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16일
피에르 마슈레의 <헤겔 또는 스피노자> (2004)를 주의 깊게 읽고 있다. 이 저서는 마셸 게루, 질 들뢰즈, 마트롱, 네그리 등의 연구와 함께 현대 스피노자 연구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평가 받는다.
마슈레는 이 저서에서 헤겔과 스피노자의 철학적 차이를 같은 대상에 대한 갈등적 해석의 양상으로 읽는다. 두 철학의 관계는 일종의 거울을 마주보고 서 있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체계들은 서로 다르면서도 분명한 교차점을 지닌다.
전반부는 헤겔의 스피노자 해석을 요약하고, 후반부는 이에 대한 반론을 통해 헤겔의 오류를 지적한 다음 스피노자의 생각을 다시 재조명하는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번역자인 진태원 선생이 말하고 있듯 마슈레는 <헤겔 또는 스피노자>라는 제목을 통해 헤겔 철학의 해독제로 스피노자를 제시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헤겔주의자들은 불만을 드러내겠지만 중요한 것은 세계에 대한 존재자 각자의 해석과 믿음이기에 헤겔이 완성해놓은 총체적 세계가 손쉽게 무너지기야 하겠는가.
이 책은 어떤 연결고리 그러니까 절대적 실체에 대한 두 판본에 대한 해제라 할 수 있다. 헤겔이 보기에 스피노자의 철학은 절대적 실체인 '신/자연'을 충만한 것으로 드러내지만 분열(속성/양태)의 운동을 통해 지리멸렬 쇠퇴하는 것으로 바라본다. 즉 스피노자의 사유 운동 진행 방향은 실체의 완전성과 충만함이라는 정점에서 인간-사물의 양태적 차원이라는 바닥으로 하강하는 것이다.
이런 방식의 운동은 첫째 인간을 절대적 실체와 분리시키며, 둘째 인간이 절대적 실체와 합치해도 이미 주어진 완전성 속에서 주체의 의미는 소거되고, 셋째 기성의 체계를 초월하는 상승운동 작용이 없기에 인간은 형식적이고 명증한 체계 속에 갇히게 된다. 한마디로 스피노자의 철학은 형식적 명증성을 지니지만 운동의 부동성으로 인해 불완전한 체계이다. (물론 이 불완정한 체계를 완성하는 것은 헤겔 자신의 철학이다.)
이 같은 이유로 헤겔은 스피노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절대적 실체의 완전성, 충만함을 발견해내고 정초하지만 형식적 명증성 속에 안주함으로써 사유의 운동이 체계의 바깥을 벗어나 초월할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헤겔이 해야할 일은 스피노자의 체계를 전도시키고 뒤집는 것이다. 절대적 실체의 분열적인 하강 운동이 아닌 상승의 운동으로의 전환이다.
무규정적인 사물에서 시작해서 관념이 발생하고 그것은 주체를 형성한다. 이후 정신의 관념적 운동은 스피노자의 분열된 속성, 양태들을 하나의 일관된 동일성의 체계로 수렴시키며 절대정신을 향한 상승운동을 전환된다. 그리고 그 절대정신은 체계를 초월한다.
하지만 이것은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한 정당한 비판일까? 헤겔의 스피노자 설명은 자신의 철학 체계 내부에서 옳을 수 있지만 알고보면 스피노자의 체계의 중요한 부분들을 무시하고 있다.
스피노자의 체계는 절대적 실체의 하강운동이 아니라 절대적 무한운동이다. 스피노자는 분명 실체의 속성은 사유와 연장 뿐만 아니라 무한의 속성들이 있음을 언급한 바 있다. 또한 속성의 변용인 양태도 직접적 무한 양태와 유한 양태로 구분되며 무한하다. 스피노자의 체계는 실체, 속성, 양태로 분열하면서도 사실상 그것들이 다시 실체를 구성한다. 즉 각각의 개념들 사이에는 실체와의 분리가 없으며 속성 및 양태는 무한성이라는 절대적 실체의 특성을 공유한다.
필자가 보기에 헤겔이 말한 것처럼 스피노자의 운동은 부동의 것이 아니며 스피노자는 하강운동이 아니라 절대적 실체의 무한한 운동의 역량을 속성과 양태라는 개념을 활용하여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분열하지만 외부적인 원인이 아닌 자기 내적 동역학에 의해 무한의 분열 운동을 지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분열하는 양태들은 절대적 실체를 구성함으로, 실체와 양태 간의 우열은 없으며 그것들은 존재론적 차원에서 다양하고 고유한 동시에 평등하다.
이러한 철학적 차이는 어떠한 실제적 대립을 함축하는 것일까? 필자의 생각으로는 사회적 차원에서 보자면 헤겔의 철학은 의도했던 그것이 아니던 주체의 의식화와 체계로 부터의 초월에 힘을 줄 수 밖에 없다면, 스피노자의 철학은 체계의 초월이 아니라 가능 체계의 질적 다수 생성과 질서의 분열과 변혁의 가능성을 내부에서 증식시키는 것일테다. 또한 주체의 차원에서는 오히려 주체를 의식화하는 것이 아니라 주체라는 강제로부터의 탈주함으로써 의식적으로 자기 자신을 분열시키는 것이리라. 이것은 끝없는 자기 자신으로 부터의 변신이며 삶의 창조성에 대한 긍정이다.
지금까지 살폈듯 스피노자의 체계는 관계론적이다. 어떠한 하나가 다른 하나와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지니고 있다는 것, 예컨대 실체가 속성과 그리고 속성이 양태와 다시 양태가 실체로 회귀하는 것처럼 말이다. 끝없는 힘들의 관계성 속에서 어떠한 보이지 않는 필연적 네트워크의 짜임을 살필 줄 아는 지혜만이 우리는 오류와 폭력 그리고 오만으로 부터 해방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