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눈>을 읽고
2020년 12월 17일
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 놓고 마음 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 김수영, 「눈」 전문
: 12월 겨울의 어느 날 차가운 바람이 심심찮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차가운 도시를 걷다가 김수영의 시들이 생각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의 시를 읽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과 욕망들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나는 시에 대해서 잘 모른다.
더구나 김수영의 시들은 나에게 미지의 것으로 남아있다. 대학원 시절에 그의 전집을 구입해 처음 그의 작품을 접했을 때 느꼈던 난해함과 때로 단순해 보이는 그의 언어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에게 김수영의 시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김수영의 시들이 담담히 마음에 말을 걸어오는 것은 왜일까? 그의 마음에 눈물이 날 것 같은 것은 왜인가. 가만히 생각하면 사실 그 이유는 명료하다.
여전히 김수영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지만 변한 내 삶이 그만큼 남루해진 탓이다. 졸렬해진 탓이고 비겁해진 탓이다. 그의 시들이 말하고 있는 삶의 허위에 나의 마음은 좀먹고 눈을 잃고 자유를 상실하고 주어진 세계 내에서 생존의 안위만을 걱정하는 탓이다.
창밖의 풍경을 응시하며 김수영의 시 <눈>을 찾아 읽었다. 이제는 너무 유명해 나 같이 무지한 자가 덧붙일 말이란 없는 시이다. 하지만 왜 김수영은 눈을 바라보며 그것은 살아 있다고 말했을지 그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