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16일
신념이 필요없는 이유는 충분하다고 시인 허연은 적었다. 생각해보면 그의 말이 맞다. 세상이 변해야 한다고 말하던 사람들이 언제나 먼저 바뀌고는 했으니까. 세상은 '현실'이란 이름으로 그들에게 충분한 이유가 되어주었다.
대학에서 처음 마르크스의 자본을 읽었다. 하지만 함께 읽은 동료들도 강의하던 교수도 마르크스가 말하는 혁명을 믿지 않았다. 마르크스의 문예론과 철학에 기대어 수많은 논문들이 씌어질지언정 누구도 철학자가 말하는 삶을 살지 않았다. 이때 신념이란 삶의 인정 욕망보다 가벼운 것임을 알았다.
이후 특별한 삶의 신념을 버린지 오래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신념을 쉽게 비난하지도 않는다. 결국 자기 존재 조건 내에서 인간은 자기 삶을 끊임없이 정당화하며 사는 것이다. 여기에 삶의 우열이 있을 수 없다. 동시에 면책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