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30일
아무리 합법적으로 선출된 권력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에 동의하지 않는 집단이 있다면 권력의 행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검찰의 항명 사건이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적 권력의 정치적 과제는 수많은 적대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의 문제이고, 그것의 불가능성에 도달하는 것을 폭력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폭력은 정치의 실종을 드러내는 징후이다.
자한당이 연일 장외투쟁을 선언하고 민주당은 사실상 이번 조국사태로 빚어질 손익을 계산 중이라는 것이 정치의 실종과 사회적 적대가 증가된 원인이다. 그리고 작금의 폭력적 사태는 새로운 정치가 탄생하는 가능성이거나 아니면 극단적 폭력에 의한 사회적 죽음의 증가로 귀결될 것이다.
이유가 어떻게 되었던 대한민국이 앞으로의 60년을 결정하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는 것은 분명해보인다. 인간이란 외피를 입은 역사라는 정신은 과연 무엇을 우리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탄생인가, 아니면 다시 한 번의 죽음이냐.
프랑스 혁명의 우발성이 지금의 역사를, 민주주의를, 그리고 자유라는 세계정신의 확대를 이루는 밑거름이 되었듯 우리는 이 땅의 새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길거리에 삼삼오오 노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나서는 시민들의 발걸음만이 희망이다. 민주주의라는 관념은 저들의 발자국 소리로만 이 땅에 임하는 것을 안다. 역사는 그렇게 인간사에 자신의 표정을 남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