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님-퐁뒤가르
유럽사람들도 가장 살고 싶어하는 지역 중 하나인 프로방스는 지중해성 기후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온화하고, 여름에는 덥지만 건조한 바람이 불어서 쾌적한 날씨로 유명한 곳이다. 그 중에서도 님과 아를은 고흐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먼저 님(Nimes)으로 가기로 했다.
프로방스답게 점점 더 날씨가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는 캠핑을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트에 들러 고기와 야채 등 음식도 준비하고 캠핑장에 전화를 해서 예약했다.
구글맵으로 주소를 찍고 캠핑장을 찾아 가다 중간에 엄청난 교통 정체를 만났다. 한국 기준으로는 평범한 퇴근 시간대 올림픽대로 풍경 정도겠지만 유럽의 대도시가 아니면 드문 광경이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시간이었는데 구글맵으로 찾아간 곳엔 있어야 할 캠핑장이 없다. 아무래도 구글맵에 등록된 주소가 잘못된 거 같아서 캠핑장으로 다시 전화해서 정확한 주소를 물었다. 전화 받는 사람이 영어를 못해서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된다. 자꾸 전화해서 물어보니까 당황스러운지 안 들리는 척 하다가 그냥 끊어버린다. 순간적으로 화나서 받을 때까지 전화해서 큰소리로 막 따지니까 쩔쩔매며 미안하다고만 얘기한다.
어쩔 수 없이 주변의 호텔이나 다른 캠핑장으로 전화를 해봐도 전부 예약이 완료됐다는 얘기만 한다. 아비뇽 페스티벌 때문에 부근 지역에 숙소를 구하기 어렵다고 하더니 사실이었다.
그 사이 점점 시간은 늦어져 가고 주위가 어둑어둑해져서 잘못하면 길 위에서 자야 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와이프는 정 안되면 차에서 자면 되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안 그래도 이 지역에서의 이런저런 흉악한 소문을 들었던 터라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참을 허둥대다 겨우 좀 떨어진 캠핑장을 찾아서 전화로 확인하고 이동할 수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캠핑장은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별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유명한 캠핑장도 아니지만, 조용하고 한적해서 몇 일 쉬고 가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각의 캠핑 사이트가 크고 작은 나무들로 구획되어 있어서 프라이버시도 지켜지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무엇보다도 캠핑장 곳곳에 고흐의 그림에서 많이 봤던 하늘을 향해 뾰족하게 뻗은 나무들이 많아서 좋았다. 나중에 찾아보니 상수리 나무라고 하는데 우리는 고흐나무라고 부르기로 했다. 마치 고흐의 그림 안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랄까?
한국에서 캠핑 경험이 많지 않아서 내심 걱정을 했지만 유럽에서의 첫 캠핑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늦게 도착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느라 힘들었던 거만 빼면 상쾌하게 잘 잤다.
확실히 우리 나라와는 다르게 여름인데도 습하지 않은 지중해성 기후는 캠핑에 있어서도 최적의 조건인 것 같다. 우리나라의 캠핑문화가 많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기후의 영향도 큰 몫을 하는 것 같다. 겨울은 너무 춥고 여름은 너무 습해서 일년 중에 캠핑하기 좋은 날들이 얼마 안되니까.
상쾌한 아침을 맞은 후 님 중심가로 가 보았다. 님과 아를은 로마시대 유적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데 특히 거의 원형 가까이 보존된 아레나 즉, 원형경기장으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아레나는 로마의 콜롯세움이겠지만 거긴 그냥 구경만 하는 곳이고 이곳의 아레나들은 보존이 잘 되어서 지금도 음악이나 연극 등을 위한 공연장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아레나를 향해서 가는 길에 펼쳐진 경치들은 고흐의 그림에서 보았던 그 벌판의 모습니다. 예의 고흐나무들이 줄지어 있고 고흐의 그림에 나오는 까마귀떼까지 여기 저기 날아다니는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아레나에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바라보는 풍경이 여유롭다. 여행 내내 유명한 유적지나 건축물에 가면 들어가서 보기에 앞서서 이렇게 주변 카페에서 여유 있게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레나 내부로 들어가보니 올라가는 계단이 가팔라서 헉헉대며 겨우 올라갔다. 공연이 예정되어 있는지 무대 장치와 음향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럽에 남아있는 아레나들 중 많은 수가 이렇게 지금도 공연 용도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행선지는 로마시대 수도교가 남아있는 퐁뒤가르(Pont du Gard)이다. 가르에 있는 다리라는 의미이다. 로마인들은 도시까지 상수도를 만든 최초의 사람들이다. 물은 급수원으로부터 중력으로 도시까지 운반되기 때문에 조금씩 경사가 지고 연속된 수로가 필요했는데, 때로는 50마일이 넘는 경우도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수로가 강을 만나면 수도교를 통해 건너게 되는데 보통 중첩된 아치 구조로 여러 군데에 인상적인 구조물들을 만들어냈다.
퐁뒤가르는 높이가 50미터에 달하는 등 현존하는 로마 수도교 중 가장 크고 보존이 잘 된 곳 중의 하나이다. 우리나라는 철골로 지은 다리도 몇 십 년 안 가서 붕괴하는데 돌로 만든 몇 천 년 된 다리가 멀쩡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3층 구조의 수도교는 맨 위층은 물이 흐르고 맨 아래 층은 인도교로 사용되었는데 인도교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 다녀도 될 정도로 멀쩡하다. 퐁뒤가르는 수도교도 아름답지만 그 수도교가 놓인 강 또한 옥색 빛을 띤 아름다운 모습이다.
강에서 카약을 타거나 강가에서 햇볕을 쪼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의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시간에 쫓겨 다니는 우리 처지가 좀 아쉬운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