는 그 사람이 ‘분노의 질주’에 나오는 반 디젤 같이 생겼고, 차 안의 일행들도 반 디젤 패거리답게 당장이라도 총 들고 뛰쳐나올 것 같은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적으로 판단이 잘 안되었지만 내 안의 누군가 ‘도망쳐!’라고 외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사양하고 얼른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다. 단지 인상이 험악할 뿐인 착한 프랑스인들의 호의를 무시한 것 같아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런 식으로 주차를 도와주고 돈을 요구하거나 심한 경우 강도로 돌변한다는 얘기를 들어서 조심하는게 나을 것 같았다.


엄청난 기타 실력을 보여준 거리공연 연주자


에디뜨비아프를 연상케하는 가냘픈 몸집의 여가수


겨우 차를 세우고 페스티벌 장소로 이동하자 거리 곳곳이 거리공연을 하는 예술가들과 구경하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식 페스티벌은 표를 사서 극장에 가서 봐야 하지만 거리에서도 자유롭게 퍼포먼스가 이루어지고 그것만 해도 볼거리가 엄청나게 많았다. 각양 각색의 특이한 복장을 하고 퍼포먼스를 펼치는 사람들도 있고 비보이 공연에 각종 악기 연주까지 여러 형태의 예술 공연이 거리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잡동사니를 모아 두드리는 타악기 연주자. 보상으로 돈이나 음식, 혹은 다른 무언가를 원하고 있다


수준 높은 공연도 있었고 개중에는 우리 옛날 장터에서 약장사들이 하던 차력 쇼 같은 걸 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은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들 재미있게 즐기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는 한국에서 온 ‘비나리’라는 팀도 있었는데 상모돌리기를 하면서 거리를 쓸고 지나가는 모습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비나리’ 라는 한국 공연팀도 와 있었다. 거리에서 상모를 돌리며 홍보 중이다


흥겨운 분위기로 거리 분위기에 녹아 들고 있는 공연자들 틈에 일본에서 온 여자들 만으로 이루어진 팀이 있었는데, 더운 날씨에 시커먼 옷으로 온몸을 둘러싸고 심각한 분위기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를 기괴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다. 너무 더워 보여서 안쓰럽기도 하고 뭔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가끔 거리공연이 펼쳐지는 한 가운데로 차가 지나갈 때도 있었는데 공연자들과 관람객들의 따가운 눈총과 야유로 땀을 뻘뻘 흘리며 겨우 지나가곤 했다.


일본에서 온듯한 팀의 뭔지모를 기괴한 퍼포먼스


거리공원이 펼쳐지는 도로를 야유와 눈총을 받으며 통과하는 차량


저렇게 분장하고 동상인양 서있는 팀들은 무수히 많다


나름 퍼포먼스를 펼치려는데 옆에서 알짱대는 아이 때문에 신경쓰이는듯한 공연자


한쪽에서는 뭔지 모를 이유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연극 공연팀이 홍보를 위해 퍼포먼스를 벌이는 듯 하다


페스티벌의 역동적인 에너지를 뒤로하고 언덕 위에 있는 아비뇽 교황청으로 올라가 보았다. 이곳은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서 배웠던 ‘아비뇽 유수’의 배경이 된 곳으로, 14세기에 당시 강대국이던 프랑스 왕의 입김으로 교황청이 로마에 있지 못하고 아비뇽에서 약 70년간 머물게 됨으로써 왕권이 교황권 위에 있게 되는 결정적 사건이 벌어진 곳이다. 


나중에는 교황이 로마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아비뇽에서도 교황을 선출해서 교황이 두 명이 되고 나중엔 서너명이 되는 등 막장 종교극이 펼쳐지기도 했는데 그런 역사적 배경 때문인지 이곳 교황청은 로마 교황청과는 다르게 마치 튼튼한 성채처럼 지어져 있다. 어찌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 프랑스 혁명의 와중에 혁명 세력이 구 체제의 상징이라고 교황청 건물을 철거하려 했지만 너무 튼튼해서 실패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요새나 성채같은 느낌의 아비뇽 교황청


교황청 옆 언덕 위는 공원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많은 시민들이 쉬고 있는 편안한 공간이었다. 경비병들의 경계가 삼엄한 바티칸과는 달리 이곳은 아무나 편안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공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사방이 탁 트인 전망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어서 가만히 있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듯한 기분좋은 장소였다. 


공원에서 내려다보이는 교황청 앞을 흐르는 론강에는 교황청과 이어지는 베네제다리가 있는데 특이하게도 다리가 중간에 끊겨 있다. 17세기에 홍수로 다리가 끊긴 것을 복구하지 않고 둔 것이라고 하는데, 끊긴 다리가 수많은 예술가들의 마음 속 무엇인가를 자극해서 이 다리를 소재로 한 수많은 예술 작품들이 남아있다고 한다.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짓다 만 다리로 보이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다리를 교황청보다 더 좋아한다고 한다.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아비뇽 다리 위에서’라는 민요의 배경이라고도 하니 우리로 치면 국민가수 조영남의 ‘화개장터’쯤 되는 곳인가 보다.  


교황청에서 내려다본 베네제 다리


한참 동안 바람을 맞으며 쉬다가 다음 목적지인 아를로 이동하기로 했다.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아를로 이동하기에 앞서서 숙소 예약을 시도했지만 역시 아비뇽 페스티벌의 영향인지 아무데서도 숙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일단 가서 어떻게든 해 보기로 하고 좀 이른 시간에 아를을 향해 출발했다. 프로방스의 편안한 날씨 때문인지 몇일새 마음에도 좀 여유가 생긴 것 같다.


더운 날씨에 공연을 보다 지친듯한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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