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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Sep 27. 2018

콘스탄츠 호수의 주정뱅이

2.31. 콘스탄츠 호수-샤프하우젠-루체른

콘스탄츠 호수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에 모두 면해있는 큰 호수인데 맑은 물로 유명한 휴양지이다. 독일에서는 보덴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예전에 가끔 갔던 카페이름이 보덴제였던 기억이 있다. 


오랜 만에 캠핑을 하기로 하고 구글맵으로 콘스탄츠 호숫가에 위치한 캠핑장 한군데를 찾아서 전화로 자리가 있는 것을 확인한 후 출발했다. 


구글맵을 따라 캠핑장으로 향하다 보니 오스트리아, 독일, 스위스 국경을 수시로 넘나들어야 했는데, 스위스가 EU 회원국이 아니어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출입국 검사로 시간이 지체되었다. 하도 국경을 넘어다녀서 내가 지금 어느 나라를 달리고 있는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콘스탄츠 호수의 소년


이래저래 지체 되어서 캠핑장에 도착했을 때는 약속한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저녁시간이었다. 이미 리셉션 문은 닫힌 뒤였기 때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캠핑장 안에 있는 식당으로 들어가서 물어보니 잠시 기다리면 담당자를 불러주겠다고 한다. 


얼마 뒤에 담당자인듯한 작달막한 독일 아저씨가 왔는데 술에 취한 상태이다. 늦게 와서 미안하다고 얘기하니까 자기가 자리에 없어서 미안하다고 호탕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하더니 캠핑할 자리를 직접 안내해주고 엄청 친한 척 한다. 


알고 보니 이 아저씨가 캠핑장 주인이었는데, 다음날 술이 깨고 나서는 우리를 봐도 정색하고 무뚝뚝한 표정이다. 술이 너무 취해서 기억을 못하는 것인지 원래 무뚝뚝한 성격인데 술만 먹으면 돌변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호숫가에서 여유롭게 석양을 즐기는 사람들


이 캠핑장은 호숫가에 위치해 있어서 카약 같은 여러 종류의 물놀이 기구도 많고 경치도 좋았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캠핑장보다 젊은 사람들이 많았는데, 특히 고등학생 또래로 보이는 아이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모습이 예전에 떼지어 놀러 다녔던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은 콘스탄츠 호수와 면해있어서 카약이나 보트가 많다


여기도 아시아 사람은 우리 밖에 없어서 그런지 신기한 듯 쳐다보는 사람들의 눈길을 다른 어느 곳보다도 많이 받았다. 다른 캠핑장과 달리 현대적인 카페테리아 시설을 갖추고 있어서 식사를 할 수도 있고 독일 캠핑장답게 맥주를 한잔 할 수도 있었다. 와이프와 함께 석양이 물든 호수를 바라보면서 마시는 맥주가 특히나 맛있었다.


아쉬운 점은 호숫가라서 그런지 비가 와서 그런지 습기가 많아서 잠을 잘 못 잤다는 것이다. 오랜만에 하는 캠핑인데 역시나 우리 체질에는 맞지 않는가 싶기도 하고 우리와는 인연이 닿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와이프도 습기 때문인지 몸 컨디션이 안 좋다고 해서 앞으로는 어지간하면 실내에서 자기로 했다.


샤프하우젠 전경


콘스탄츠 호수를 떠나 라인폭포로 유명한 스위스의 샤프하우젠으로 이동했는데 샤프하우젠에서 길을 찾다가 와이프랑 크게 다투고 말았다. 


오래된 구시가지라 길이 복잡한데다 네비에 문제가 있어서 와이프가 보면서 안내를 했는데 자꾸 한 박자가 늦길래 뭐라고 한마디 했다가 오랜만에 와이프의 불 같은 성질을 체험할 수 있었다. 일부러 늦게 알려 주는 것도 아닌데 운전을 천천히 하면 되지 내가 너무 급하다는 것이다. 


샤프하우젠의 성 내부. 어떤 여자가 오페라의 아리아를 불렀는데 울림이 환상적이다


와이프가 화가 단단히 나서 혼자 샤프하우젠 시내를 돌아본다며 가버렸는데, 걱정이 되어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쫓아 다니기로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잠시 한눈을 판 사이 와이프가 없어져 버려서 급하게 찾아보았지만 어디로 갔는지 알수가 없다.


샤프하우젠 거리의 음수대


어쩔 수 없이 먼저 차로 돌아와서 기다렸는데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와이프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와중에 와이프가 차로 돌아왔다. 다시는 이런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다짐을 속으로 하고 라인 폭포로 향했다.


유명한 라인강의 기적의 바로 그 라인강


라인 폭포는 수량으로는 유럽 최대의 폭포라고 하는데 별로 들어본 적이 없어서 큰 기대 없이 갔다가 폭포의 위용에 깜짝 놀랐다. 무엇보다도 폭포 옆 바위 속에 굴을 파서 바로 옆에서 떨어지는 물을 볼 수 있게 만들었는데 폭포의 엄청난 수량과 소리에 압도되는 느낌이다. 


라인강 하면 떠오르는 말이 라인강의 기적인지라 왠지 공장지대를 거쳐올 것 같아서 별로 깨끗한 이미지는 없었는데, 푸른 물빛이 너무도 깨끗하고 시원한 것 또한 의외였다. 폭포 바로 옆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붙어있었는데 경치는 좋을지 몰라도 폭포의 굉음 때문에 밤에 잠이나 잘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엄청난 수량으로 압도적인 느낌의 라인 폭포


바위를 뚫어서 폭포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는 전망대


라인폭포를 보고 나서 취리히로 이동했는데 와이프가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오래 머물지 못하고 루체른으로 이동해서 쉬기로 했다. 


스위스는 물가가 워낙 비싸서 호텔에서 자려면 아무리 싼 곳도 하루 숙박비가 20만원은 넘기 때문에 루체른에서는 캠핑장에서 묵기로 했었는데, 이곳도 호수 근처고 비 오는 축축한 날씨이기도 해서 캠핑장 내에 있는 방갈로에서 자기로 했다. 


워낙 비싼 물가를 감안하면 방갈로는 저렴한 편이었는데 그런 만큼 시설이라고는 딱 침대만 있는 방이었다. 그래도 이런 칙칙한 날씨에 젖은 잔디밭에서 캠핑하는 것 보다는 몇 십 배로 훨씬 안락하고 쾌적한 선택이었다. 


샤프하우젠의 오래된 거리


밤에 멀지 않은 곳에서 엄청난 폭죽소리가 들리길래 알아보니 그날이 스위스 국경일이라고 한다. 폭죽 구경도 할 겸 와이프와 호숫가를 산책했는데 인적이 드문 곳이라 살짝 걱정되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운 시간이었다.


루체른은 루체른 호수를 둘러싸고 형성된 그리 크지 않은 도시인데 여러 가지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풍광에 맑은 공기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스위스의 다른 도시와는 다르게 파리와 런던처럼 다양한 인종이 어우러져 살고 있는 글로벌 도시의 느낌이 있었다. 특히 인도계로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는데,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었다.   


루체른 호숫가의 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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