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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30. 2018

노르망디 바다를 향해

2.3. 도빌-몽생미셸

아침에 일어나니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진 듯 했지만 일정을 늦출 순 없었기 때문에 예정대로 짐을 챙겨서 떠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출발하기에 앞서서 장을 봐야 했기 때문에 까르푸와 데카트론으로 찾아갔다. 데카트론은 아웃도어 상품만 전문적으로 파는 대형 마트인데 그 규모가 꽤나 크다. 한국에도 이런 류의 아웃도어 전문마트가 머지않아 생기지 않을까 한다.  


헬스/아웃도어 전문인 데카트론 전경


데카트론에 가는 주 목적은 캠핑용 가스를 사는 것이었다. 가스는 비행기에 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무조건 현지에서 구입해야 하는데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쓰는 원터치 방식의 가스는 한국의 스크류 방식과 호환되지 않는다. 데카트론에서는 스크류 방식의 가스를 판다고 하는데 매장마다 달라서 확실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데카트론에 가 보니 역시 원터치 방식의 가스가 대부분인데 구석에 한국식인 것처럼 보이는 제품이 있었다. 아무래도 확실치 않아서 종업원을 불러서 물어봤더니 거의 의사소통이 안된다. 영어를 한다고 데려온 직원에게 손짓발짓 해가며 물으니 더듬거리며 하는 말이 이 가스는 원터치식이고 스크류 방식을 구하려면 멀리 떨어진 다른 지점을 가야 한단다.


아무리 봐도 한국에서 썼던 것과 같아 보이고 심지어 자세히 살펴보니 Made in Korea라고 적혀있기까지 해서 그냥 내 감을 따르기로 했다. 가스값이 워낙 비싸서 일단 두개만 샀는데  나중에 결합해보니 가져온 버너에 딱 맞았다. 프랑스 여행 중 이 타입의 가스를 거의 찾기 힘들었기 때문에 직원의 말을 믿었다가는 상당히 곤란한 상황에 처할 뻔 했다.  


이런저런 준비물을 챙긴 후 파리를 떠나 북쪽 해변을 향해 출발했다. 애초에 정한 여행 루트는 해변을 따라 유럽을 한바퀴 도는 것이었다. 바닷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어서 나름 괜찮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실행에 옮기고 보니 몇시간만에 실현 불가능한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구불구불하고 좁고 막히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뿐더러 정신건강에도 해로울 것 같아서다. 


아무튼 파리에서 가까운 해변을 찾다가 도빌로 가기로 결정했다. 전날 은령씨가 식사 중에 추천하기도 했거니와 어릴 적 본 프랑스 영화 ‘남과여’의 배경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요즘 관점으로는 좀 심심한 중년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어쩌면 영화보다 더 유명한 주제음악과 도빌 해변의 인상적인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도빌에서 열리는 아시아영화제에서 2001년 박찬욱 감독이 ‘JSA’로 수상해서 친숙한 곳이기도 하다.  


도빌을 포함한 북쪽 해안은 노르망디라는 지역명으로 더 유명하다. 2차대전의 전세를 뒤바꾼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무대이기도 하고, 파트리샤 카스 ‘호텔 노르망디’의 배경이기도 하다. 노르망디는 북방의 노르만족이 정착해서 세운 노르망디 공국에서 유래한 명칭이고, 백년전쟁 당시 영국군대의 주둔지로 역사적 갈등과 대립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도빌로 가는 길가. 더없이 화창한 날씨다.


프랑스 도로가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역시나 도로가 너무나 부드러워 운전하기도 편하고 피로도 훨씬 덜한 느낌이다. 파리 같은 대도시를 벗어나면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우리 나라와는 달리 여유 있게 서로 배려해가며 운전을 해서 그런지 운전의 스트레스가 훨씬 덜한 거 같다. 


다른 유럽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는 고속도로라고 하더라도 편도 2차선이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럼에도 막히는 경우는 보기가 힘들었는데 기본적으로 교통량에 비해서 도로가 많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도 추월선을 잘 지키는 운전 습관에 그 원인이 있지 않나 싶다. 모든 차들이 2차로 주행이 원칙이고 1차로는 추월할 때만 진입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모든 차로가 꽉 막히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도빌로 가면서 처음 본 프랑스의 시골 풍경은 아름다웠다. 때마침 화창하게 변한 날씨에 산이 없이 드넓게 펼쳐진 평원 때문에 우리 나라에서 보는 것 보다 하늘이 훨씬 넓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전부 논이었을 거 같은 벌판이 풀들로 가득하고 소떼들이 여유롭게 풀 뜯는 모습을 보니 모든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갈매기들이 날라 다니고 짠 바다 냄새가 나는 것을 보니 도빌에 다 온 듯싶다. 어릴 적 살았던 강릉의 항구나 어시장에서 나는 그런 냄새다. 


오는 내내 화창했던 날씨가 도빌에 도착하자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일단 차를 세운 후 비가 그칠 때까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근처에 있는 예쁘게 생긴 여경에게 괜찮은 해산물 식당이 어디 있는지 물었는데, 역시나 프랑스답게 거의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래도 관광경찰이어서 그런지 열심히 손짓발짓을 해가며 알려주려고 노력한 덕분에 대략의 위치를 알 수 있었다. 


‘남과여’에서 봤던 데크 바닥의 도빌 해변


알려준 식당을 찾아서 노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문을 했다. 전날 주문을 잘못해서 그로테스크한 육회를 먹어야 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신중하게 고르다가 해산물 플래터를 시켰다. 값은 좀 비쌌지만 맛있는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였는데, 한참을 기다려서 나온 음식은 예상 밖의 비주얼이었다. 커다란 쟁반에 여러 해산물이 산처럼 쌓여서 단연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다 무엇보다 양이 너무 많았다. 


안그래도 몸 컨디션도 안 좋아서 힘들게 먹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노천 테이블에서 쏟아지는 폭우를 보면서 차가운 해산물을 먹는 것은 어제 저녁의 리모주 고기와 다를 바 없는 힘든 식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겨우 식사를 마치고 보니 거의 10만원 정도가 나왔다. 이런 식으로 먹고 다니다가는 머지않아 거덜날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빌은 생각보다는 조그만 항구 도시였다.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영화에서의 이국적인 느낌은 별로 없었고 특이한 해변 데크도 안산 어디쯤에서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몽생미셸을 향해 출발했다. 


두어 시간이 지나니 멀리서 조그맣게 사진에서 봤던 그 몽생미셸이 보인다. 이미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일단은 근처에서 숙소를 잡기로 했는데 몽생미셸 부근은 허허 벌판이라 방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괜찮아 보이는 캠핑장이 있어서 가봤더니 리셉션 마감시간이 지나서 자리를 구할 수 없다고 한다. 마감을 겨우 15분 넘긴 시간이고 아직 리셉션 직원들도 있어서 사정해봤지만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한다. 역시 합리적이지만 매정하다. 


몽생미셸 전경. 오른쪽에 새로 건설중인 브리지 형태의 연결도로가 보인다


돌아다니다 보니 괜찮아 보이는 호텔이 있어서 들어가보니 카운터에 마음 좋게 생긴 아저씨가 맞아준다. 생각보다 저렴한 가격이어서 얼른 돈을 내고 배정된 2층 객실로 가 보니 시설이 별로다. 이미 늦은 시간인데다 몸도 안 좋아서 그냥 묵기로 하고 짐을 옮기려고 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여행 전부터 허리가 시원찮아서 조심하던 터라 무거운 30인치 짜리 캐리어를 계단으로 옮길 엄두가 안 나서 카운터에 있는 아저씨에게 좀 도와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Non” 이라고 깔끔하게 대답한다. 좀 전에 방 구할 때는 상냥하게 굴더니만 도와달라고 하니 갑자기 무표정한 얼굴로 싫다고 말하니까 좀 어이가 없었지만,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얘기하니까 별로 기분 나쁘지도 않다. 역시 공사 구분이 확실한 사람들이다.


안 그래도 최악인 몸 상태에 혼자서 낑낑대며 겨우 짐을 옮기고 나니 거의 탈진할 거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면 좀 나을 거 같아서 물을 틀었더니 뜨거운 물이 안 나온다. 겨우 미지근한 물로 샤워를 하고 나니 온몸이 쑤시는 거 같다.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나서 뭐라도 먹어야 했지만 준비할 엄두가 나지 않아서 전투식량을 먹기로 했다. 비상시에 먹으려고 준비한 것인데 여행 이틀만에 비상사태를 맞을지 몰랐다. 속도 안좋아서 그것도 두어 숟갈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먹기 힘들다.  


미지근한 물 밖에 안 나오는 줄 알았던 샤워기는 와이프가 뭔가를 만지니까 금방 뜨거운 물이 쏟아졌다. 내가 낑낑대며 해결 못하는 문제를 와이프는 가끔 너무도 간단히 해결해 버리곤 한다. 남녀의 뇌 구조가 달라서 그런 건지 내가 어딘가 모자란 건지 모르겠다. 아무튼 뜨거운 물로 다시 한번 오랫동안 샤워를 하고 이불을 여러 개 덮고 누워서 잠을 청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다 겨우 잠들 수 있었다. 


몽생미셸 내부는 중세시대 거리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몸이 한결 나아진 것 같다. 체크아웃을 하고 몽생미셸을 향해 출발했는데 어제 저녁과는 달리 멀리에 차를 세워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의 하나로 지정된 몽생미셸은 바다 가운데 섬처럼 솟은 환상적인 실루엣으로 유명하다. 중세 에는 천상의 예루살렘이 땅 위에 구현된 것이라고 여겨 주요 순례지가 되기도 했고, 백년전쟁 동안에는 요새로 사용되어 영국의 공격을 끝까지 막아내기도 했다. 근대 한 때 감옥으로 쓰이기도 했던 몽생미셸은 지금은 매년 엄청난 수의 전세계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프랑스의 대표적 관광지가 되었다. 


조수간만의 차 때문에 섬이 되기도 하고 육지가 되기도 하는데 육지와 몽생미셸을 연결하는 도로가 자연스러운 바닷물의 흐름을 막아서 여러 문제가 생기고 있기 때문에 현재는 물이 흐를 수 있는 브리지 구조의 도로를 기존 도로 옆에 새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몽생미셸 성곽을 따라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아름다운 외관으로 유명한 몽생미셸이지만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는 성 내부의 중세 거리를 걷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로 변해 지나치게 상업적인 느낌이지만 하지만 중세 거리 모습을 상상하면서 걷다 보니 힘든 줄 모르고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점심 때가 되어 오믈렛의 원조라는 유명한 맛집을 찾아갔지만 너무 줄이 길어서 그냥 샌드위치를 사서 바다가 보이는 성벽 위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먹기로 했다.



 아쉬운 점이라면 외벽 보수공사 중인지 비계와 안전망으로 감싼 부분이 많아서 제대로 된 모습을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된 것인데, 몽생미셸뿐 아니라 여행중 찾아간 유럽 곳곳에 유난히 공사하는 곳이 많았다. 특히 로마는 거의 도시 전체가 공사장 같은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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