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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태 Jul 30. 2018

해적 본거지 생말로

2.4. 생말로

몽생미셸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주차장을 향해 나오다가 재미있는 모양의 소 모양의 조각들이 길옆에 서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일부러 버스에서 내렸다. 예전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 싱가포르에서 재미있는 소 모양의 인형들을 몇 개 사 왔었는데 나중에 그 소들이 카우 퍼레이드(Cow Parade)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미있는 모양의 카우퍼레이드 소들이 전시되어 있다.


카우 퍼레이드는 1998년에 취리히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인간에게 널리 사랑 받는 동물인 소를 주제로 전세계 각 도시에서 예술가들이 나름대로 개성 있는 작품을 만들어 전시하는 공공 미술 프로젝트이다. 엘비스 프레슬리 모양의 소, 각종 그릇들을 얹고 있는 소, 피카소 그림 같은 소 등 재미있는 소들이 많은데 실제 크기의 소 모형을 도심 한가운데에서 전시하기도 하고 조그맣게 만들어 팔기도 한다. 


몽생미셸에 있는 소들 중에는 우리가 싱가포르에서 사온 폴스미스 패턴 소와 비슷한 놈이 있어서 더욱 반가웠다.


폴스미스 패턴 느낌의 소. 집에도 비슷한 조그만 놈이 있다


반가운 마음을 뒤로 하고 다음 목적지인 생말로를 향해 출발했다. 전날은 날씨도 우중충하고 몸 컨디션도 최악이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맑고 컨디션도 회복되어서 상쾌한 기분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 내내 날씨가 여행지의 느낌을 크게 좌우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무리 유명한 곳도 날씨가 우중충하면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예전에 배낭여행 왔을 때 가장 좋았던 곳 중 하나가 베네치아였었는데 이번에는 우울한 날씨 때문에 별 느낌을 받지 못한 것도 그때문인 듯 싶다.


길가 들판에서 뛰노는 말과의 만남


생말로로 가는 길에 수확한 건초 줄기를 둘둘 말아놓은 모습이 재미있어서 잠시 멈췄다. 아마 밀밭인 것 같은데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는 잘라낸 밀 줄기들을 흰색 비닐에 원기둥 모양으로 싸서 들판에 두는 것을 볼 수 있다. 


프랑스나 이태리 일부에서는 이렇게 그냥 둘둘 말아 놓기도 하는데 비가 많이 오지 않아서 썩을 염려가 없거나 오래 보관하지 않는 건초여서 그럴 것 같다. 아무튼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이었다. 


들판의 건초가 말려있는 풍경


생말로는 크로아티아의 두브로브니크처럼 바다에 면해있는 성곽 도시인데 도시를 감싸는 성곽이 아직도 완전한 형태로 남아있다. 예전에 해적들의 본거지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거리 곳곳에 해적을 모티브로 하는 다양한 기념품들을 파는 곳이 많았다. 


몽생미셸에 비해 우리에게는 그렇게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곳이지만 성 내부의 중세 거리는 훨씬 활기차고 즐거운 느낌을 준다. 파리의 지저분한 거리와 우울해 보이는 사람들과는 달리 생말로에서는 화창한 날씨 탓인지 거리 곳곳에 한가함과 여유로움이 넘치는 느낌이다.



중세 거리 가운데 광장에서는 여러 명의 남녀가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었는데 다들 와이셔츠에 정장을 입고 공연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직장인의 애환을 담고 있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성곽 바깥의 항구 쪽에는 많은 노인들이 앉아서 햇볕을 쪼이고 있고 해변 모래사장에도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다. 아마도 많은 은퇴자들이 이곳에 정착해서 지내고 있는 것 같다.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듯한 퍼포먼스


영국의 드레이크 제독이 해적질로 모은 재산을 영국 여왕에게 헌납하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궤멸시킨 공로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공인 받은 해적이었듯이 생말로의 해적들도 프랑스로부터 공인을 받고 자치 국가를 세워 독자적 세력을 펼친 공식적인 해적이었다고 한다. 


프랑스 정부로서는 해적을 소탕할 힘도 부족하고, 설사 해적을 몰아낸다고 해도 영국과 맞닿아 있는 이곳을 지켜낼 힘도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고 적당한 선에서 관리하는 전략을 편 것이다. 아마도 역사적으로 이 지역은 노르망디공국의 예로도 알 수 있듯이 프랑스와는 독립된 별개의 나라로 인식되었던 영향도 있는 것 같다. 



생말로는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점령지역이었기 때문에 미군의 폭격으로 성 안쪽의 80%가 파괴되는 바람에 지금의 생말로는 종전 이후에 재건된 모습이라고 한다. 


생말로 부근의 바다는 조수간만의 차가 7~8미터나 될 정도로 크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2차 대전 때 연합군의 상륙작전의 대상지로 유력하게 고려되었다고 한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크고 암초가 많아서 상륙 대상지로는 적절치 않다는 점이 오히려 독일군의 방심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이었다는데,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은 상륙작전을 실행에 옮기면 수많은 역사적 유물들을 파괴할 수 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쨌든 상륙작전과 상관없이 폭격으로 거의 대부분의 시가지가 파괴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크게 신빙성 있는 얘기는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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